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관하여

며칠 전 친한 친구와 만나 술 한잔 기울였다. 특별한 주제도 없이 안주와 소주 사이를 오가며 대화하던 중 갑자기 친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야, 너희 집 화장지 어떻게 걸어?”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게 무슨 얘기지? “대체 무슨 뜻이야?” 술기운이 오르던 참이라 그런가. 친구의 질문이 어딘가 심오하게 들렸다. “그냥 있는 대로 쓰지, 뭐. 왜?”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요즘 아내랑 그걸로 싸웠거든. 나는 어릴 때부터 화장지가 위에서 앞으로 내려오는 방식(Over)이었는데, 우리 집사람은 꼭 위에서 뒤로 내려오는(Under) 것으로 바꾸어놓더라고. 하도 그러길래 어느 날 이 문제로 한마디 했다가 큰소리로 싸웠어.”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야, 화장지 방향 갖고 싸운다고?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냐?”

하지만 친구는 진지했다. 그의 표정엔 오래 쌓인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처음엔 나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상하게 계속 신경 쓰이더라고. 그게 단순히 화장지 때문이 아니라, 뭔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무시당하는 느낌이랄까.” 이쯤 되니 나도 흥미가 생겼다. 단순히 화장지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사이, 아니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다름’이란 게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Over와 Under.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이 두 단어가, 어쩌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휴지를 바깥으로 향하게 거는 방식인 Over는 눈앞에 잘 보이고 손에 닿기도 쉽다. 호텔이나 광고에서 주로 이 방식을 쓴다. 깔끔하고, 뭔가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반면 벽 쪽으로 휴지가 말려 있는 방식인 Under는 외관상 더 단정하고, 반려동물이나 아이가 휴지를 끌어내는 걸 방지할 수도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보다 이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무엇이 맞다’가 아니라, ‘누가,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가’의 문제다. 누군가는 부모님이 그렇게 걸어두던 방식을, 누군가는 첫 자취방에서 편했던 습관을 그대로 이어오며 자신의 ‘기준’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그 기준이 서로 다르단 걸 알면서도, 우린 자꾸 내 기준만 옳다고 생각하잖아.”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화장지 방향과 같은 일상의 디테일이 바로 그런 기준 싸움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집에 있는 화장지 거치대를 떠올렸다. 우리 집은 어떻게 걸어두고 있지? 솔직히 말하면, 그날그날 다르다. 내가 갈면 Over고, 아내가 갈면 Under다. 서로 한 번도 자기 방식을 주장한 적도, 문제 삼은 적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도 말하지 않았을 뿐, 속으로는 ‘왜 이렇게 걸었지?’ 하고 생각한 적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지 휴지의 방향이 아니라, 상대의 방식에 대한 이해 혹은 오해의 문제다.

 

세스 휠러가 발명한 화장지. 위에서 아래로, 롤이 앞으로 풀리도록 한 그림으로 미국 특허 번호는 US465588A, 특허 출원일은 1891년 12월 22일. 세스 휠러가 최초로 화장지 관련 특허를 받은 해는 1871년이다. 이때는 아직 롤 형태가 본격화되기 전의 제품이었고, 절취선(perforation)이 강조되지 않았다. 1891년 특허는 그보다 진화된 형태, 즉 오늘날과 같은 롤에서 앞으로 풀리는 형태 + 절취선이 있는 구조. / 미국 특허청(United States Patent and Trademark Office, USPTO)
세스 휠러가 발명한 화장지. 위에서 아래로, 롤이 앞으로 풀리도록 한 그림으로 미국 특허 번호는 US465588A, 특허 출원일은 1891년 12월 22일. 세스 휠러가 최초로 화장지 관련 특허를 받은 해는 1871년이다. 이때는 아직 롤 형태가 본격화되기 전의 제품이었고, 절취선(perforation)이 강조되지 않았다. 1891년 특허는 그보다 진화된 형태, 즉 오늘날과 같은 롤에서 앞으로 풀리는 형태 + 절취선이 있는 구조. / 미국 특허청(United States Patent and Trademark Office, USPTO)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 논쟁은 꽤 오래됐고,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라는 걸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발명가 세스 휠러(Seth Wheeler)가 1871년에 낸 두루마리 화장지 특허 도면에는 명백히 Over 방식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Over파는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리가 맞다”고 주장한다. 반면 Under파는 “실생활에선 Under가 더 실용적이다”고 맞서며, 자기만의 논리를 펼친다.

그러니 이쯤 되면, 단순히 어느 쪽이 옳으냐는 질문이 무의미해진다. 그건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방식을 더 편하게 느끼는가’로 결정되는 개인 철학에 가깝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자 우리는 웃기 시작했다. “야, 우리 이 주제로 책 한 권 쓰겠는데?” “화장지 철학, 어때? 소소한 불일치에서 인생을 배운다!” 술기운도 한몫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꽤 진지한 생각이 마음에서 맴돌았다. 과연 나는 일상 속의 다름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을까?

며칠 뒤 아내에게 슬쩍 물어봤다. “당신은 화장지 어떻게 거는 게 좋아?”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손에 닿기만 하면 되지. 뭐 그렇게 중요해?” 그 말을 들은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건 ‘진짜 관심이 없어서’인지, ‘괜한 싸움이 싫어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말은 안 하지만, 상대가 해놓은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넘어가는 것뿐.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대개 큰 문제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된다. 그 차이를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고, 얼마나 유연하게 반응하느냐가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나는 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그 후로는 어떻게 됐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젠 번갈아 가며 걸어. 내가 갈 땐 Over, 아내가 갈 땐 Under. 서로 터치 안 해.”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화장지 하나로 다투고, 결국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의 철학으로 평화를 찾은 부부. 어쩌면 이게 진짜 성숙한 공존 아닐까.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면서도 굳이 바꾸려 들지 않는 것. 누군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대신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 이후로 나는 누가 화장지를 어떻게 걸어놨는지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회사 화장실, 카페, 친구 집, 심지어 공항에서도. 그리고 그걸 통해 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 심지어 인테리어 철학까지 상상해 보았다. Over는 적극적이고 실용적인 성향일까? Under는 차분하고 정돈된 성격의 반영일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사소한 습관이 곧 정체성을 만든다”. 그러니까 화장지 방향도 일종의 정체성 표현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상대의 방식에 대해 함부로 “틀렸다”고 말하는 건, 그 사람의 일생을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웃기겠지만, 이걸 유쾌하게 받아들이면 의외로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야, 네 얘기 듣고 나니까, 나중에 딸 결혼할 때 사위한테 꼭 물어봐야겠어. ‘넌 화장지 어떻게 거니?’” 우리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소한 것들에서 갈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자 중에 여전히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체 뭐가 더 맞는 방식인데?” 자, 정답은 없다. 정말로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드는 논리는 이렇다. Over 지지자들은 ‘편리하다’, ‘깔끔하다’, ‘호텔에서도 Over다’, ‘특허 도면에 그렇게 되어 있다’ 등을 근거로 든다. Under 지지자들은 ‘정돈되어 보인다’, ‘아이와 반려동물이 휴지를 뽑기 어렵다’, ‘공간이 작을 때 유리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건 마치 짜장면과 짬뽕, 방바닥에 이불 깔지 침대 쓸지, 샤워 후 수건을 몸에 두를지 머리에 감쌀지 같은 문제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감각이 다를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의 요지는 단순하다. 화장지 방향은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취향, 관계의 방식이 녹아 있다. 그 사소한 다름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화장지를 갈며 생각한다. “오늘은 Over로 해볼까? 아님 Under? 뭐, 기분 따라!” 그리고 그런 유쾌한 고민이 있는 인생이, 의외로 꽤 괜찮은 인생 아닐까 하고 웃음 짓는다. 그러니 당신도 한번, 화장지 하나로 철학해 보자. 당신은 어떤 방향을 택하고, 어떤 다름을 받아들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은 결국, Over냐 Under냐를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니까.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현 용인효자병원 진료부장, 연세대학교 신경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 석·박사 취득
2000년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등재
2006년 대통령직속 산업의학 발달위원회 전문위원
저서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담장 너머 치매》,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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