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장기 연명치료에서 일어나는 숱한 갈등
[황교진 에세이] 장기 연명치료에서 일어나는 숱한 갈등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2.23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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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삶이란 무엇일까
언제까지 병간호를 계속해야 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끝까지 함께 견뎌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언제까지 병간호를 계속해야 할까, 끝까지 함께 견뎌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어머니 병원에서 오는 전화는, 내가 보호자로서 어려운 결정을 해 주어야 할 문제가 발생할 때다. 그리고 병원비 상승에 대해서도 같이 전해 듣는다. 날씨가 덥지 않아도 병원 전화를 받으면 등줄기에 땀이 쭉 흐른다.

또 무슨 일일까, 간담이 서늘한 상태에서 병동 간호사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단백질 보충제가 떨어져 더 드릴지 말지에 관해 허락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한 번 드리는 데 3만 원 정도 든다고 하는 데 나는 당연히 드리라고 말씀드렸다.

이 정도 비용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훨씬 비싸도 감내해 왔고, 다른 지출을 아끼고 나를 위한 소비 욕구를 억제하면서 환자인 어머니를 위한 지출에 마음을 열어두고 살아왔다. 여러 해가 흐르면서 속마음의 고민이 없지 않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어머니께 도움이 되는 결정일까, 하는 고민이 적지 않았다. 하늘만 아는 마지막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그날이 편하게 오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번민에 휩싸였다.

어머니와 같은 의식 불명의 장기 환자는 욕창, 폐렴 등의 고통을 거쳐 이 땅에서의 시간을 마감한다. 하늘로 가는 길에 허락해야 하는 부분을 너무 막지 말라는 조언을 해 준 지인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욕창 예방에는 선수인 내 경험은 내게 그대로 직진하라고 손짓했다. 한편으로는 욕창과 폐렴의 과정을 이미 겪고 하늘에 계신 분들의 미소가 같이 아른거렸다. 어머니 투병 중에 지인들 부모 중 멀쩡하신 분들이 소천해 장례식장 조문을 간 적이 많았다. 지인들 부모들에 비해 건강이 가장 안 좋은 분은 어머니였는데 멀쩡하게 생활하시던 선후배와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이 많았다. 20년이나 투병하셨으니.

천국이 이 땅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나 또한 이 땅에서 아빠와 남편의 역할까지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내가 엄마라면 “아들아, 영양제 놓지 마라. 이 좁은 병상에서 엄마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아” 했을 것이다. 그 말씀이 속에서 늘 울려왔고 그럴수록 마음이 아팠다. 친한 감염내과 선생님은 소극적으로 간호하고 가정에 충실하라는 말씀을 오래전부터 해주셨다. 나는 가정에 충실하면서 장기 연명 환자인 어머니께도 충실한 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견뎠다. 가장 힘든 사람은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영양제, 초음파 시술, 항생제, 독감 주사 등 계절마다 따라다니는 이런 치료에 대해 의료진이 허락을 구해 올 때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 “노” 할 수 있을까. 난 성경의 사랑을 묵상하고 그 정신에 따라 결정했다. 부디 이런 과정의 숱한 고민을 거쳐 하나님이 어머니를 부르시는 그날,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어려운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병원에서 독감 예방 주사, 단백질 보충제와 영양제 등 투입에 관해 의견을 물으면 무조건 “네”라고 한다. 그 마음은 아픈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자라나는 아이의 보호자로서 마음과, 돌아가실 날만 남은 뇌 질환 부모의 보호자로서 마음이 같지는 않다. 나는 실생활에서 엄격하게 참고 절약해서 어머니께 들어가는 비용과 정성에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 마음은 어떠셨을까? 과연 이 모든 결정은 어머니를 위한 것 맞았을까? 

세상일이란 게 당사자가 돼 보지 않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대학을 막 졸업하던 청년기 때부터 어머니 간호를 해오며 다양한 경우를 겪었고 혼자 책임지고 결정하며 견뎠다. 결코 나를 위한 판단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랬다면 이미 병간호를 포기하고 내 생활을 시작했어도 벌써 했을 것이다. 직장을 구해 월급을 받고 강연을 하고 강사비를 받고 책이 판매돼 인세를 받은 것 전부를 병원비로 지출해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병간호를 할 수 없는 직장은 사표를 쓰고 나왔고, 이직해서 어머니 병간호에 문제가 생기면 또 회사를 그만두거나 옮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삶이 쉽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 그 경험이 결국 어머니의 평안과 나의 나 된 모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선택의 지점이 많았다. 내 기준은 무엇이 ‘책임지는 사랑’인가 하는 질문의 답으로 결정했다. 끝까지 책임졌고 그로 인해 고달픈 적이 많았지만 감수했다. 50대 중반이 된 지금 종종 항우울제와 수면 영양제의 도움을 받는다. 무엇이 행복일까. 사실 내 아들만큼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2017년 10월 14일, 어머니가 만 20년의 투병을 마치고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나는 울었지만 감사했다. 길고 긴 장기 연명치료의 세월을 마쳤고, 너무나 많은 갈등을 견뎠고, 그 마지막 날을 만나면서 이제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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