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재가 케어 8년, 어머니의 보호자로 살아온 시간
[황교진 에세이] 재가 케어 8년, 어머니의 보호자로 살아온 시간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3.03 2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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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창과 폐렴 없이 간호한 비결

나는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졸업식 날에 학교에 가지 않고 어머니 병실을 지켰다. 구의동 혜민병원에서 시작한 어머니의 투병은 졸업식이 있던 날은 경희의료원으로 옮겨서 계속됐고 의식을 잃은 지 한 달 만에 한쪽 눈을, 두 달 만에 다른 한쪽 눈을 뜨실 만큼 회복은 더뎠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식에 참석해 평범한 졸업생들처럼 축하 사진을 찍고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학 졸업식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졸업식을 넘겼고, 나는 어머니 병실을 지키는 보호자로 살아갔다. 대학원은 입학 후 첫 학기에 한 달 정도 수업을 들었지만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1년 뒤 결국 복학하지 못하고 자퇴서를 제출했다. 경희의료원에서 5개월 투병 후 서울대병원으로 이원해서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의학적으로는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진단과 함께 어머니는 가망 없는 퇴원을 권고받았다. 1998년 6월 말이었다.

집에서 나는 빠른 속도록 어머니 간호에 전문가가 되어야만 했다. 식물 상태의 중환자를 간호하는 일을 배워본 적 없고, 오직 병원에서 경험한 짧은 간병의 기술로 집에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주간에 교대할 간병인이 있었고, 다급한 일이 발생하면 가까이서 해결해 줄 의료진이 있었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벼랑 끝에 내몰린 긴장을 참고 모든 상황을 극복해 내야 했다.

그 시간이 내게 기회로 다가왔다. 혼자서 더 세심하게 간호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내가 만든 매일의 타임 테이블, 주간 계획, 월간 계획에 따라 최적의 간호를 해드릴 수 있었다. 나는 건축구조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어야 했지만, 집에서 중환자인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들로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를 간호하는 일상에 익숙해졌고, 어머니는 병원보다 훨씬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안방의 1인실 환경에서 잘 계셨다. 놀라울 만큼 욕창과 폐렴으로부터 안전한 모습을 유지하셨고, 나는 어머니의 손과 발, 호흡이 되는 보호자로 살아갔다. 그 당시 모습을 회상해서 기록한다.


주기적으로 매일 하는 일, 매주 하는 일, 매달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중 어머니 머리 깎아드리는 일은 매달 해야 하는 일에 속했다. 나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 외에 이렇게 가위손도 된다. 어머니 머리 깎아드리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힘 많이 쓸 각오를 해야 한다. 그 전날 밤부터 꼭 기도를 드린다. 머리 깎는 동안 가래가 쌓여 호흡이 막히지 않도록, 내 팔과 허릿심이 딸리지 않도록.

머리 깎기나 목욕, 모두 침대 위에서 이뤄진다. 우선 식염수를 묻힌 솜을 핀셋으로 잡고 구강 청소를 한다. 가그린을 묻힌 거즈를 핀셋에 감아 혀를 닦아낸 후 물을 반 컵 정도 입에 넣어 드린다. 석션을 해가며 기관 절개한 부분인 T튜브 아래 Y거즈 드레싱을 마친다. 정수기 물을 받아 가제 수건에 적셔 얼굴을 닦아드린다. 나는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덜기 위해 세안을 정수기 물로 해드렸다. 눈 주위와 귀 뒷부분과 목 주변을 깨끗하게.

침대 높이를 낮춰 머리 감을 준비를 한다. 수건 두 개를 둘둘 말아 어깨 밑에 받쳐서 머리와 침대 사이 공간을 확보한다. 방수포를 어깨 아래에 대고 세숫대야에 담아 놓은 물로 머리를 적신다. 한 손으로 어머니 머리를 잡고 의료용 가위로 귀 주위부터 깎아 나간다. 오래 지체할 수 없으므로 신속하게 양쪽 귀 윗부분의 머리카락을 정돈한 후, 머리 위와 뒷부분의 머리카락을 고르게 잘 커트한다.

이때 가래가 끓으면 큰일이다. 어머니가 안정감을 가지고 차분히 계시도록 조심조심 신속하게 자른다. 머리카락 범벅이 된 세숫대야의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떠 와서 머리를 헹군다. 여러 번 물을 갈아서 헹군 후, 계속 한 쪽 손으로 머리를 들고 다른 손으로 샴푸 칠을 하고 페트병에 담아 놓은 물을 머리 위에 부어 깨끗하게 헹군다. 눈과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조심 수건으로 닦아드리면서 귀와 목뒤 쪽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떼어 낸다.

목에 쌓인 가래를 석션하고 감기 들지 않도록 빨리 드라이로 머리를 말린다. 면봉으로 귀의 물기를 제거하고 콧속도 깨끗하게 닦아낸다. 스킨과 로션, 아이크림을 얼굴에 펴 바른 뒤 웃옷을 벗기고 등에 수건을 깔아가며 목욕을 시킨다. 이어서 한 쪽씩 등을 들어서 닦고 그 다음 다리, 엉덩이 모두 비누칠하며 깨끗이 씻기면서 바로바로 수건으로 닦는다. 모두 씻긴 후 등 아래 시트를 한쪽으로 밀어 넣어 빼낸다. 성인용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와 상의를 입힌다.

이렇게 머리 깎기와 목욕이 끝났다. 울트라 가위손 아들의 손을 빌려 짧게 커트하신 우리 엄마, 멋지다! 활달한 커리어 우먼처럼 보인다. 일주일에 두 번은 꼭 휠체어를 태워드려 편안하게 앉아 계시게 해드리는데, 머리 깎은 날은 반드시 휠체어 태워드리는 일이 필수다. 휠체어를 옆에 갖다 놓고 어머니 허리춤의 환자복을 잡고 휠체어에 부드럽게 앉힌다. 이때 끓는 가래를 빨리 석션하고 등에 옷이 엉키지 않게 잡아당겨 펴준 뒤 허리와 발목 안전벨트를 고정한다. 머리 위치를 잘 정한 후 표정을 살피고 휠체어를 밀고 거실로 나온다.

어머니는 휠체어에서 아주 편안해하신다. 누워만 계시다가 앉혀드리면 또 다른 세상을 접하는 표정이 되신다. 집 바깥은 사람들의 시선도 거슬리는 데다 강변역 터미널 주변이라 공기도 나쁘기에 거실과 부엌만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방 안 공기와 거실 공기는 다르고 뷰도 다르니까 어머니 얼굴은 한결 좋아 보인다.

휠체어에 앉아 계시면 깊이 쌓여 있던 속가래도 배출되고, 주사기로 넣어 드리는 경관식 죽도 레빈튜브를 타고 잘 들어간다. 준비해 둔 두유와 주스를 레빈튜브에 꽂은 주사기에 넣어드린 후 주무시는 틈을 타 손톱을 깎아드린다. 거실의 휠체어에서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우리 모자가 기거하는 안방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 후 대청소를 한다. 침대 시트도 속까지 말끔히 갈아 놓는다. 에어매트 상태도 점검하고 가습기도 청소한다. 이런 날은 아주 바쁘기 때문에 보통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컨디션 조절에 집중한다. 그래야 또 밤에 잠 안 자고 간호할 수 있으니까.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한잠 주무시다 깨시면 다시 나는 침대에 잘 눕혀드린다. 어머니 몸을 부드럽게 잘 안고 침대 위에 내가 먼저 올라가 조심스레 먼저 누워야 충격이 덜하다. 바지를 벗겨 기저귀를 빼내고 평면 기저귀를 잘 깔고 깨끗한 이불로 덮어드린다.

집에서 간호해드린 지 6년쯤 흐른 어느 날. 매일 오전 침상 목욕을 시켜드리고 나면 아기처럼 평안한 얼굴로 잠드셨다.

이렇게 머리도 말쑥하게 다듬고 깨끗하게 청소한 방에서 깨끗한 시트 위에 어머니를 다시 눕혀드리고 나면, 내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고 무겁지만, 마음은 무척 가볍고 개운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기분이 든다. 예전의 나는 팔굽혀펴기 50개가 한계였다. 어머니 간호하며 체력을 기르기 위해 200개 이상 거뜬히 해내는 울트라맨이 됐다. 어머니가 내게 주신 선물이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몸과 마음은 하나님이 새롭게 디자인해 주셨다.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거나 매일 밤 편하게 잠을 잘 수는 없어도 길고 긴 병간호의 시간을 견디다 보니 만들어진 울트라 체력으로, 훗날 언젠가 환난 중의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쓰일 거라고 믿었다. 어머니를 집에서 8년을 간호했다. 욕창은커녕 피부 트러블 한 점 없었고 늘 몸에서는 향기가 났다. 그렇게 우리 모자는 서로 깊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흘러 나는 치매 가족, 장기 돌봄 가족을 위한 기사를 쓰고 인터뷰하는 디멘시아뉴스 기자가 되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다 보면 감정이 깊이 이입된다. 내가 겪어서 알고 있는 그 깊은 아픔을 덜어드리고 돕기 위해 우리나라 장기 돌봄의 현실과 낫지 않는 뇌 질환을 공부하고 분석하고 공감해서 글을 쓰고 있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고통의 시간에 오래 처해 있는 우리 사회의 중환자 가족들, 그분들께 작은 보탬이라고 꼭 돼드리고 싶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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