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
[황교진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3.10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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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고귀한 역할
이 손의 온기를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 오랜 간병에도 그립고 마음 아픈 것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손의 온기를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 오랜 간병에도 그립고 마음 아픈 것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석 달 가까이 사람이 씻지 못하고 누워 있으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가 혜민병원 중환자실 철문 안에 계신 기간이 석 달 가까이 흘렀을 때다.

머리는 온통 하얀 이물질들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데 가려워하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고, 내가 보다 못해 면회 시간에 한 번씩 긁어드리면 더 고통스러운 듯 괴로운 표정이셨다. 아무 손도 못 쓰고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 보면서 팔다리만 주물러드리며 20분의 면회 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그뿐인가? 얼굴과 몸 어디에도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입안은 온통 백태가 끼여 혓바닥과 이 전체에 누런 껍데기가 덧씌워져 있었다. 간호사들이 닦아 주면 좋겠건만 거기까지 신경 쓰는 중환자실 인력은 아무도 없었다. 면회시간에 기저귀 교체도 제대로 안 된 모습을 자주 보았다. 손과 발도 온통 튼 채 더럽게 얼룩져 있었고, 몸은 주삿바늘 자국투성이였다. 한번은 손을 닦아드리려고 어머니 손을 잡고 물수건으로 피부를 밀어 보니 두꺼운 때가 쭉쭉 밀려 나왔다. 그때부터 하루 세 번, 면회 갈 때마다 가제 수건을 삶아 빨아서 닦을 수 있는 부분을 열심히 닦고 나왔다.

그래도 다음 면회 시간에 들어가 보면 목 주변엔 누런 가래가 지저분하게 흘러 있고, 얼굴은 고통으로 부어 있으며, 기저귀는 배설물로 얼룩져 있었다. 예전의 깔끔한 어머니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기만 하던 내 마음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휩싸였다. 어머니 목욕 한 번만 시켜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집에 돌아와 내 몸을 씻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흐느껴 울었다.

방치된 짐승과 별 차이 없는 모습을 하루 세 번 면회 시간에 반복해서 마주한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혜민병원 중환자실에서 그렇게 보내고, 어머니를 경희의료원으로 옮기고 난 후, 전문 간병인을 구해 어머니 머리를 감겨드렸다. 비로소 평온한 얼굴을 찾으셨다. 쓰러지신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정말 기쁘고 안도한 때는 역설적으로 병원에서 ‘가망 없음’ 진단의 절망적인 선고를 받고 6개월 만에 퇴원한 후 집으로 모시고 온 뒤부터다. 1997년 11월 27일 가게에 출근한 뒤 6개월 만에 집에 오신 어머니는 이전과 다른 중환자 모습이었다. 그 생명을 지키는 역할은 오롯이 나 혼자 능력으로 감당해야 했다. 두렵고 떨렸지만 나는 정신 차리고 어머니에게 필요한 의료적 처치와 위생 관리에 집중했다.

아침마다 나는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침상에서 어머니 목욕을 시켜드렸다. 큰 대야에 온수를 받아 놓고 침대에 방수포를 깔고는 내 손으로 직접 어머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깨끗이 씻겼다. 목욕과 더불어 Y거즈 드레싱을 하고, 입 안을 벌려 식염수에 담근 솜과 가그린에 담가 짠 거즈로 이와 혀까지 모두 닦고, 얼굴에 화장수를 발라 드리고, 깨끗한 환자복으로 갈아입힌 뒤 이불을 덮어드리면 정갈한 모습이 되신다. 병실에서의 환자 냄새, 소독약 냄새는 사라졌고, 이전의 어머니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향긋한 향이 나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편안한 표정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다.

어머니 몸이 얼마나 더러운가는 내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못 된다. 그분은 꼼짝할 수 없는 환자이고 ‘지저분함’이 많이 발견될수록 난 더 깨끗이 씻겨드릴 의무와 책임을 다했다. 종합병원에 계실 때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으로 투병했다. 나는 점점 어머니 재가 케어의 전문성을 습득해 갔다. 혼자서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24시간 간호하는 데 숙련된 전문가가 되었다.

영양 상태도 병원보다 훨씬 좋아졌다. 대소변 치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뉴케어 경관식만 드시다 보니 변비가 심해졌다. 시원하게 배출하지 못하고 괴로워하시는 게 확연히 보여, 직접 몸에 좋은 죽을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가정간호사의 조언을 받아서 죽 재료를 사왔다. 시금치, 우엉, 다시마, 당근, 양배추, 쇠고기, 잔멸치 등의 재료를 씻고 다듬어서 믹서로 갈아 죽을 끓였다. 일명 쇠고기 채소죽을 한 번 만들면 보름치 정도 충당할 수 있었다. 뉴케어를 하루 3회 식사 때 드리고 쇠고기 채소죽은 간식으로 하루 2회를 드렸다. 그리고 비타민과 유산균을 보충하기 위해 오렌지주스와 비피더스를 후식으로 드렸다. 그 쇠고기 채소죽을 만들어 드린 뒤부터 변비도 말끔히 사라졌고, 얼굴 피부도 맑아지셨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고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했을 때의 절망감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서 내가 직접 어머니 케어를 세심하게 해드리기로 작정하고 연구해서 하루하루 간호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24시간 간호하며 살아가는 내 청춘의 일상이 친숙해졌다. 나는 마치 갓 태어난 아픈 딸을 보호하는 엄마처럼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엄마의 마음으로 간병했고, 집에서 간호한 기간은 8년이 흘렀다. 

매일 집에서 거의 꼼짝하지 못하고 간호하다 보니 편하게 외출해 본 적이 없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지인들은 우리 집에 찾아와야 했다. 종종 교회 청년들이 약속을 정해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러 온 적이 있다. 각자 자신만의 어려운 삶에 큰 위로를 받는다며 자주 방문했다. 매일 어머니 간호만 하며 사는 내게도 교회의 지인들이 방문하면 큰 위안이 됐다. 한 번은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학원 입시을 준비하던 후배가 집에 방문했다. 저녁 시간에 왔기 때문에 난 어머니 간호하면서 밥상을 차렸다. 식사 준비하는 동안 석션을 10번도 넘게 했다.

난 후배에게 먼저 식사하라고 말하고는 계속 어머니 침상을 주시하며 가래를 뽑으면서 대충 국에 밥을 말아 목에 밀어 넣었다. 식사도 편하게 못하는 내 모습을 보던 후배는 “형, 나는 절대로 못할 것 같아” 하며 존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그에게 말했다. “한밤중에 귀를 쫑긋 세우고 어머니 병상 옆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밤새 석션하고 기저귀를 제때 잘 교체하고 체위 변경을 자주 하는 게 힘들지, 깨어 있는 시간엔 괜찮아.” 그 후배는 잠깐 우리 모자를 보고 다녀갔지만 줄곧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는 지금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고 있다.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보는 자의 손에 맡겨지면 ‘아픈 정도’, ‘더러움의 정도’, ‘요구해야 하는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보는 자가 사랑의 마음으로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해결할 수 있을 때는 몸도 마음도 편했다. 처음 그 석 달 가까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모습일 때가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1년에 한 번 어머니 교회의 같은 구역 식구들이 집에 방문하셨다. 어머니는 의식을 잃기 전에 구역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셨다. 일하시던 광장시장의 유명한 떡집의 떡을 사서 구역 모임의 아주머니들께 대접했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집에 오셔서 병원침대에 정갈하게 누워 계신 어머니를 보고는 모두 한마디씩 하셨다.

“신 집사님, 곧 일어나실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네요.”
“내년에 또 올게요.”

난 그분들이 중환자인 어머니 손을 잡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라고 말해 주실 때 울컥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부터 줄곧 해온 기도가 "어머니가 행복하게 해주시고 새벽 장사 안 하고 쉬게 해주세요"였다. 내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모두 이루어졌다. 아니 두 배로 응답됐다. 낮에도 편히 쉬고 밤에도 편히 쉬면서 잘 계시니까.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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