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공무원만 7번...‘5선 국회의원’에서 ‘웰다잉 전도사’로 인생 3막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초고령사회’...“죽음에 대한 체계적 준비 필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죽음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겠다는 것”
유언장은 부자만 쓰는 것이 아냐...쓰기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존엄사는 안락사와 달라...의료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법과 시민사회 운동 함께 가야 웰다잉 문화 정착"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 / 이석호 기자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 디멘시아뉴스

 

“우리 사회는 죽음을 논하는 것을 꺼립니다. ‘아이, 재수 없게 죽는 얘기를 하냐’는 식으로 불길하게 치부하죠. 그러다 보니 우리 모두 죽음의 문제에서 고립돼 있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니 미리 준비하고 결정할 일도 못 느낍니다.”

더 이상 죽음은 드문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는 약 35만 8,400명으로 추정된다. 한 달에 3만 명, 하루 1,000명꼴로 생명이 꺼져간다. 이뿐인가. 최근 5년간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들은 연평균 1만 3,000명대를 웃돌았고, 2023년에는 1만 3,978명이 각자의 이유로 세상과 작별했다.

여전히 죽음을 입에 올리기 힘든 문화지만, 이제는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됐다. 막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 앞에는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현실적 단면들이 거대한 단층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중요한 화두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가 당장 죽음에 대한 침묵부터 깨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최근 출간한 책 《마지막 이기적 결정》에서도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죽음을 나눌 수 없으면 웰다잉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원 대표는 5선 국회의원 출신 정치 원로이자 민선 부천시장을 연임한 행정가로, 총 7번의 선출직 공무원을 지냈다.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떠난 후 ‘웰다잉 전도사’로 인생 3막을 열었다.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연명의료결정법)’을 발의하며 법 제정을 주도한 그는 “내가 벌여놓은 일을 애프터서비스하고 싶다”는 뜻을 품고 웰다잉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에서 오전 일정을 마친 원 대표는 곧장 오후 강연이 있는 용인 수지구 디멘시아도서관을 찾았다. 그는 ‘내가 결정하는 나의 인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며, 초고령사회의 현실을 조명하고 웰다잉의 필요성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풀어냈다. 강연 후에는 웰다잉 문화의 현실적 과제에 대해서도 디멘시아뉴스와 대담을 이어갔다.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초고령사회’...“죽음에 대한 체계적 준비 필요”

“초고령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20~30년 만에 급속한 고령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과 대비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령화가 미치는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1,024만 4,550명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프랑스는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7%)에서 고령사회(14%)를 거쳐 초고령사회(20%)로 진입하는 데 154년이 필요했고, 독일은 76년이 걸렸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 25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일본조차도 35년이 걸린 일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년 이상 늘어난 83.5세다. 이 추세라면 한국은 20년 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국가가 될 전망이다. 원 대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더 이상 ‘여생(餘生)’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환갑을 넘기고 몇 년 있다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은퇴하고도 30년이상을 더 살아야 합니다. 이건 ‘여생’이 아니죠. 그동안 여생을 남은 인생, 자투리 인생,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고 사그라지는 불꽃 정도의 시간 정도로 여겼다면, 이제는 또 다른 인생의 주기로 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입시,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전환점마다 철저히 대비하지만, 유독 은퇴 이후 노년기와 죽음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포함해 인생 후반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 디멘시아뉴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 디멘시아뉴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죽음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겠다는 것”

“가족이 중환자실에 가면 ‘무조건 살려주세요’, ‘끝까지 다해주세요’, ‘이대로는 못 보냅니다’라는 말만 합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연명의료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가족과 의료진에도 자신의 뜻을 미리 밝혀둬야 합니다.”

원 대표는 죽음을 미리 대비해야 할 대표적인 문제로 ‘자신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결정’을 꼽았다.

생명에 대한 결정 중 대표적인 것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의학적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사전에 스스로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문서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기간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포함된다.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 기관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할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는 총 274만 7,572명에 달하며, 이 중 60세 이상이 약 86%를 차지한다. 원 대표는 “내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을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죽음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순히 서류 한 장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라고 표현했다.

다만, 연명의료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장기요양 사망자의 75.5%가 연명의료를 받았으며, 이는 10여 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사망 직전 의료비 역시 2~3배가 늘었다.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계획도 사망 전 1개월 이내 작성되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 실정이다.

 

유언장은 부자만 쓰는 것이 아냐...쓰기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유언장 한번 써볼까’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바로 유언장을 쓸 때입니다. 방학 숙제를 일찍 해둔다는 마음으로 유언장을 미리 써놓으면 남은 삶을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재산에 관한 결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언장 작성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유언장을 쓰는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가난의 대물림’을 들었다. 남길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유언장을 쓸 일도 없었다는 것. 하지만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산을 두고 가족 간 소송도 증가하고 있다. 유명 재벌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닐 만큼 흔하다.

원 대표는 “상속 소송 건수는 2015년부터 이혼 소송보다 많아졌으며, 최근에는 연간 5만 건 이상 발생한다”며 “유족 중 3분의 1이 상속재산을 두고 다투는 거로 볼 수 있고, 법정에 가지 않더라도 의절하거나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까지 합치면 3분의 2에 이를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유언장은 재산이 많아야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재산을 정리하고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라며 “유언장을 쓰면 자식들이 서로를 탓하지 않고 부모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당장 펜을 들라는 의미에서 일단 한번 유언장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 가구 비중이 급속히 늘면서 지난해 독거노인 수는 65세 이상 인구의 22.1% 수준인 220만 명에 육박했다. 향후 1인 가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독사 증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언장을 써서 재산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평생 보지 못했던 조카가 갑자기 나타나 변호사를 통해 상속재산 분할을 주장할지 모릅니다. 본인이 땀 흘려 모은 재산을 어떻게 쓸지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 디멘시아뉴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 디멘시아뉴스

 

치매 대비에는 ‘부부 쌍방 후견 계약’ 공증이 대안

치매 환자의 웰다잉 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원 대표는 “치매 환자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자기결정권 보장이 더욱 중요하다”며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치매 단계에서 미리 웰다잉 계획을 세우고 가족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일상생활에서 독자적인 의사 결정 능력이 떨어진 치매 노인을 위해 치매 공공후견제도를 2009년 도입했지만, 절차적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활용이 저조한 편이다. 이에 원 대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임의 후견 제도를 소개하면서 ‘부부 쌍방 후견 계약’ 공증을 제시했다.

“법무사 사무실이나 공증 사무실을 찾아 부부가 같이 후견 공증을 하는 겁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건강한 배우자가 후견인이 되는 거죠. 후견인은 예금 통장 관리, 보험 해지, 전세 계약 등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비용도 1인당 5만 원쯤이니까 부부가 함께하면 10만 원 정도면 해결됩니다.”

 

"존엄사는 안락사와 달라"...의료 만능주의도 경계해야

“김할머니 사건을 보면서,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여야 동료 의원을 설득하면서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 모임도 결성했고, 그 결과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될 수 있었습니다.”

웰다잉은 단순히 편안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행위이자 ‘삶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어떻게 마무리할지 결정하는 것은 존엄한 삶의 일부다.

원 대표가 웰다잉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08년 ‘김할머니 사건’이었다. 당시 76세였던 김할머니는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소송이 벌어졌다. 이에 대법원은 2009년 환자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면,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 원 대표는 “존엄사는 적극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의사조력사 또는 안락사와 다르다”며 많은 사람이 개념을 혼동하면서 오해가 커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현재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에도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말기 상태 중에서도 임종기에만 적용되는데, 임종기의 기준이 모호합니다. 또 인공호흡기는 거부할 수 있지만, 인공영양 공급은 거부할 수 없게 돼 있어요. 죽음의 과정에서 선택권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지고 호흡이 멈추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라며 “현행법은 마지막 호흡을 멈추는 단계는 허용하면서도 그 이전 단계인 영양 공급 중단은 금지하고 있어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곡기 끊기’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곡기 끊기가 고통스럽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였지만, 생명 활동이 약해질 때 음식 섭취 자체가 고통이 되는 상황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무조건적인 연명치료를 강요하기보다는 자연스럽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의료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도 경고했다.

 

"법과 시민사회 운동 함께 가야 웰다잉 문화 정착"

”살 거 다 살았고 이제부터 남은 삶을 대충 살면 되지 이렇게 살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입니다. 단단히 준비하고 계획한 삶, 내가 주도하는 삶, 내가 결정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나에게도 이롭고 우리 가족과 우리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사진제공=이종헌
사진제공=이종헌

원 대표는 유산 기부에 대해 “영국에서는 유산 기부가 전체 기부금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며 “평생 모은 자산의 10%만 좋은 일에 쓰도록 해보자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생전 장례식’에 대한 아이디어도 소개했다. 그는 “기본적인 건강이 유지되고, 가능하면 다과나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감사 잔치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생전 장례식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사회도 보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들려줬다.

마지막으로 원 대표는 법과 시민사회 운동이 함께 가야 웰다잉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과 제도가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법 제정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범 사례를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따를 수 있다며, 최종현 전 SK그룹 선대회장의 화장(火葬) 유언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가 강의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화면에는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Paul Bourget)의 문구는 많은 생각을 남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원 대표는 앞으로도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웰다잉 문화 확산에 힘쓸 계획이다. 그의 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열린 대화의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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