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치매 현장 이끌어온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인식 개선에서 맞춤형 돌봄까지, ‘서울 모델’이 만든 국가적 변화

중앙치매센터는 전국 치매관리정책의 표준을 제시하고 각 지역센터를 지원하는 조정 허브다. 서울시광역치매센터는 이러한 전국 체계 속에서 지역사회 중심 치매관리 모델을 처음 설계·운영한 기관으로, ‘치매국가책임제’의 기반이 된 서울형 모델을 만들어냈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 최초로 25개 자치구에 치매지원센터(현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해 지역사회 중심의 치매관리 모델을 구축했다. 이후 이 모델은 전국으로 확산해 2019년 말 기준 전국 256개 지자체에 치매안심센터가 개소했다. 아울러 각 광역시·도에는 전문 인력과 기능을 갖춘 광역치매센터가 지정되어, 중앙–광역–기초로 이어지는 3단계 치매관리체계가 완성됐다. 이러한 전국적 체계 구축의 중심에서 서울시광역치매센터는 초기 모델을 설계하고 운영 기반을 세우며 제도화의 길을 열었다.

이동영 서울의대 교수(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그 과정을 주도한 인물로, 지난 30년간 치매 진료·연구·정책을 아우르며 한국형 치매관리의 표준을 세운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을 만나 대한민국 치매관리의 발자취와 정책적 성과, 그리고 ‘치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를 향한 다음 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 황교진 기자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 황교진 기자

 

“치매는 복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치료와 예방의 문제입니다.”

_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Q. 치매 분야에 관심을 두시게 된 계기와 초기 연구 경험을 들려주세요.

처음부터 치매를 전공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 은사인 우종인 교수님(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 치매 연구와 진료 분야 선구자, 한국치매협회 회장, 현 한국결정능력연구원 원장)과의 인연으로 자연스럽게 치매 연구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생물정신의학, 그중에서도 정신약물학을 연구하셨는데, 1993년 미국 FDA가 승인한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타크린(Tacrine)이 등장하면서 치매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타크린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증상을 완화하는 약으로, 국내에서도 이 시기를 계기로 ‘치매는 치료 가능한 질환’이라는 인식이 확산했습니다.

우 교수님이 서울대에 치매클리닉을 개설했고, 치매를 공부할 것을 권유하셔서 저도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1998년 전임의 시절 관악구에 ‘치매관리센터’를 만들면서 지역사회 치매관리 모델을 처음 시도했죠. 그때는 치매 상담센터만 존재했을 뿐 전담 인력도 예산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악구청과 우 교수님의 한국치매협회가 함께 제대로 된 지역 치매관리 모델을 실험했고, 저는 실무를 맡아 환자 발굴, 조기검진, 등록 관리 등 지금의 ‘치매안심센터’ 사업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Q.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설립의 배경과 발전 과정은 어떻게 이어졌나요?

관악구 모델이 성공하자 “서울시 단위로 확대해 보자”는 논의가 생겼습니다. 2006년 오세훈 시장 취임 당시, 노인과 치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치매 지원 사업이 서울시 정책으로 채택됐죠.

2006년 말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설립을 추진했고, 2007년부터 3년에 걸쳐 25개 자치구에 치매지원센터(현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습니다. 저는 당시 광역센터장을 맡아 센터 운영 규모, 인력 구성, 사업 내용, 평가 기준 등을 설계했습니다. 서울시 모델은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정책에 반영됐고, 여러 지자체에 치매안심센터가 설치되며 확산했습니다.

 

Q. 진료와 정책 현장에서 특히 주안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초기에 사업의 틀을 ‘5대 사업’으로 정했습니다. ▲인식개선 ▲조기검진 ▲등록·관리 ▲지역 자원 강화 ▲정보화 사업(온라인 DB 구축)입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인 치매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는 약이 있음에도 병원에 오지 않으시는 치매 환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시민들 인식은 점차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시와 전국의 치매 사업도 ‘치매에 관한 생각을 바르게 갖는 일’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Q. 가장 의미 있는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꼽는다면요?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지역사회 중심의 치매관리사업 모델을 최초로 확립한 일입니다. 그리고 개별 사업 중에서는 인식 개선을 위해 2014년부터 시작한 ‘천만 시민 기억친구 프로젝트’를 들 수 있습니다. 치매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치매 환자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민을 양성하자는 취지입니다. 지금까지 약 30만 명이 기억친구로 교육받았고, 그중 1만 2천 명은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아직 ‘천만 명’을 목표로 하려면 멀었지만, 사회 인식이 달라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최근 치매 정책의 변화나 흐름에서 눈에 띄는 점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서비스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이 빠르게 진행된 점입니다. IT 기반 온라인 프로그램, 비대면 교육 등이 치매관리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사업의 무게중심이 과거 ‘조기검진’에서 ‘맞춤형 등록관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환자를 발굴하는 것뿐 아니라, 개인별 특성에 맞게 돕는 체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산과 인력이 제한된 현실에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자원의 효율적 재배분을 병행하는 것이 핵심 과제입니다.

 

Q. 광역치매센터의 역할은 중앙과 지역 사이에서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처음 서울시가 광역체계를 만든 이유는 표준을 제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은 자치구마다 여건이 다르기에 일정한 융통성과 지역 맞춤형 조정력이 필요합니다. 중앙은 전국 표준을, 광역은 지역 맞춤 표준을 제공하며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서울시의 경우 이런 유연한 구조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광역치매센터는 지역 맞춤형 사업 설계, 통계 산출, 특화사업 추진 등 중간 조정 기능을 수행합니다.

 

Q. 일본의 케어매니저 제도처럼 한국에도 치매 환자와 그 보호자를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통합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일본은 ‘치매관리사업’ 자체가 없고, 개호보험제도 안에서 케어매니저가 복지 중심으로 조정 역할을 합니다. 반면 한국은 치매관리사업(보건 영역)과 장기요양보험(복지 영역)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치매는 복지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의료적 질환’이기 때문에 예방과 조기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치매안심센터가 코디네이팅 역할을 해주면 가장 좋지만, 인력과 예산의 제약으로 어려운 현실입니다. 현장에서는 장기요양과 치매관리사업의 담당 부서가 달라, 대상자 관리와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은 문제도 있습니다.

 

“치매 인식에 대해 사람들 생각이 바뀌는 게 아직 미진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 전체적으로 관심이 커졌죠.

언론이 역할을 해주고, 시민들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해요.”

_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 황교진 기자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 황교진 기자

 

Q. ‘치매 친화 도시’를 향한 서울시의 핵심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치매 친화 도시는 거점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시민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기억친구 프로젝트가 그 역할을 하죠. 최근에는 치매 환자와 자주 접하는 생활 장소인 약사, 미용실 원장, 마트 직원, 집배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형 ‘치매안심마을’ 사업도 이런 맥락에서 동네 상점과 주민이 함께 치매 환자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Q. 네덜란드의 ‘호그벡(Hogeweyk) 마을’처럼 치매 환자가 일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치매 마을 모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한국은 지역사회 안에 이런 공간을 짓는 걸 주민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맞습니다. 호그벡 마을은 치매 환자를 시설에 가두지 않고, 일상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사회 모델의 상징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치매시설’ 하면 병원이나 요양원처럼 닫힌 공간을 떠올리고 치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에, 지역 안에 마을형 돌봄 공간을 짓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지역사회가 치매를 받아들이는 문화와 시스템이 바뀌는 게 핵심입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치매안심마을’은 이런 인식의 한계를 바꾸기 위한 시도입니다. 약국, 미용실, 우체국, 슈퍼마켓, 주민이 서로 연결되어 치매 환자가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결국 진정한 치매 친화 사회란, 시설이 아니라 일상 속 관계망을 통해 환자를 포용하는 사회입니다.

 

Q. 치매안심센터의 인력과 예산 부족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개선책은 있을까요?

인력과 예산의 한계는 가장 크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조기검진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고위험군 중심으로 타깃팅하고 등록 관리, 특히 개인 맞춤형 사례관리로 전환해야 합니다. 예산 확대도 필요하지만, 현재의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연계하느냐도 중요합니다. 행정적 지원뿐 아니라 사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대상에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Q.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을 앞두고, 치매와 지역 돌봄의 연계는 구성해야 할까요?

이상적으로는 치매안심센터가 지역 내 돌봄 코디네이팅 허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현재 치매관리사업은 보건 영역, 장기 요양은 복지 영역으로 분리돼 있어 행정상 분절의 벽이 존재합니다. 복지–보건 간 유기적 연계가 이루어진다면 치매안심센터가 그 중간에서 케어매니저처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 입장에서는 “나라에서 다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분리돼 있나” 싶지만, 실제로는 체계가 달라 연계가 쉽지 않습니다.

 

Q. 경도인지장애와 경증 치매 환자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대상자들을 위한 사회참여 프로그램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요?

강서구, 도봉구, 양천구 등에서 운영 중인 ‘초록기억카페’처럼, 초기 치매나 초로기 치매 환자가 일과 사회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이 아니라 ‘직업 활동’에 가까운 형태로 발전해야 합니다. 장애인 일자리 모델처럼, 맞춤형 직업 연계와 고용 지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Q. 데이터 기반 치매관리와 정보 공유 체계의 현황은 어떠한가요?

가장 큰 걸림돌은 개인정보보호 문제입니다. 병원과 병원, 병원과 요양시설, 병원과 치매안심센터 간 정보가 자유롭게 오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개인정보 규제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결과지를 들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연계를 조화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Q. 현재 집중하고 계신 치매 관련 연구나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최근 서울시의 ‘손목닥터 9988 앱’과 연계한 ‘Brain Fit 45’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2025년 9월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26년 정식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노인들도 당연히 대상이 되지만 45세부터 65세 이전까지의 중년층을 주요 대상으로 합니다. 중년기부터 미리 생활습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치매 위험을 낮추는 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별로 치매위험도를 평가하여 맞춤형 예방 솔루션을 제시하고, 걸음 수 기반 건강 앱(9988)과 연동해 인지훈련, 걷기, 생활습관 미션 등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현재는 시범 운영 단계로, 참여자가 앱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치매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경우 25개 자치구 치매안심센터와 연계해 검진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장기적으로 2030년까지 누적 참여자 25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앱을 통해 치매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해 자치구별 지원으로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 중입니다.

또한 이 사업과 병행해 전국 치매안심센터 등록자를 대상으로 경도인지장애(MCI) 단계의 인식과 관리 실태를 조사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연구는 치매 전 단계의 관리 체계를 고도화하고, 개인별 위험 요인에 따른 맞춤형 예방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 황교진 기자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연구실에서 이동영 서울시광역치매센터 센터장 / 황교진 기자

 

Q.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연구하시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정책과 진료를 병행하며, ‘KBASE(알츠하이머병 조기진단 및 예측을 위한 한국인 뇌 노화 연구)’라는 알츠하이머병 장기 추적 코호트 연구를 2013년부터 약 12년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KBASE는 유전자, 혈액검사, 뇌영상, 생활습관 데이터를 종합하여 개인별 치매 예방 및 발병 위험예측 방법을 규명하기 위한 장기 추적 연구입니다. 2013년 시작 단계에서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았고, 2022년 2단계부터는 미국국립보건원의 연구비 지원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각 개인의 유전적·환경적 요인에 따른 뇌병리 발생 및 인지저하 양상을 분석해 맞춤형 예방 및 치료 전략을 확보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항아밀로이드 계열 신약,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치매 치료제 개발이 오랜 기간 여러 차례 실패를 겪은 끝에, 처음으로 질병 경과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약이 등장했습니다. 기존 약이 증상 완화에 그쳤다면, 레카네맙은 아밀로이드 제거를 통해 병리 수준에서 작용합니다. 완치 약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치료제’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다만 실제 임상에서 적용 가능한 환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환자 중에서도 제한적이며, 약값 부담과 부작용 관리 역시 중요한 과제입니다.

 

Q. 마지막으로, 치매 환자와 가족, 그리고 디멘시아뉴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치매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고, 그래서 사회 전체가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디멘시아뉴스처럼 치매만을 다루는 전문 언론이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든든합니다. 결국 시민이 생각을 바꾸면, 정치와 정책도 따라올 것입니다. ‘치매를 두려워하는 사회’가 아니라, ‘치매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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