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 칼럼] 장내미생물의 문제가 뇌 건강의 문제
[김용성 칼럼] 장내미생물의 문제가 뇌 건강의 문제
  • 김용성 교수
  • 승인 2024.03.26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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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장-뇌 축으로 이해하는 난치성 질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현상도 뇌장축 이론으로

최근 20여 년 동안 폭발적으로 수행된 연구를 통해 장내미생물이 인간의 건강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다양한 질병에서 장내미생물 이상이 발견되면서 질병 예방과 치료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장내미생물과 건강 그리고 다양한 질병과의 관계는 소화기질환이나 대사질환을 거쳐 뇌 건강에도 연관이 깊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미생물-장-뇌 축이라는 개념이 제안되었다. 본 칼럼 시리즈에서는 뇌와 장 그리고 뇌와 장내미생물의 관계에 대한 최신 지견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트레스는 위장관 기능 이상을 유발한다

본 칼럼의 주제인 미생물, 장 그리고 뇌 사이의 관계에서 우선 가장 오래전부터 알려진 뇌가 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 몸은 뇌가 신경을 통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의지와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위나 대장 같은 내장 기관도 뇌 기능에 영향을 받는다. 스트레스가 위장관 증상을 일으키는 사실을 대변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사촌이 땅을 산 것은 질투 같은 감정을 유발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감정 변화가 왜 아무 관계 없는 배를 아프게 하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배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 되고, 심하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 현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잘 알려져 왔는데, 로마 제국 당시 그리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갈레노스(Aelius Galenus 129-216)는 “열정이나 감정이 질병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고대로부터 환자를 대할 때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을 동시에 치료하는 <전인치료> 개념이 있었지만,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가 정신과 육체를 각각 분리해 생각하는 이원론을 주장하면서부터 의사들은 육체에만 집중했다. 이후 근대에 이르러 미생물을 발견하면서 병원균 감염이 병의 원인이라는 이론이 제시됐고, 동시에 병리학, 생화학, X-선 같은 학문이 발달하면서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반드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원인이 있어야 ‘질병’이라고 진단하는 의학 사조가 정립됐다. 이런 시선에서는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아 배가 아픈 것은 실제 질병이 아니거나 정신적 문제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뇌가 장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됐는데, 그 중 몇 가지 대표적인 내용을 소개해 본다. 우선 뇌가 위장관의 생리적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파블로프(Ivan Petrovich 1849-1936)의 개 실험을 들 수 있다. 개에게 밥을 줄 때마다 종을 치는 것을 반복해 학습시키면, 나중에 밥을 주지 않고 종만 치더라고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뇌에서 밥을 줄 거라는 기대감을 느끼는 것이 침을 흘리는 생리적 변화의 유발을 증명한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주로 위에 구멍이 뚫린 위루 환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위루를 통해 위를 직접 관찰하면 분노, 강렬한 쾌감, 공격적 행동 등은 위 점막의 충혈, 위 운동 및 분비 증가와 연관되고, 공포나 우울 같은 감정은 위점막이 창백해지고 위 운동 및 분비 감소와 연관된다.

그렇다면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픈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51년 미국 코넬대학의 앨미(Thomas P. Almy)교수는 아주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실험을 했다. 22세의 의과대학 4학년 남학생에게 직장경 선별 검사가 필요한 임상연구에 참여하라고 하고, 검사 당일 직장경 검사를 하다가 마치 암이 발견돼 조직검사를 하는 것처럼 연극을 했다. 이에 검사를 받던 학생은 불안감이 점점 커졌고 검사 시작 시에는 천천히 움직이던 대장이 점차 수축이 심해지면서 충혈이 증가했다. 그런데 앨미 교수가 학생에게 지금까지 상황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설명하고 실험에 협조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자 심하게 수축하던 대장은 즉시 조용해졌고 점막 혈관 충혈도 정상이 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 대장에 직접적인 손상이나 조작이 없이 정신적 불안감만 유발해도 대장 생리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Almy 교수의 실험. American Journal of Medicine 1951. / 김용성
Almy 교수의 실험. American Journal of Medicine 1951. / 김용성

 

이렇게 20세기 후반까지 다양한 생리 실험을 통해 뇌 기능의 변화가 장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뇌장축 이론(Brain-Gut Axis Theory)이 정립됐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위 운동을 감소시키고 대장 운동을 증가시키는데, 과민성장증후군 같은 질병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이 반응이 과장되게 나타난다. 그래서 많은 환자가 스트레스가 심하면 소화불량이 생기거나 배가 아프면서 설사를 경험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 위장까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20세기 후반에 활발히 연구가 되어 코르티코트로핀분비호르몬(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 CRH)이라는 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혀졌다. 뇌의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CRH는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해 부신피질자극호르몬(Adrenocorticotropic Hormone, ACTH)을 분비하게 하고, ACTH는 최종적으로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솔을 분비하게 하는 HPA 축을 구성한다. 학생 때는 주로 호르몬 역할로만 배운 물질이 지금은 뇌 안에서 스트레스를 매개하는 주요 인자로 알려지면서 호르몬 대신 CRF (Corticotropin-Releasing Factor)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필자는 소화기내과를 전공한 임상의사이기는 하지만 이 스트레스와 위장관 증상에 관심을 가지고 동물실험을 통해 CRF를 연구하는 실험실로 연수를 갔었다. 동물실험을 통해 뇌에 CRF를 직접 주입해 보면 스트레스에서 나타나는 위 운동 감소, 대장 운동 증가 및 대장점막 염증 증가 등이 유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 중간 과정에 자율신경계가 작용한다.

 

스트레스가 위와 대장 운동에 미치는 영향과 증상 / 김용성
스트레스가 위와 대장 운동에 미치는 영향과 증상 / 김용성

이러한 스트레스와 위장관 증상 사이의 기전을 이해하고 임상에서 환자를 보는 진료 과정에 적용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반복적으로 배가 아프지만 내시경이나 혈액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어 신경성이라는 말만 들어온 환자들은 검사해도 진단이 안 돼 답답해한다. 무엇보다 가족이나 동료들로부터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는데 왜 자꾸 아프다고 하느냐?"라며 이해를 받지 못하는 낙인 효과 때문에 더욱 힘들어한다. 이런 환자에게 뇌장축 내용을 설명해 주면 본인이 너무 예민하거나 정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이해만으로도 질병 연관 불안이 감소하면서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될 수 있다.

고대의 전인적 치료 방식이 현대에서는 뇌장축 이론으로 재탄생하면서 난치 기능성 질환을 이해하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의사들도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용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용성
소화기내과 전문의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겸임교수
좋은숨김휘정내과 부원장
Journal of Neurogastroenterology and Motility 부편집장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지 부편집장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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