한국에 없는 마을 ③ 캐나다의 치매 마을, 빌리지 랭글리(Village Langley)
한국에 없는 마을 ③ 캐나다의 치매 마을, 빌리지 랭글리(Village Langley)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2.28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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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아도 인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곳
치매 환자를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보는 관점의 실현

캐나다는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고령 인구의 지속적 증가는 경제 문제와 함께 복지 국가 지속 가능성 문제를 초래한다. 캐나다는 1990년 후반부터 주 정부 차원에서 지역 실정에 맞게 자체적으로 치매관리계획을 수립해 왔으며, OECD 국가의 치매 관리 정책 방향에 맞게 국가 차원의 치매 관리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치매 환자의 중증도와 의사 결정권을 존중하면서 돌봄 경로에 맞게 치매 정책을 추진하는 캐나다 최초 치매 마을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본다.

캐나다 최초의 치매 마을, 빌리지 랭글리(Village Langley)
캐나다 최초의 치매 마을, 빌리지 랭글리(Village Langley)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랭글리에 따뜻한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The Village(이하 빌리지 랭글리)’란 마을이 있다. 마을에는 산책을 하고 식료품점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사고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하는 평범한 노인들이 살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로 조성된 이 마을은 자유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구축돼 있다. 이 마을의 모든 주민은 치매를 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9년 4월 완공돼 7월에 문을 연 빌리지 랭글리(Village Langley)는 6,120평의 부지에 커뮤니티 센터를 포함한 단층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각 캐빈에는 12~13개의 침실과 다이닝룸, 거실, 액티비티룸, 선룸 등을 배치했으며 치매 노인에게 혼란을 주는 계단, 엘리베이터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주택단지는 출구가 하나로,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빌리지 랭글리의 캐빈 모습
비스트로(Bistro)와 카페

이 마을 프로젝트 책임자인 엘로이 제스퍼슨(Elroy Jespersen)은 오랫동안 시니어에게 적합한 주택을 찾는 일에 매진해 왔다며 이 마을은 네덜란드의 호그벡(Hogewyk)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빌리지 랭글리는 별장 스타일의 생활을 제공한다. 정원, 산책로, 동물 농장 등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마을의 핵심은 치매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유지하며 풍요로운 경험을 제공받는 것이다. 빌리지 랭글리의 철학은 입주민의 장애를 보지 않고 그들의 인생 전체를 보는 것이다.

빌리지 랭글리의 편의 시설들
빌리지 랭글리의 편의 시설들

마을 입주민 앨런 멕기(Alan Meggy)는 75세다. 2021년 8월부터 빌리지 랭글리에 입주해 살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앨런은 페루, 네팔, 탄자니아를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등반한 열렬한 여행가였고, 자동차 경주를 즐기는 모험가였다.

그의 친구 캐럴 체스햄(Carole Chesham)은 “앨런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모험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등반하기 어려운 산을 여러 개 올랐고, 텐트, 침낭, 스토브, 음식 등 무거운 짐을 산악자전거에 싣고 등반했다. 심지어 앨런은 한동안 보트에서 살 만큼 역동적인 모험가였다. 그러다 그는 세탁기 작동 방법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Alan Meggy
Alan Meggy

체스햄은 캐나다 최초의 치매 마을인 빌리지 랭글리에 대해 읽었고, 생활 지원 커뮤니티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 참여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깊은 인상을 멕기에게 전하고 그를 이 마을로 인도했다. 빌리지 랭글리는 앨런 멕기처럼 초기 치매 증상으로 활동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주요 테마로 여긴다. 역동적인 모험가로 살아온 앨런 같은 이들이 자신의 치매에 충격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30년 동안 노인 생활 분야에서 일한 엘로이 제스퍼슨(Elroy Jespersen)이 공동 창립했다. 그는 자기 분야의 경력을 쌓으면서 치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에 대해 고심했다.

 

빌리지 랭글리의 공동 창립자 제스퍼슨이 한 주민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빌리지 랭글리의 공동 창립자 제스퍼슨이 한 주민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제스퍼슨은 “치매 환자가 무엇보다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회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당신의 가족이다. 그들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좋은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스퍼슨과 그의 팀은 다채로운 주택, 커뮤니티 센터, 농장을 갖춘 마을을 건축했다. 특히 치매 노인이 평범한 이웃처럼 느껴지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빌리지 랭글리의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자유롭게 배회하다(Roam Free)”이다.

 

산책 나온 마을 사람들
산책 나온 마을 사람들의 밝은 표정

제스퍼슨은 “치매를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매우 불안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고, 원하는 대로 드나들면서도 안전한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커뮤니티 내에서 주민들과 교류하고 돌보는 직원은 인지 능력이 저하된 사람과 함께 일하도록 특별히 훈련받은 이들이다. 제스퍼슨은 빌리지 랭글리가 직원들에게 표준 건강 관리 교육 외에도 알츠하이머병 전문 교육을 받도록 했다.

빌리지 랭글리에서는 직원 교육을 ‘치매 코드 해독’이라고 부른다. 온오프라인의 병행 교육을 하며 치매 환자와 협력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필수로 받도록 했다. 전통적인 요양기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직원-환자의 낯설고 부자유한 모습을 없애고 빌리지 랭글리에서는 편안한 환경을 장려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마을을 탈시설화하고 싶습니다. 요양기관과 병원에서는 병원 유니폼을 입고, 수술복을 입습니다. 빌리지 랭글리는 그런 환경을 지양합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평상복을 입으라고 합니다.”

Village Langley의 직원은 치매 환자의 친근한 가족이 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빌리지 랭글리의 직원은 치매 환자의 친근한 가족이 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제스퍼슨은 치매 마을 혁명은 네덜란드 호그벡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빌리지 랭글리를 세우는 데 호그벡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엘로이 반 할(Eloy van Hal)의 영향을 받았다.

엘로이 반 할은 “변형하고 정상화해야 합니다. 그러니 기존 요양기관의 모습을 없애십시오. 사람들은 환자의 대우를 받는 기관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생활 환경과 정상적인 삶의 행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호그벡처럼 빌리지 랭글리는 치매 환자가 사교적이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호그벡의 반 할(van Hal)은 마을 사람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치매 환자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소규모 구성원으로 모여 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병원의 모습이 아닌 집에서 있는 것 같은 현관문, 거실, 침실 등이 중요한 요소다.

또한 빌리지 랭글리는 치매 노인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분위기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숙련된 요리팀은 신선한 현지 재료를 사용해 영양가 있는 가정식 식사를 제공한다.

치매가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창의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 캐나다 알츠하이머협회(Alzheimer's Society of Canada)에 따르면 2023년 현재 캐나다에서는 약 70만 명의 치매 환자가 있으며, 2050년에는 그 수가 17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노인학과 교수인 하비브 초두리(Habib Chaudhury)는 “치매 환자의 60~70%가 요양원에 거주하며 삶을 마친다”며, “의료 지원을 포함하는 치매 마을의 케어 모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초두리 교수는 마을과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돌봄 모델이 미래 돌봄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며, 해결책을 찾으려면 훈련과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하비브 초두리(Habib Chaudhury) 노인학 교수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하비브 초두리(Habib Chaudhury) 노인학 교수

요양원에 가면 긴 복도, 양쪽에 방, 넓은 식당 등이 전형적인 모습이다. 치매 환자는 병원 환경에 온 것 같은 느낌에서 삶의 의욕과 자신감을 잃기 시작한다.

캐나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치매 전략이 있지만 치료의 대부분은 요양원의 동일한 서비스로 제공된다. 초두리 교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장기 요양 시설에서 치매를 앓고 있다. 우리는 이 모델을 적극적으로 바꿔야 하며, 치매 환자를 포괄적이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빌리지 랭글리의 주민은 정기적으로 이웃의 집을 방문해 사교적인 생활을 즐기며 마을을 산책한다. 날씨가 좋으면 공원으로 소풍을 가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집에서 함께 식사하며 옛날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마법 같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빌리지 랭글리에 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입주민은 개인 간병 수준에 따라 한 달에 약 8천 달러(한화 약 790만 원)에서 1만 달러(한화 약 984만 원) 정도를 지불한다.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을에 살 여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유형의 보살핌이 미래에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데 교두보가 되길 바라고 있다. 입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시인한 제스퍼슨은 입주민의 부담을 덜고 다양한 계층의 시니어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정부와의 협조방안을 찾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앨런이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러 나라를 횡단할 수 없더라도 빌리지 랭글리는 앨런의 삶이 여전히 모험과 존엄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자신의 여행과 모험 사진이 가득한 추억의 앨범을 보고 있는 앨런
자신의 여행과 모험 사진이 가득한 추억의 앨범을 보고 있는 앨런

 

참고 자료: <캐나다의 수요자 관점의 지역사회 치매관리 정책 분석> (보건복지부 조충현, 2020년)

이미지 출처: https://verveseniorliving.com/the-village
                 https://globalnews.ca/news/9663849/dementia-village-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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