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재가 케어 시절 나의 하루
[황교진 에세이] 재가 케어 시절 나의 하루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3.17 2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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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병간호 중 하루도 변함이 없던 청년기의 8년
2009년 봄, 조선일보의 주말판 WHY
조선일보 "[Why] '12년째 식물인간' 어머니가 취직·결혼 다 시켜줬어요"에 실린 어머니의 손. 2009년 당시 요양병원에서 어머니 손톱이 상해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간호 마치고 그 손을 잡고 기도하던 모습을 포토그래퍼가 찍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6/2009020601156.html

 

1997년 11월 27일, 대학 4학년 졸업시험을 치를 때 어머니가 의식을 잃으셨다. 그리고 어머니의 엄마가 되어 병간호의 인생을 살았다. 어머니는 2017년 10월 14일 새벽에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김영삼 대통령에서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라의 대통령만 다섯 분을 겪었다. 그 20년 중에 내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세 곳의 병원을 겪으며 중환자 간호의 기본을 배우고, 상급병원 입원을 더는 할 수 없어서 집으로 퇴원 후 어머니 곁에서 간호한 8년이다.

나는 청년기의 그 8년을 종종 추억한다. 매일 똑같은 시간을 반복하면서 자족했고 그 무엇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와야 한다는 절망의 선고 앞에서 우리 집이 어머니께 제일 좋은 병실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소원을 이루었다. 이번 글에서는 집에서 병간호했던 시기의 타임 테이블을 소개한다.

아침 8시 전후

밤새 누웠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어머니 호흡이 편하도록 석션해드리고 기저귀를 갈며 누워 계신 자세를 바꿔드린다. 나는 따로 이불을 덮지 않고 쪼그린 채로 잠깐 잠드는 게 전부였다. 귀를 쫑긋 세워놓고 어머니의 작은 숨소리에도 깰 수 있는 풋잠으로 매일 두 시간 정도 잤다. 석션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저산소증에 걸려 위험해지실 수 있기에 밤마다 석션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침이 오면 창문을 열고 감사 기도를 드린다. 매일 밤을 새우면서도 견딜 힘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평범하게 푹 자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힘을 달라는 기도도 함께 드린다.

9시에 아침 죽을 데우기 전에 어머니 팔다리 관절을 펴드리는 운동부터 시작한다. 클렌징 티슈로 얼굴의 기름기를 닦고, 기저귀를 새것으로 갈면서 비누로 엉덩이를 씻기고 물기를 닦은 후 파우더를 발라드린다. 새벽에 쌓인 가래가 많아서 계속 석션을 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환자용 죽과 비피더스 요구르트 반 병(대략 250킬로칼로리 이상이 되는지 계산한다. 늘 열량을 맞추어 식사를 드려온 덕에, 어머니는 걷지 못해 빠진 다리 근육을 제외하곤 체격은 예전과 차이 나지 않는다)을 레빈튜브에 주사기로 넣어드린다.

그즈음 도우미 아주머니가 출근한다. 장기노인요양보험과 요양보호사 제도가 있기 훨씬 전이라 집안 일을 돕는 분을 구해 어머니 간호 보조를 부탁했다. 아침이 준비되는 30분 동안 어머니 옆에서 계속 석션을 하면서 책을 좀 보다가 아침 약 드리는 시간을 아주머니에게 알려드린 후, 난 거실에서 식사한다. 매일 오전 어머니 목욕시키는 데 힘을 쓰기 위해 반드시 아침을 챙겨 먹는 습관이 생긴 후 내 몸도 단단해졌다.

오전 10시 이후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봐주시는 동안 대략 한 시간 정도 인터넷에 들어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내 홈페이지에 글을 쓴다. 간병에 관해 묻거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댓글에 답글을 올린 후, 지난밤에 든 생각을 정리해 에세이를 한 편 써서 올린다. 내 홈페이지에 새 글을 올릴 때마다 지친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고 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그 글들이 훗날 나를 출판 작가로 만들어 주었고 새로운 인생을 펼쳐주었다.

오전 11시 직전

어머니 구강 청소를 하고 T케뉼라 부근의 Y거즈 드레싱을 한 뒤 목욕을 시켜드린다. 목욕은 병원 침대 위에서 직접 한다. 방수포를 어머니 등 밑에 미리 깔아두고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머리부터 감기 시작한다. 감기 걸리지 않으시도록 수건을 덮어 가며 조심해서 한 부분씩 씻겨간다. 동시에 피부에 이상이 없는지 구석구석 확인한다. 어머니는 식물인간 상태로 오래도록 꼼짝없이 누워 계시지만 작은 욕창도 틈탄 적이 없다.

낮 12시 반 전후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어머니 목욕을 마친 후 중환자 휠체어에 태워 손발톱을 다듬어 드리고 침대 시트를 완전히 새것으로 정비한다. 두 달에 한 번은 머리도 깎아드린다. 평상시에는 이 시간에 치료와 목욕이 끝나, 새 옷을 입혀드리고 시트까지 뽀송뽀송한 걸로 갈아드린 후 주스 한 잔을 호스로 넣어드리면 하루 일과 중 큰일은 마무리된다.

어머니는 목욕 후 개운한 느낌에 평온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지신다. 이젠 나도 땀투성이의 몸을 샤워하고 잠시 휴식을 즐긴다. 병원에서는 잘 씻겨드리지 못해 겨드랑이에 곰팡이까지 끼어 있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샤워할 때 죄책감이 들었지만, 집에 모셔 온 뒤 아침마다 땀 흘려 어머니를 목욕시킨 후 얻는 개운함으로 내 마음은 얼마나 시원하고 보람 가득한지 모른다. 나는 날마다 이 시간에 천국을 누린다.

오후 1시 이후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집에서 자전거로 20여 분 걸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도실과 도서관을 찾아 쉬고 오거나 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감상한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영적·정서적인 갈증을 해결하고 산 소망을 얻는다. 절대적으로 잠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낮에 잠으로 채우기엔 청춘이 너무 아깝다. 이 꿀 같은 휴식도 아주머니가 안 나오시는 명절이나 휴가 때면 모두 반납해야 한다. 며칠씩 쉬지 않고 밤낮을 스트레이트로 간호에 매달려야 하는 날도 종종 있다. 조용한 곳을 찾아 그렇게 잠시 쉬고 귀가하기 전에 집 근처 슈퍼에 들러 간호하는 데 필요한 소모품 등 어머니께 필요한 장을 봐 온다.

오후 5시 반 이후

5시 반까지는 반드시 귀가해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퇴근시키고 저녁 간호 준비를 한다. 그래서 5시 땡 치면 꼭 집에 갈 준비를 서두른다고 나는 ‘울트라맨’이라는 별명과 함께 ‘신데렐라’라는 별명도 있다.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달려간다고.

어머니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간호하는 난 항상 청결한 몸을 유지한다. 먼지를 많이 마신 날은 외출 다녀오는 즉시 샤워를 한다. 그리고 핀셋, 가위, 넬라톤탭 등의 의료 기구를 열기 소독한다. 동시에 저녁 죽과 요구르트 한 병을 호스에 넣어드린다. 이어서 어머니 등 밑의 시트가 구겨져 있지 않은지 점검하며 등을 한 팔로 세워 들고 손바닥으로 골고루 두들겨드린다. 등이 답답하면 쉽게 열이 오르기 때문에 자주 시원하게 손으로 쳐드린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식사할 수 있는 국밥을 말아서 얼른 저녁을 해결한다. 저녁 시간 동안 어머니 몸을 침대 위쪽으로 자주 들어 올려서 누워 계신 자세를 편안하게 해드려야 하는데, 이때 힘을 많이 써야 하기에 밥을 많이 먹으면 간호할 때 불쾌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배부른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저녁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말똥말똥 눈뜨고 계실 때가 많다. 이때 어머니께 오늘 날짜와 하루 사이에 있던 일들을 들려드리면서 팔다리 관절 운동을 시켜드린다. 구강 청소, 기저귀 갈기 등을 이어서 하다 보면 8시가 된다. 예전에 경험이 부족할 때는, 방광에 찬 소변을 밀어내는 힘이 없어서 자주 소변이 밀려 나와 하루 열 번 넘게 기저귀를 갈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손으로 어머니 배를 만져 보면 잔류소변의 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랫배 부분을 마사지해서 천천히 방광에 찬 소변을 배출시켜 기저귀 가는 횟수를 줄여갔다. 덕분에 어머니 엉덩이를 자주 씻겨드리다가 생긴 내 손가락의 습진도 심해지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외출 후 귀가하면 정신없이 몰두해야 할 일들이 꽉 차 있다. 낮에 잠시 쉬는 시간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깊은 긴장과 부담이 들지만 이 일을 다 마치면 평안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다.

저녁 8시 이후

어머니는 이 시간 몸이 부드러워져 편안한 얼굴로 잠드신다. 이 시간에 IMS라고 하는 전기침을 가슴 중앙의 기도와 연결된 부분에 놔드린다. 가래를 줄이고 기관지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가 있다. 어머니와 같은 뇌질환 환자는 편안하게 간호해드리면 잠을 많이 주무신다. 나는 어머니 표정만 보면 어느 쪽 방향으로 눕고 싶으신지, 귀가 가려우신지, 대소변이 불편하신지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어머니에게 병 고침의 기적은 주지 않으셨지만, 내게 병 돌봄의 능력은 한없이 부어 주셨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나는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밤 9시 이후

밤에 배고프실 수 있기에 마지막 간식으로 두유와 오렌지주스를 드린다. 하루 여섯 번 드리는 음식의 마지막 차례다. 오렌지주스는 철분과 비타민 부족을 막기 위해 자주 드리는 편이다. 그리고 난 어머니 상태를 봐가며,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 먼저 20분 정도는 스트레칭을 하여 매번 쓰는 근육만 혹사당하는 일이 없도록 온몸을 늘리고 펴준다. 다음엔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등 근육운동을 한다. 방바닥과 장롱 아래 틈을 기구 삼아 땀을 흘린 후 총알 샤워를 한다.

자정 이후

밤새 어머니가 편안히 쉬시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새로 시작하는 상쾌한 기분으로 밤을 맞는다. 교대 없는 나의 야간 간호 근무가 시작된다. 그렇게 매일 밤을 새워도 끄떡없는 ‘밤에 피는 울트라맨’으로 8년을 똑같이 살았다. 취직한 친구들이 연애하고 결혼해도, 교회에서 MT나 수련회를 가도, 부러워하지 않았고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내 청춘의 8년은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변함이 없는 사랑의 시간이었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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