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말기 돌봄’ 사회적 요구 높지만...제도적 장벽 여전
의료전달체계부터 ‘임종기’ 정의까지...사회적 패러다임 바꿔야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튜브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튜브

생애 말기 돌봄에서 재택의료와 완화의료, 재가 임종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숙제이자 이상적 모델이지만, 여전히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 이에 대한 실천적 논의와 성찰이 이어지고 있으나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연명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에게 생명 연장만을 목적으로 하는 의학적 시술을 의미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294만 2,289명에 달한다.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전체의 74.7%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양상은 반대로 나타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올해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장기요양 수급 사망자의 75.5%가 임종 전 한 달 이내에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 ‘적극적 치료(Aggressive Care)’를 받았다. 이는 2014년의 37%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로, 같은 기간 연명의료를 중단한 비율은 7.6%에 그쳤다.

중증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의료에 대한 열망도 크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 결과, 전체 노인의 85.4%가 ‘고통 없는 임종’을 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53.9%는 자택에서 임종하기를 희망했지만, 실제로는 ▲요양병원(36.0%) ▲종합병원(22.4%) ▲상급종합병원(13.7%) 등 72.9%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쳤다.

재택의료는 환자가 익숙한 환경에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통증 관리 미흡, 의료적 지원 부족 등으로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25년 반기 기준 월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현황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
2025년 반기 기준 월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현황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와 공공진료센터가 지난 18일 개최한 ‘삶의 마지막을 함께 준비하는 돌봄 - 재택의료와 완화의료’ 합동 심포지엄은 이러한 사회적·제도적 문제를 짚고, 실천 가능한 대한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환자의 자율성과 사전 의사결정의 중요성에 대체로 공감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족의 정서적 부담, 의료진의 책임, 제도적 제약 등 복합적 요인이 그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선영 서울대병원 재택의료클리닉 교수는 “좋은 죽음은 단순히 통증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율성과 존엄, 정서적 지지, 가족과의 관계 회복까지 포괄한다”면서 “호스피스로의 전환이 아닌, 치료에서 돌봄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2008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생애 말기 돌봄 전략(End of Life Care Strategy - Promoting high quality care for all adults at the end of life)’에서 제시한 ‘좋은 죽음(Good Death)’의 네 가지 요건(▲한 개인으로서 존엄과 존중을 받으며 ▲통증과 증상 없이 ▲익숙한 환경에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이와 함께 2022년 랜싯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Lancet Commission on the Value of Death: bringing death back into life’)를 인용해 이상적인 재가 임종 요건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생애 말기 돌봄을 준비하게 된다”며 “환자가 재택·완화의료를 통해 생애 말기 돌봄을 지역사회에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원장(가정의학과)은 지역사회 내 재가 임종의 실태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 등 제도적·사회적 허점을 짚었다.

중증 환자의 경우 대부분 의료 기록이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돼 있지만, 외래 진료가 어렵거나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지역사회 2차 병원도 중환자를 받는 곳이 극히 드물다. 의료 기록을 공유받을 수 없는 1차 의료기관은 환자의 병력을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이에 대해 추 원장은 “재택의료가 1차 의료와 법의학적 진료, 완화의료 사이 모호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 조사나 검안 등 사망 절차에 대한 부담도 재가 임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집에서 돌아가시고 싶은 어머니 유지를 받들어서 재가 임종 돌봄을 열심히 했던 아들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어머니를 방임한 게 아니냐’는 학대 의심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수사를 받느라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적절한 애도를 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를 들면서는 “임종 호흡 증상이 나타나 전국에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여 집에서 평화롭게 임종을 맞이했는데, 정작 출동한 경찰이 왜 돌아가시기 직전에 병원으로 모시지 않았냐고 추궁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가정형 호스피스는 호스피스 병동을 유지하고 있는 의료기관만 신청할 수 있도록 국한돼 지역사회 재택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없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다. 일차 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에서는 중증 환자의 산정특례 제도가 적용되지 않아 수급자 부담이 큰 점도 아쉬운 점으로 평가했다.

추 원장은 “사망이 예견되거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 만성질환이 많으면 중증 환자는 집에서 돌아가시는 게 훨씬 낫다”며 “오히려 이런 조건들이 재가 임종의 확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게 대단히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가정간호 연계, 임종 징후 및 법·행정적 절차 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예진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사회복지사
김예진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사회복지사

김예진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상담사(사회복지사)는 루게릭병(ALS) 환자의 사례를 통해 ‘사전 돌봄 계획(Advance Care Planning, ACP)’의 실제 적용 과정과 한계를 조명했다.

그는 “루게릭병 환자의 경우, 질병 진행 속도가 빠르고 의사소통 능력을 점차 상실해 가족과 의료진의 대리 의사결정이 많고 임종기 판단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사전 돌봄 계획이 어려워지는 배경에는 질병의 무게감, 돌봄 부담, 삶의 질과 생명 연장의 가치 사이 보호자의 내적 갈등 등 복잡한 문제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사전 돌봄 계획은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유연하고 지속적인 대화가 핵심”이라며 “환자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찾아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의료진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현장에서 상담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가 힘들다”며 수가에 대한 개선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토론에서는 지역사회 완화의료와 병원 중심 진료 간 연계의 중요성에 공감대가 이뤄지면서도, 현실 가능성에 대한 시각차를 보였다.

이 교수는 “환자가 연명의료결정을 미리 해놨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가족 중 한 사람이 ‘소생술 해주세요’라고 하면 의사진이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 “환자가 막상 집에서 응급상황에 닥치면 보호자는 ‘이게 진짜 임종의 상황인지, 아직 뭔가 해줄 수도 있는데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다 결국 병원으로 이송하는 선택을 한다”는 현실적 문제도 언급했다.

아울러 “병원 진료 내역과 약물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하면 지역기관도 그 역할을 충분히 이어받을 수 있다”며 “대학병원에서 지역으로 연계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재택의료 서비스의 현실적 한계도 언급됐다. 추 원장은 “아무래도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받았다면, 재택의료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진료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통증 조절을 정맥주사(IV)로 해야 하는 등 지역사회 재택의료에서 커버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성정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최원아 강남세브란스 재활의학과 교수,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최석진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김예진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사회복지사, 이혜연 서울대병원 가정간호사업팀장
(왼쪽부터 시계방향) 성정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최원아 강남세브란스 재활의학과 교수,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최석진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김예진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사회복지사, 이혜연 서울대병원 가정간호사업팀장

사전 돌봄 계획에 대한 어려움도 제기됐다.

최원아 강남세브란스 재활의학과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는 사전 돌봄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환자나 가족으로부터 치료를 포기하거나 소극적 대응으로 오해를 받을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며 “병식이 확실하지 않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염려가 된다”고 말했다.

임종 과정을 두고 현실적으로 정의하기가 모호하다는 지적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환자의 생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바뀔 수 있고, 의지나 의도를 알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말기를 구분하지만, 실제 임종 과정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는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전 돌봄 계획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환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전 돌봄 계획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다르다. 임종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쌓아야 한다”며 “급박한 상황에서 빨리 결정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고통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는 것에 앞서 살아있을 때 인간다운 돌봄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재택의료나 사전 돌봄 계획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사회적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국민의 목소리가 커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루게릭병 환자의 사례를 발표한 최석진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의료진도 환자의 예후를 예상하기 어렵다”며 “환자 본인의 의사 표현도 어렵고 의료진 입장에서도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 세션의 좌장을 맡은 성정준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인원이 300만 명에 달하지만,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갖춘 기관은 전체의 24%에 그친다”고 꼬집었다. 요양병원은 대부분 제도 적용 기관이 아니어서, 환자 의향이 있어도 실행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말 기준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 현황에 따르면, 요양병원 1,334곳 중 등록된 기관은 167곳으로 12.5%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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