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③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③
  • 이아영 작가
  • 승인 2021.10.06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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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3. 숙자씨의 공포스런 하루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숙자씨는 자신의 스카프를 남이 빼앗아 갔다면서 앞에 어르신과 다투고 있다.
왜 말도 없이 가져 가냐며 삿대질 중이다.
숙자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것을 남이 가져갔다며 소란을 피운다.
자신의 물건과 남의 물건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 꺼를 가져갔다며 언성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계절에 관계없이 옷을 입고 온다.
여름인데도 겨울점퍼를 입고, 겨울인데도 한여름 원피스를 입는다.
보호자도 아침마다 실랭이 하느라 힘이 든다.
숙자씨는 치매 환자 중에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숙자씨가 처음 온 날, 우리는 놀랬다.
나이에 비해 걸음걸이가 너무 씩씩했기 때문이다.
90세가 넘은 나이에 치아는 몽땅 빠져서 없었지만, 걸음걸이는 50대처럼 씩씩했다.
숙자씨를 소개해 주라고 하자, 앞으로 당당히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나이는 85세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이다.
사실 숙자씨의 나이는 91세다.
다른 어르신들과 달리 낯가리는 게 없다.
노래한곡 들려줄 수 있냐는 말에 한 많은 대동강을 불렀다.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2층에 일하는 직원까지도 내려왔다.
한 많은 삶의 세월을 노래하듯 열창을 했다.
그 후로 숙자씨는 이곳의 가수가 되었다.
다음날 한 많은 대동강 앵콜을 들려주라고 하자 다른 노래를 불러주겠단다.
조용필의 노래를 불러줬다.
노래를 들으면서 숙자씨의 지난 삶의 애환이 느껴졌다.
숙자씨는 노래 부를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젊었을 때 자신은 가수였다면서 말이다.
노래 소리와 음량이 하도 커서 물었더니 자신은 밥 힘으로 산다고 했다.
하긴 치아가 몽땅 빠졌는데도 밥을 잇몸으로 어찌나 잘 드시는지 깜짝 놀랐다.
남들보다 밥 양도 많고 간식도 더 달라고 한다.
어느 날, 숙자씨와 동갑인 어르신이 반갑다며 나도 91세라며 친구하자며 악수를 청했다.
숙자씨는 무슨 말 이냐며 자신은 85세라고 했다.
그 어르신은 동갑이라는 반가운 마음에 숙자씨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날 숙자씨는 왜 남의 나이를 당신 마음대로 말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85세인데 당신이 뭔데 91세라고 하냐고 말이다.
우리는 85세가 맞습니다.
라고 말하고 진정시켰지만, 숙자씨는 남의 나이 가지고 놀린다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그 후로 더 이상 숙자씨의 나이를 거론하지 않았고 85세의 숙자씨라 불렀다.
숙자씨의 기억은 85세에서 멈춰있는 듯 했다.
터프한 숙자씨 때문에 한 번씩 센터는 발칵 뒤집힌다.
양치 시간이 되면 한명씩 호명한대로 욕실로 들어온다.
혹시나 미끄러울까봐 욕실은 항상 건조 상태다.
숙자씨의 차례가 되고 양치질을 하는데 입에 있는 양치물을 바닥으로 뱉어낸다.
그것도 모자라 침도 바닥에 퉤퉤 뱉어낸다.
세면대에다 뱉으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숙자씨에게 설명을 해도 숙자씨는 알아듣지 못한다.
왜 이래라 저래라 하냐면서 당신이 이곳 주인이냐며 삿대질이다.
큰소리 치는 숙자씨 앞에서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숙자씨는 큰딸과 살고 있다.

큰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큰딸은 자신의 어머님은 고집이 너무 세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어느 날 숙자씨는 집에서 미끄러져서 팔이 찢어졌다.
딸은 응급실에 모시고 가서 상처를 꿰멨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숙자씨에게 꿰멘 상처 좀 보겠다며 반창고를 떼려고 했더니, 아프다며 엉엉 우는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아프다고 하기엔 엄살이 엄청 심했다.
한 번씩 숙자씨는 소녀처럼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아이처럼 어린양을 부린다.
제발 살살 치료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숙자씨를 보며 나는 웃음이 나왔다.
숙자씨의 마음에는 소녀의 마음과 모질게 견디는 마음이 존재하는 듯 했다.
상처를 꿰맨후 2주정도 지난 후 보호자에게 연락이 왔다.
실밥을 빼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숙자씨는 왜 실밥을 빼냐며 막무가내란다.
그 날,나는 숙자씨를 상담실로 불러서 이야기 했다.
실밥을 빼지 않으면 살에 염증이 생겨서 큰일 난다고 말이다.
숙자씨는 당신 말이 확실해요?
당신이 의사에요?
몇 번을 묻더니 다음날 병원에 다녀왔다.
아팠냐고 물어보니, 숙자씨는 씨익 웃으며 하나도 안 아팠다고 했다.
이럴 때 보면 한없는 소녀처럼 보였다.
보호자인 딸도 숙자씨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평생 똑똑한 엄마일줄 알았는데, 지금의 상태를 보면서 딸은 많은 생각이 교차한 듯 했다.
숙자씨의 집으로 송영을 가보면 대부분 딸이 나와 있다.
딸이 초등학교 교사인데, 특별히 바쁜 날을 제외하고는 딸이 엄마를 마중 나와 있다.
숙자씨는 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딸과 눈 마주침도 하지 않고 휭 앞장서 간다.
딸 역시 그런 엄마를 이해하는지 뒤에서 따라간다.
숙자씨는 딸이 초등학교 교사라면서 내 딸은 최고다 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어느 학교 교사냐고 물어보면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아냐며 흥분을 한다.
그러면서 당신의 딸 자랑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내 딸이 어떤 딸인 줄 아냐며 술술 이야기 한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고 말이다.
딸 자랑하는 숙자씨도 과거에는 딸에게 최고의 엄마였음에 틀림없었을 거 같다.
몇 번이곤 내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를 자랑스럽게 외친다.
똑소리 나게  자녀 교육을 했을 법한 숙자씨의 지난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씩 인지 수업을 하다보면 숙자씨는 자신의 이름을 적는 곳에 한자나 영어로 적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한자 풀이까지 해준다.
자신의 이름은 최고의 이름이라고 말이다.
숙자씨는 인지 수업을 할 때면 가장 먼저 끝낸다.
성격이 급한 숙자씨는 인지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색칠을 하는 것도, 숫자 공부를 하는 것도 싫어한다.
한자로 써놓은 자신의 이름을 꾸미며 몇 번씩 설명한다.
수업보단 자신의 이름을 꾸미고 장식하는 게 더 즐겁다.
숙자씨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노래 교실이다.
노래 부를 때면 그 누구보다 목청껏 따라 부른다.
숙자씨는 학창시절에 음악을 좋아했을 것 같다.
노래하면서 쏟아내는 열정을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다.
며칠 후 숙자씨는 새로 오신 어르신과 다툼이 벌어졌다.
그 어르신은 숙자씨의 상태를 몰랐기에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나이를 물었다.
숙자씨는 자신은 85세 말띠라고 이야기 했다.
그 어르신은 85세면 말띠가 아닌데요?
말띠라고요? 라며 계산을 하더니 91세가 말띠라고 설명했다.
숙자씨가 나이에 예민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날 우리 센터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신이 뭔데 내 나이를 언급하냐고 말이다.
내가 85세라는데 왜 91세라고 하냐며 언성을 높혔다.
숙자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내가 늙어 보이냐면서 삿대질까지 해댔다.
그날 오후에는 숙자씨의 목소리로 다른 어르신들까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는 그런 숙자씨를 보며 안타까웠다.
자신의 기억은 85세에 머물러 있는데, 자꾸 91세라고 하니 흥분이 된 것이다.
숙자씨를 따로 불러서 진정을 시키려했지만, 그날 오후 내내 숙자씨는 화가 났다.
자신보고 150살이라고 했다면서 말이다.
치매 환자들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숙자씨 역시 과거의 기억에서 85세라는 나이에 머물러 있었다.
숙자씨의 딸은 자신의 어머니의 상태가 점점 심해져서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집에서는 약도 안 먹겠다고 하고, 옷도 안 입겠다며 딸과 전쟁 중이다.
그러다 보니 약은 내가 챙겨준다.
옷도 센터에 놓고 입혀준다.
한 번씩 약을 주면 왜 내가 약을 먹어야 하냐며 자신은 아픈 곳이 없다고 한다.
왜 강제로 약을 먹이냐며 나에게도 언성을 높인다.
한 번씩 약을 먹이기 위해 몇 번씩 설득을 해야 하지만, 나는 숙자씨에게 최대한 설명하고 들어준다.
그러다보면 마지막에는 약을 먹으며 이렇게 말한다.
약이 엄청 써요.
나는 얼른 잘 드셨어요. 라며 박수를 쳐준다.
말 그대로 어린아이 돌보듯 말이다.
숙자씨는 어린아이처럼 달래고 설명 해 주고, 칭찬 해 줘야 말을 듣는다.
나는 숙자씨의 상태를 알기에 최대한 오버하며 다가간다.
그런 숙자씨도 한번씩 소녀 감성을 보인다.
숙자씨 오늘은 옷이 엄청 예뻐요.라고 나는 묻는다.
데이트 하러 가나요?
숙자씨는 수줍게 웃으며 아 ~남자 친구 한명 소개해 줘요.
명짧고 돈많은 사람으로요.
밝게 웃으며 숙자씨는 농담을 받아낸다.
숙자씨는 어떤 스타일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왕이면 잘생기고, 돈도 많아야죠..
바람둥이 말구요..
숙자씨도 천상 여자였다..
그래서인지 숙자씨는 남자 어르신들에게는 별로 화를 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싸운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였다.
어쩌면 숙자씨는 남자 어르신들 앞에서는 조신한 숙녀가 되고 싶은 건 아닐까?
수줍게 웃으며 애교를 뽐내는 숙자씨다.
한번은 노래 강사가 노래를 가르치면서 내마음 알랑가 몰라. 라며 애교 있게 하라고 가르쳤다.
온몸으로 내 마음 알랑가 몰라 하면서 애교부리는 숙자씨를 보며 강사가 깜짝 놀랬다.
숙자씨는 남자 꼬시는 선수라고 말이다.
숙자씨에게 남아있는 소녀 감성을 볼 때면 나이가 들어도 가냘픈 여자라고 느껴졌다.
한때 자신도 사랑받았을 한 여인이었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한 여인이었을 테니 말이다.
오늘은 비가 처량하게 내린다.
숙자씨에게 노래 한 곡조 신청하니 한 많은 대동강을 들려준다.
자신의 18번이라며 말이다.
슬프게 눈물 흘리며 부른 이 노래의 가사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만날 그때까지
아 ~ 소식을 물어본다
한많은 대동강아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편지 한 장 전할길이
이다지도 없을소냐
아 ~ 썼다가 찢어버린
한많은 대동강아

숙자씨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을 아련한 추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숙자씨는 가슴을 움켜쥐며 울었다.
뭘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 많은 세월들이 생각나서 일까?
그날따라 숙자씨의 가냘픈 외모가 더 처량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잘 견뎠을 숙자씨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도 잘 지내길 바래본다.
오늘도 숙자씨는 힘차게 센터로 들어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어제까지 애절프게 보였던 모습도 오늘은 아무 일 없듯 밝은 모습이다.
우리의 인생도 어제의 슬픔이 오늘의 기쁨으로 바뀌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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