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안전망의 한계, 관심 받지 못하고 떠나는 치매 이웃들
6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90대 어머니와 6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생각날 만큼 비극적 사건이다. 두 사건은 삶에 희망이 없다는 현실과 연결돼 있고,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
이번 90대 어머니와 60대 두 딸의 죽음은, 치매를 앓던 노모가 집에서 사망하자 어머니를 돌보던 두 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6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0시 14분께 '아파트 화단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는 자매인 60대 여성 두 명이 숨져 있었고 이들이 함께 거주한 아파트 안에서 90대 노모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노모는 사망한 지 수 시간가량 지난 상태였다.
자매가 남긴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으며, 오랫동안 치매를 앓던 어머니의 사망을 비관한 내용과 함께 ‘돌아가셨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집에서 숨져 있던 어머니에게서 외상 등 살해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정확한 사인은 부검해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90대 어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로선 두 딸에게도 타살 혐의점은 없다고 보고 있다. 인근 주민에 따르는 숨진 노모는 10년 정도 치매를 앓았고, 두 딸이 돌봄을 도맡았으며,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들의 경제활동 여부나 다른 가족이 있는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구청 관계자는 “복지 대상자는 아니어서 생계에 특별히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며 치매 노모가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환자가 아니어서 지역 내 치매 서비스 대상자로 혜택을 받은 내용이 없다고 전했다.
치매와 뇌질환 환자와 같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장기 돌봄의 현실에서 발생한 간병 자살과 간병 살인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치매안심센터의 무료 진단,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등급에 따른 시설 이용 혜택, 치매 1, 2등급 환자 가족에게 주어지는 치매가족휴가제 등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제도 실행의 허점이 있어 치매 가족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기보다는 보호자의 의지와 경제력에 의해 견디고 있다. 여전히 치매를 앓는 환자와 그 가족은 재택에 숨어서 고통받고 있다. 이 반복되는 현실을 어떻게 품고 해결해 갈지 논의할 여력이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이는 해당 지역 치매안심센터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사회복지 담당자 업무는 과로로 쓰러지지 않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과중하다. 근본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로 안전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을 전수조사하고 각 사례에 따른 후속 서비스로 대응할 여력도 없고 서비스 구조도 마련돼 있지 않다, 또한 치매안심센터의 무료 서비스로 치매 진단 후에는 환자를 집 안에 가둬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치매 인식 개선 교육과 실천이 이뤄지지 않는다.
치매 예방을 위한 정보 공유 및 지역 내 자조 모임의 부재 등 수요자 중심 복지 체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변화가 없다. 2014년 7월부터 치매가족휴가제가 시행되고 있어도, 있는 줄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아도 1, 2등급 환자가 아니면 이용 못 하고, 해당 등급 환자여도 가정방문의료체계의 미흡과 며칠간 맡길 수 있는 재택 돌봄 요양보호사를 구할 수 없어 유명무실하다.
지난 4일 JTBC <사건반장>은 “정화조 안 '백골'의 정체…5년 전 집 나갔다던 시어머니였다”는 제목으로 2013년 7월 한 주택가 정화조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 사건을 다뤘다. 백골은 사망한 지 4~5년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인근 실종자 가족과 DNA 검사를 통해 정화조 앞집에 살던 실종 할머니임을 확인했다. DNA 의뢰서를 통해 며느리 A씨가 ”자신이 시어머니를 살해하고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A씨는 치매기가 있는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신랑 없다고 늦게 다니냐? 바람피우냐? 미친X”이라는 욕설을 하자 홧김에 밀었고, 시어머니가 넘어지면서 방문턱에 머리를 부딪쳐 숨졌다고 진술했다. A씨는 처음부터 살해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이며, 겁이 난 나머지 시어머니를 정화조에 유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숨진 시어머니는 치매로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고 확인됐다. 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할머니가 치매라니 모르는 일”이라며 “며느리가 밥을 안 줘서 앞집에서 얻어먹기도 했다”고 밝혔다. A씨는 폭행치사와 시체유기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형량이 비교적 가벼운 까닭은 증거가 부족한 데다 남편이 선처를 원했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A씨가 자신을 변론하기 위해 고부갈등이 심한 시어머니를 치매 환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여전히 치매 진단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진단 후 사실을 숨긴다. 가족에게 피해를 주며 끔찍하게 중증환자가 되어 사망으로 가는 병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원인도 다양하고 증상도 다양해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병이다. 숨기고 가둬두며 환자와 보호자 모두 고통받다가 죽음으로 해결되길 기다리거나 같이 죽는 길을 택하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가족 안에서 피의자와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이유 중 하나는 평범한 사람 그 누구도 피의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다. 사회안전망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인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현 정부의 치매 정책 한계를 드러낸 이번 치매 노모와 60대 두 딸의 비극적 사건이 더는 발생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어떤 논의부터 시작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