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 많아야 한다지만, 치매 등급 노인의 일자리는?
‘일하는 노인’ 많아야 한다지만, 치매 등급 노인의 일자리는?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12.11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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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1~5등급 판정 어른은 일할 자격 주지 않는 사회
치매에 걸려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회와 연결해주는 역할은 누가...

일본 도쿄 센가와에 위치한 카페 ‘오렌지데이 센가와’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서빙한다. 치매로 주문서를 잊어버리거나 주문하지 않은 테이블에 음료를 서빙하거나 다른 음료를 가져다 주는 등 실수 연발이지만, 카페 손님들은 치매 노인이 서빙 중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불평하지 않는다. 주문하지 않은 음료가 나와도 오히려 즐거운 이벤트로 간주한다.

이곳은 문밖 출입을 거의 못하는 치매 환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카페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치매 환자도 집이나 병원이 아닌,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반영했다. 치매 연구자들은 “치매 환자가 새로운 사람과 교류하고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병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우리보다 일찍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은 2017년부터 ‘치매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오렌지데이 센가와‘는 주인이 카페를 인수한 뒤 센가와 당국과 협력해 지역 내 치매 노인에게 근로 기회를 제공했다. 관과 민이 협력한 치매 환자 일자리 제공 서비스다.

2년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인 모리타 토시오(85) 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16살 딸과 함께 카페를 찾은 아리카와 토모미(48) 씨는 이곳에서 서빙하는 치매 노인을 보고 “아버지와 함께한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날 뻔했다”고 아픔을 고백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년간 치매를 앓았다.

일본 카페 '오렌지데이 센가와' 홈페이지 캡처
일본 카페 '오렌지데이 센가와' 홈페이지 캡처

도쿄 마치다시에서는 스타벅스 여러 곳을 치매 카페로 지정해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자유롭게 이용하게 했고, 일반인도 치매 환자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치매 인식 개선의 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마치다시에 사는 아키노 할아버지는 오전 11시에 혼다 자동차 대리점에 가서 승용차 먼지를 닦는 일을 한다. 이 혼다 대리점은 아키노 할아버지를 포함한 어르신 세차원 7명이 초록색 장갑을 끼고 매장 앞에 놓인 차를 닦는데 모두 치매 환자다. 이 대리점의 고바야시 에이사쿠 대리는 “어르신들은 느릴지언정 열심히,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게 맡은 일을 해낸다”고 설명했다. 치매 노인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비영리단체 데이즈비엘지(DAYS BLG!)가 일자리를 공급한 덕분이다.

이처럼 일본은 시와 민간의 협업, 비영리단체의 활동 등으로 일찍이 치매 노인에게 단순 노무 위주의 일자리를 제공해왔다. 치매 노인이 요양원이나 돌봄 병원에만 있지 않고 대중과 만나 인지장애 진행 속도를 완화하고, 대중이 치매를 이해하는 가운데 치매 노인이 외출 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다.

비영리기업 데이비엘지(DAY BLG!) 사이트 캡처
비영리기업 데이즈비엘지(DAYS BLG!) 사이트 캡처

한편, 한국도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늘어나는 치매 노인에게 사회 활동 기회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시와 서울시광역치매센터는 40~50대 초로기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초록기억카페을 선보였다. 사전·사후 효과성을 평가해 향후 서울 25개구 치매안심센터 확대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담당자는 “현재 12월 7일까지의 운영한 현황을 분석 중이며 이 결과를 토대로 내년 확대 운영 가능 여부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60세 이상 치매 환자의 일자리 시범 운영은 언제쯤 가능할 지 알 수 없다.

지난 9월, 일본의 치매 카페 모델을 가져온 노원구는 최초로 한국형 치매카 페를 조성했다. 초로기 치매 환자의 사회활동을 지원해 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치매 환자가 지역사회 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노원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치매 환자 수가 9,701명으로 가장 많다(2022 대한민국 치매 현황). 구와 동네카페가 협약을 맺고 초로기치매 판정을 받은 환자가 컵 정리, 주문받기, 매장 관리 일을 한다. 활동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1시간에 1만 원 상당의 상품권과 교환할 수 있도록 지역 마트와 협약을 맺었다.

치매카페에서 초로기치매 환자가 굿즈 배부하는 모습 / 노원구 제공
치매 카페에서 초로기치매 환자가 굿즈를 배부하는 모습 / 노원구 제공

치매 친화 지역으로 조성하려는 노력이 조금씩 일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는 2조 26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노인 일자리 개수를 103만 개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최대폭의 예산을 투입한 노인 일자리 지원사업이다. 대상은 65세 이상이며 모집하는 사업은 공익활동형과 일부 사회서비스형이다. 사회서비스 선도 모델형과 민간형(시장형, 취업 알선형,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기업)의 경우는 60세 이상도 지원할 수 있다.

지원사업 문의 전화로 치매 등급 노인의 지원 자격에 대해 확인해 보았다. 담당자는 “치매 1~5등급 판정 어른은 자격이 안 된다”며,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분은 일반 노인과 같이 면접 시 대화와 거동을 확인 후 일자리를 얻을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로 가는 단계의 문밖에 있는 노인에게만 한정적인 기회를 부여하는 우리의 노인 일자리 지원사업은 언제쯤 치매 친화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될까? 일본은 카페 서빙, 세차 외에도 야채 깎기, 전단 배포 등 다양한 일에 치매 노인을 고용한다.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는 요건 확인 후 거의 채용한다.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일부 필요하다고 해서 단순 노무 근로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치매 중증도를 구분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장기요양보험제도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노인 일자리 참여를 혜택의 중복이라고 본다면, 일을 하면서 치매가 악화되지 않는 효과를 사전 차단하는 오류에 빠진다. 치매 환자의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감은 적절한 일을 하면서 줄일 수 있으며, 치매 환자의 사회참여는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치매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단순 노무 위주의 노인 일자리에서 치매 환자를 세분화해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치매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치매 판정 이후 사회와 단절돼 어두운 방에서 여생을 보내는 구조에서는 초기 치매부터 희망이 사라진다.

한국의 치매 일자리는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시혜를 베푸는 서비스 일자리를 뜻한다. 치매 노인이 일하는 주체인 일자리는 찾을 수 없다. 자연히 가족과 친구들 대화에서 치매는 화두에 오르지 못하는 두려운 병이다. 우리도 비영리단체 활동과 국가 지원의 연대로 치매 노인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치매 노인을 시혜 대상으로 낙인찍기보다 사회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정책이 아쉽다.

“치매에 걸려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회와 연결되고 싶다”는 말은 속으로 삭혀야 하는 우리 사회. 더 늦기 전에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치매 환자와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어르신들 표심을 얻기 위해 보여주는 정책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치매인데도 치매인으로는 살기 어려운 사회, 의지와 상관 없이 원하지 않는 삶을 강요당하는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함께 고민하는 치매 친화형 노인 일자리 정책 마련과 민간 영역과의 협업 및 실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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