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미 칼럼] 쓱쓱 알록달록! 색칠로 두뇌를 반짝반짝 닦아보자
[양은미 칼럼] 쓱쓱 알록달록! 색칠로 두뇌를 반짝반짝 닦아보자
  • 양은미 대표
  • 승인 2024.03.08 12:0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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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기능이 떨어졌을 때 사용할 비장의 무기를 우뇌에!

몇 년 전만 해도 어르신을 위한 색칠 공부 책을 찾기 힘들어서 아동용 색칠 공부 책을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 어린 손주와 함께 색칠하면 즐겁겠지만, 혼자서 로봇을 칠하거나 순정 만화 주인공을 칠하게 되면 흥미가 떨어지고 시시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에는 어르신 인지 개선을 위한 좋은 워크북이 많이 출간됐고, 어르신 회상 활동을 위한 색칠 공부 책도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인지 개선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참 다행이다.

 

색칠하고 그리는 게 두뇌에 도움이 될까?

고령 부모나 조부모를 위해 서점에서 색칠 공부 책을 고르면서 문득 ‘정해진 모양에 색을 칠하는 게 뇌 건강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괜히 사다 드렸다가 사용 안 하면 무슨 낭패냐?’ 하는 생각도 들어서 사는 게 망설여지고, 부모님이 싫어할 것 같아 치매 검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힘든데, 치매 예방하라고 색칠 공부 책을 사다 드리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아직 이런 것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싫은 소리라도 하실 것 같아 걱정스럽다. 누군가 이런 활동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확실히 말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인지 미술 활동은 인지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작업치료나 미술치료, 예술치료 등 상담 심리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치매 환자나 노인 대상 집단미술치료 실험을 통해 정서적·인지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실제로 노인 교육 현장에서 인지 미술치료의 긍정적인 효과를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인지 미술 활동은 다양한 인지 자극을 주고,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주기 때문에 사회성 활동과 언어 활동의 효과도 톡톡히 볼 수 있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서 소근육 운동으로도 안성맞춤인 활동이다. 멋진 밑그림을 예쁘게 칠하다 보면 아름다운 꽃을 볼 때 드는 행복감이 머릿속에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난다.

 

마음산책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어르신 대상으로 노인 복지관, 주간 돌봄 센터나 치매안심센터에서 오랫동안 인지 미술치료를 진행했다. 활력이 떨어지고 기분이 축 처진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활기차게 싱싱한 두뇌 자극을 주기 위한 재료와 활동을 늘 고민했다. 그래서 찰흙부터 크레파스, 곡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화투에서 곡물 이야기 등 어르신들이 하실 말씀이 많은 주제로 활동해 왔다. 50분 수업 내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고, 예쁘게 색을 입혀 완성한 미술작품을 앞에 놓으면 참석한 어르신 모두 뿌듯해하신다. 거기다 작품에 대해 칭찬하면 어르신 입이 귀에 걸린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여 어르신들의 기분이 무척 좋다는 확신이 든다. 긍정적 정서로 충만한 시간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기분이 좋아지고 인지 자극을 통한 두뇌 운동을 하기 위해서만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 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림에는 그린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고 색상은 마음의 상태를 알려 준다. 특이한 형태나 색상 사용을 하는 경우 유심히 어르신의 마음 상태를 살피고 대화를 통해 풀어낼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인지 미술 활동은 미술치료로서 상담 기능 역할도 수행한다.

이스라엘의 Beit Berl 대학 예술학부의 미술치료 교수인 루스 아브라함(Ruth Abraham)은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미술치료를 하며 연구한 결과와 사례를 저서 《치매와 미술치료(Alzheimer’s Patients Communicate through Art)》에 담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치료법이 없는 치매에 대해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주요한 치료 방법으로 남아 있는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며, 미술치료가 치매 환자의 인격을 지지해 주는 치료이자 기능 유지를 돕는 적합한 방법이라고 했다.

아브라함 교수는 치매 환자의 뇌가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기능이 떨어져 언어 표현에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내면세계를 예술이라는 상징 언어를 사용해 대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이 언어가 그 뜻을 잃어버렸을 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뇌는 심상을 떠올리고 상징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 알츠하이머병 발병 뒤 좌뇌가 담당하는 언어 능력보다 그 능력이 더 오래 간다. 실어증 환자도 이미지를 통해 자기 경험을 드러낼 수 있고 긍정적인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언어 능력을 상실해 가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미술치료가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에는 최근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감정, 감각, 직관, 보편적 도덕규범 등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다. 이런 기억은 우뇌와 관련이 있으며, 좌뇌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보존된다. 감정이 예전처럼 풍부하지 못하지만 계속 자신의 욕구와 취향 그리고 삶의 관점을 표현한다. 루스 아브라함은 미술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지면 이런 능력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으며, 고립감, 우울감 등으로 인해 치매의 악화를 초래하는 정서적 방치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나덕렬 박사의 저서 《뇌美인》에서 우뇌에 좋은 활동으로 그림 그리기, 색칠하기를 1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외에 종이접기, 풍선아트, 뜨개질, 수제품 만들기, 조각하기, 목공예, 도자기 굽기 등 다양한 미술 활동을 추천한다. 인지기능이 좋을 때 우뇌에 좋은 활동을 많이 하여 우뇌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는다면 루스 아브라함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좌뇌가 퇴화해 언어 기능이 떨어질 때 요긴하게 우뇌를 활용할 수 있다. 색칠하기나 그림 그리는 활동은 두뇌 건강에 좋다.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정서적 어려움에도 My Way

치매에 걸리면 무기력하게 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정신 건강이 나빠져도 자신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가 많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해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잭슨 폴록(1912~1956), 프란츠 클라인(1910~1962)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같은 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하고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린 웰렘 드 쿠닝(1904~1997)은 이들과 달리 92세까지 장수하며 작품 활동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치매에 걸렸음에도.

웰렘 드 쿠닝은 70대까지 알코올과 우울증에 빠져 있었으나 부인의 돌봄으로 생활 습관을 바꾸고 건강관리를 해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왕성하게 활동했다. 특히 1980년대 그는 알츠하이머병을 겪으면서 점차 심해지는 증상에 창작 방식을 바꿔 새로운 화풍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불편함에 굴복하기보다 치매를 품고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초기 그림은 거칠고 역동적이며 격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후기의 그림은 강렬하기보다는 차분한 색상과 선이 잘 조율되며 더 추상적인 형태를 보인다.

물론 치매로 인해 인지기능과 신체 기능이 떨어져 생겨난 단순한 형태로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후기로 갈수록 더욱 완전한 추상의 형태로 성숙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피카소의 화풍을 떠올려 보라. 피카소의 화풍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추상적인 형태로 발전하면서 절제하고 압축된 형태를 담은 화풍으로 성숙해 가지 않는가?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로 화풍의 변화를 기능 저하의 결과물로 헐뜯어 작품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다.

 

웰렘 드 쿠닝, '발굴(Excavation)', 1950, 캔버스에 유화, 205.7 x 254cm, 시카고예술원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소장 ©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웰렘 드 쿠닝, '발굴(Excavation)', 1950, 캔버스에 유화, 205.7 x 254cm, 시카고예술원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소장, ©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윌렘 드 쿠닝, '무제(Untitled)'1986, 캔버스에 유화, 런던 스카르스테드 갤러리(Skarstedt Gallery) 출품작, ©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윌렘 드 쿠닝, '무제(Untitled)'1986, 캔버스에 유화, 런던 스카르스테드 갤러리(Skarstedt Gallery) 출품작, © The Willem de Kooning Foundation

치매에 걸렸어도 낙관적인 성격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속해서 어울리며 사시는 어르신을 많이 본다. 건강한 어르신들도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챙겨주신다. 사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어 남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건강할 때 복지관, 자원봉사, 종교 활동 등 사회 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혹시 나중에 인지기능이 떨어졌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우뇌에 잔뜩 만들어 두자.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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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2024-03-16 09:47:31
색, 그림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송지영 2024-03-08 15:38:57
좌뇌만 쓰고 사는 사람입니다~ 미술과 음악의 예술이 인생을 풍요롭게 할수 있음을 요즘 더욱 마니 느끼고 있어요~ 요즘 깜빡깜빡 할때가 많아 치매걱정도 되는데 올리신 그림들을 보니 뭔가 심적여유가 생기는것 같아요~ 미술 그리기 도전하고 싶네요^^

강윤정 2024-03-08 15:38:33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