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한의사 뇌파계 사용' 허용 판결…의료계 연일 강경 반응
大法 '한의사 뇌파계 사용' 허용 판결…의료계 연일 강경 반응
  • 강성기 기자
  • 승인 2023.08.2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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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정신과 치매 전문의‧단체, “뇌파계는 보조적 수단”

“재판부는 더 이상 한의사를 의사로 만들지 말라” 반발
대법원이 지난 18일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할 수 있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가 "재판부는 더 이상 한의사를 의사로 만들지 말라"며 비판했다.
대법원이 지난 18일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할 수 있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자 의료계가 "재판부는 더 이상 한의사를 의사로 만들지 말라"며 비판했다.

의료계가 대법원의 한의사 뇌파계 의료기기 사용 무죄 판결에 대해 연일 강경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합의체는 지난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한 데 이어 지난 8월 18일 뇌파계를 이용하여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사의 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없다며 한의사에게 내려진 한의사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한 2심의 판결을 확정하고, 보건복지부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18일 입장문을 내고 “현행 의료법이 의료와 한방의료를 이원화하여 규정하고 있다”면서 “대법원이 이와 같은 의료법 규정에 반해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할 수 있는 취지의 판단을 한 것에 참으로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의료법은 의사, 한의사로 하여금 각자의 면허 범위에서 의료행위, 한방의료행위를 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면 무면허 의료행위로 엄단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대법원 스스로 이와 같은 법 원칙을 무시한 판결을 이어가는 취지를 의료 전문가단체로서 결코 이해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현행 의료법 제2조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하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적시하여 의사와 한의사가 각자 면허를 받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각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면허의 경계를 파괴해 버리는 내용의 판결을 한 것은,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의료연구소는 21일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 무면허 의료행위 사건 관련 대법원판결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판결의 문제점과 파급효과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연구소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의료제도, 정책, 불법 의료를 개혁하기 위해 22명의 의사가 2017년 설립한 단체다.  

연구소는 “대법원은 뇌파 검사가 임상 경력이나 전문지식이 필요 없고 위해도도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모든 진단과 관련된 의료행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행위 자체가 아니라, 진단행위로 얻어진 결과물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통해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과정이다”고 반박했다. 

또 한의학 교과서 등에 의과 의료기기를 이용한 진단법과 치료법이 체계적으로 정립이 되어있지 않음에도 이를 이용하는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중소병원 리더들 모임인 대한병원장협의회는 같은 날 ‘한의사가 뇌파계로 파킨슨병·치매 진단을 가능토록 한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이번에 한의사가 사용하여 문제가 된 뇌파계는 뇌의 각 부위에서 나오는 ‘전기신호의 양’을 그대로 측정하여 이를 색으로 표현하여 현출하는 즉, 측정 결과가 상당한 수준으로 자동 판독되는 기능이 내장된 뇌파계”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대법원 또한 이를 전제로 한의사가 사용하더라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어서, 한의사가 통상의 뇌파계를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이라 볼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고 대법의 판결을 비판했다. 

이어 “문제가 된 뇌파계의 자동 판독기능의 경우 식약처의 허가조차 받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대법원이 이를 도외시하고 국민의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미명하에 오히려 국민의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만한 불합리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신경과의사회는 19일 성명을 통해 "대법원의 판결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면서 ”작년 한의사의 초음파 사용 사건 판결에 이어 오늘 내려진 대법원판결 또한, 그동안 일어났던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참사들과 맥락을 같이하는 사건이라고 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의료 윤리의 붕괴 위험성을 인지한 국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 세계신경학연맹, 아시아‧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 등 유수의 해외 의학회도, 뇌파 검사가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에 쓰이지 않으며, 뇌파 검사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신경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대한민국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세계적인 전문가 단체들의 우려와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뇌파 검사도 한방 원리를 이용한 것이고, 보조적으로만 사용하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특유의 비상식적인 논리로 한의사의 뇌파검사기 사용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21세기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연지정제 폐지와 대한민국 의료 모순 자체 정화를 기치로 26일 오후 5시 발족을 앞두고 있는 미래의료포럼은 “대한민국 의료의 조종이 울린 날”이라며 “이번 대법원판결은 한의사의 환자 기만 사기 행위를 인정하고 나아가 날개를 달아 준 반의학적이며 반지성적인 야만적 판결”이라고 비난했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는 ”한의사들이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한의학에 현대의료기기가 도움이 돼서가 아니다. 그들은 의사가 되고 싶은 것뿐“이라며 ”그러기 위해 한의사들은 환자의 안전과 위해에 상관없이 현대의료기기 허용 판례를 늘리고 싶어한다. 재판부는 더 이상 한의사를 의사로 만들지 말라“고 반발했다. 

23일 대한치매학회는 “이번 판결이 의료 현장에 많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치매 진단을 위해서는 인지기능 검사와 뇌(腦) 상태를 확인하는 뇌 영상 검사가 필수적이며 뇌파 검사의 경우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1년부터 시작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치매 적정성 평가도 뇌파 검사는 필수 검사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치매학회는 “이번 대법원판결로 인해 의료 현장에서 뇌파 검사 오남용과 치매 진료의 전문성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며 “환자의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즉, 의료기기 사용과 치매 진단에 있어 의학적 근거 준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유용성 평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치매학회와 치매 분야를 양분하는 대한노인정신의학회 한 고위직 임원은 “최신 아밀로이드 PET-CT만으로는 어느 전문의도 치매를 확정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뇌파계로 치매를 진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모두 치매 진단을 위해 오랜 기간 전문 교육을 받는다”며 “뇌파계로 치매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계의 비난 행렬은 지방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시의사회는 23일 규탄 성명을 내고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해서, 의료법은 의료인 면허 제도를 통해 의료행위를 엄격한 조건으로 의료인에게만 허용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대법원이 면허의 경계를 파괴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 것은,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 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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