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풍요롭지 않아도 풍성한 삶이 있다
[황교진 에세이] 풍요롭지 않아도 풍성한 삶이 있다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12.22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기가 떠오르는 순간이 기쁨을 얻는 순간
추운 겨울날 병 간호할 때는 어머니 손의 온기가 더 감사했다
추운 겨울날 병 간호할 때는 어머니 손의 온기가 더 감사했다

나의 첫 직장은 2005년 1월부터 근무한 D그룹 홍보실이다. 내 책을 읽으신 사장님께 특채돼 회장님의 연설문 작성과 홍보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병간호만 하다가 취직했으니, 나이가 좀 있는 평사원이었고, 맡은 업무가 중요해 거의 매일 마감하며 써내야 하는 글이 많았다.

피곤이 풀리지 않는 몸으로 회사 일을 하면서 주중에 두 번, 주말과 주일에 한 번 씩 총 네 번을 어머니 병원으로 달려가 간호했다. 당시 나는 집에서 8년간 간호하다가 2004년 봄에 집을 내놓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입원시켜드렸다. 그다음 해에 경기도 이천의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요양병원은 1년 이상 있기가 힘들었다. 어머니 간호의 질을 떨어트리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고단한 노마드 간호를 이어갔다.

일주일 내내 일과 간호를 병행하다 주일을 맞이하면 아침에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가장 높은 분의 이름으로 나가는 연설문, 칼럼 등을 써야 했기에 어머니 병원에서 병원이 하지 못하는 병간호를 하고 오면 근무 시간이 부족해 칼퇴근을 한 적이 없었다. 지하철에서 의자에 앉아 눈만 감으면 10초 안에 잠들었다.

아내와 만난 지 6개월쯤 흐르자, 슬슬 결혼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업무도 병간호도 아니었다. 매달 월급이 통째로 병원비에 들어가 통장에 잔고가 없는 상태로 결혼을 앞둔 현실이 답답했다. 돈에 대해 초연할 만한 경험이 많았어도 결혼이라는 낯설고 큰 문 앞에서는 초라해졌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디자인팀장이 12월에 혼인 날짜를 잡아두고 웨딩촬영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곁에서 결혼식에 필요한 준비를 바쁘게 해가는 회사 동료를 보면서 나는 더 조급해졌다.

‘둘이 살 만한 적절한 집을 구할 수 있는 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혼을 현실로 마주한 내게 신혼집을 구하는 문제는 넘기 힘든 사차원 벽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날짜 잡았냐는 질문을 해왔다. 돈 없는 예비 신랑 입장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심경에 몰래 한숨만 쉬었다. 서민들에게 공통된 흔한 질문 ‘세상에 이 많은 집 중 내가 살 집은 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늦잠으로 피로를 풀기로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있다가 걱정하고 시달리기만 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오후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로 갔다. 마침 청년부 선교의 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기도로 털어놓고 싶은 심정에 마음이 가난하고 절박해져 그날 예배에 깊이 집중했다. 그해 여름에 단기 선교 여행을 다녀온 청년들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이 지구촌의 힘들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 손을 잡고 무릎 꿇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그 귀하고 아름다운 발걸음에 감동이 밀려왔다. 나를 깊이 돌아보고 현재의 형편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마음이 회복됐다.

그날 선교의 밤 순서 중에 지난여름 나와 함께 성경공부를 한 경희가 강단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간호사인 경희는 앞으로 1년 동안 방글라데시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몰랐던 사연에 충격을 받았다. 올해 그녀의 올케언니가 사랑니 발치를 하고 잘못돼 패혈증에 걸려 갑작스레 사망한 슬픈 일이 있었단다. 간호사 월급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올케언니 병원비로 썼다. 게다가 최근 경희 어머니도 중환자실에 입원해 통장에 남은 돈을 모두 병원비로 썼다고 한다. 그런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청춘의 시간을 방글라데시에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경희의 결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려운 가운데 더 어려운 곳으로 향하는 그 결단을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 선교에 필요한 예치금 50만 원이 없어 동생에게 빚을 지고 간다는 얘기를 듣고는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잘 다녀오라고 기도만 하는 것은 직무유기란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은행에 달려갔다. 경희가 빚을 낸 액수를 지원하고 싶었다. 당신 내 통장 잔고는 신기하게도 딱 50만 원이 있었다. 그 돈을 인출해서 다른 조원을 통해 몰래 전달했다. 누가 보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지 모를 만큼 순식간에 결정하고 실행했다. 그날 오전까지 결혼에 필요한 재정이 없어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끙끙 앓다가 오후에 교회에서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을 모두 선교헌금으로 보냈으니,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백수로 집에서 8년간 어머니 간호에 매달리면서 시시때때로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아왔다. 내가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건 축복이다. 경희가 방글라데시로 떠나기 전에 그 빚을 해결해 줄 만큼의 돈이 내 통장에 있다는 것 자체로 기뻤다. 그날 전화로 약혼녀에게 선교의 밤으로 드린 예배 후 헌금한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주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참 현실감 없는 바보 커플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것은 바보같이 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현지에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경희가 항상 용기 잃지 않기를, 그녀의 가정에 계속되는 어려움이 차근차근 해결되고 나아지기를 기도했다.

다음 날 아침, 월요병이 찾아왔다. 어제 기뻤던 마음은 오간 데 없고 출근 후 해야 할 많은 일에 마음이 짓눌렸다. 선한 일을 조금 했더라도 삶은 변함없이 거칠거칠하고 힘든 문제는 그대로다. 요술 방망이처럼 인과응보식으로 일이 풀리는 것은 동화나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다. 지치고 고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다가 수요일 오후 어머니 병원에 달려가 간호를 마쳤다. 목요일 아침 월요일보다 더 고단한 몸으로 출근하려는데 아파트 입구 편지함에서 노란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내 책 《어머니는 소풍 중》을 출간해준 출판사 이름이 찍혀 있었다. 연말이 다가오니 출판사에서 저자들에게 보낸 안부 편지 정도로 생각하고 뜯어보았다.

그런데...

드디어 내 책의 3쇄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들어 있다. 서점에 들를 때마다 내 책보다 늦게 출간된 책들이 5쇄, 10쇄 나가는 걸 보고 은근히 부러워했다. 내 책은 초판이 출간된 뒤 2주 만에 2쇄가 나와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지만 이후 판매 속도가 붙지 않다가 1년이 지나 3쇄가 발간됐다(감사하게도 매년 추가 인쇄를 하여 9쇄까지 나왔다). 내 책의 출판사는 재쇄를 찍을 때 저자에게 인세 보고를 하고 판매 전에 찍은 부수만큼 인세를 입금해줬다. 내가 받은 3쇄 인세는 지난 주일에 경희에게 전달한 금액보다 많았다. 동화 같은 현실이다. 되로 주면 말로 돌아오는 이거, 실화 맞나?

그리고 방글라데시 의료선교를 잘 마치고 귀국한 경희는 강동구에 있는 병원의 간호사로 근무하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어느 주일에 아기를 업고 교회에 나온 경희와 담소를 나누었는데 "그때 선교비 50만 원 후원해 준 사람이 오빠란 걸 알고 있어요" 하며 내게 어머니 병원비로 써달라고 지목헌금으로 100만 원을 주었다. 장기 간병을 하며 매달 병원비 해결이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은혜를 입었다. 비밀로 해달라 부탁하고 경희 친구에게 전달한 작은 일, 사실상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과 두 발은 모두 알고 있었다.

포기가 떠오르는 순간이 기쁨을 얻는 순간이다. 고통 연속인 인생은 반전 연속이기도 하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꼭 필요한 만큼의 해결책이 주어졌다. 너무 찔끔찔끔 주어져 눈물이 쏟아진 적도 있지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워지는 경험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맛보는 것처럼 놀라운 경험이다. 목마를수록 영원히 시원한 생수의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게 낯설고 어려운 상황, 무미건조한 고통의 현실이 계속됐지만 행복하게 결혼해 신혼에 골인했다. 결혼은 내게 특별은총이었다. 오랫동안 내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고 마음을 써준 약사 친구는 지금까지 본 결혼식 중에 내 결혼식이 가장 성대했다고 한다. 집을 구하고 순탄하게 결혼할 형편이 되지 못했어도 결혼의 과정은 행복했다. 소심함과 우울함에 빠질 때 내 마음 중심을 둔 곳에 따라 어깨가 가벼워진다. 풍요롭지 않아도 하루하루 일상에서의 선택과 방향에 따라 풍성해질 수 있다. 그 일상의 선택은 또 다른 풍성한 사건으로 연결된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보며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로 활동
중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