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백수 아들에게 주신 뜻밖의 선물
[황교진 에세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백수 아들에게 주신 뜻밖의 선물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09.01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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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장길에서 원단 냄새, 엄마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

 

광장시장은 어머니가 우리 가족의 생계를 해결한 직장이다. 20년 넘게 일하신 종로 5가의 광장시장으로 새벽에 출근하셔서 밤새도록 일하시다가 다음 날 오후에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셨다. 그리고 또 밤 10시면 깨어 출근하셨다.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20년이나 병상에서 견디시다 소천하신 후 나는 광장시장에 가보았다. 제대로 쉬어 본 적 없이 고단하게 일하신 그 현장에 일부러 가본 게 아니다. 

장례를 치른 뒤 금융 조회를 했더니 광장시장 마을금고의 어머니 계좌에 200여만 원이 있어 상속 절차를 받으러 갔다. 식물 상태로 투병하신 20년 동안 그 계좌가 있는 줄 우리 가족은 아무도 몰랐으니, 오랜 세월 어머니 계좌에 숨어 있던 돈이다.

어머니는 쓰러지시던 당일까지 광장시장의 작은 의류 도매 가게에 출근하셨다. 무더위와 강추위도 상관없이 새벽을 통과하며 숙녀복 장사를 하셨고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어머니 뵈러 종로에 나갔다. 가게 안까지 가본 적은 드물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 3학년 봄이었다. 일을 마치신 어머니와 보령약국 앞에서 만나, 을지로 롯데백화점에 가서 내 첫 정장을 사주신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사주신 구두는 뒤축을 갈아서 지금도 신고 있다. 그 정장은 특별한 강의를 할 때마다 입었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그 다음 날부터 동생은 자기 꿈을 접고 엄마의 가게 일을 대신했다. 갑자기 엄마 가게 일을 도맡게 된 여동생은 밤 10시에 광장시장에 출근해야 했다. 중환자실에 계신 엄마의 모습에 괴로워하며, 처음 해보는 가게 일을 시작한 동생이 너무 안쓰러웠다. 가게 문을 여는 데까지 나는 동생과 동행하며 매일 밤 광장시장에 갔다. 

당시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고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대통령이 바뀌는 순간에, 시장에서 울려 퍼진 함성이 기억난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2017년 10월 14일은 문재인 대통령이니 병상에서 의식 없이 계신 세월에 다섯 분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초‧중학교 시절, 소풍 갈 때면 김밥을 싸주실 여력이 안 되어 광장시장의 김밥을 사 오셔서 소풍 가방에 넣어 주셨다. 지금 충무김밥처럼 작고 내용물이 거의 없는 형태였는데 어머니 말로는 그 김밥집은 광장시장에서 장사를 오래 했는데, 돈을 많이 벌어 주인이 벤츠를 몰고 다닌다고 하셨다. 

후에 마약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그 김밥, 어벤져스 배우들이 영화 홍보차 한국에 방문했을 때 들러 먹었다는 광장시장 김밥이 내가 초‧중등 소풍 때 먹던 그 김밥이다.

일하시느라 자기 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어머니의 광장시장은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호떡집, 김밥집, 떡볶이집 상인들의 얼굴에는 오랜 연륜만큼이나 주름이 깊게 패었고, 안쪽 골목은 원단 가게가 즐비했다. 

어디쯤이 어머니 가게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가 그 안에서 일하신 마지막 날에서 20년이 흘렀으니까. 기억나는 건, 가게를 밝히던 백열전구가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전구보다 다소 컸는데 전열기처럼 뜨거워 겨울에는 난방 효과가 있었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우셨을까. 

2평도 안 되는 작디작은 가게를 환하게 밝혀주는 전구는 매일 하나씩 새로 갈아주어야 할 만큼 내구성이 약했다. 어머니는 작은 스툴(보조 의자)에 올라가 천장의 전구를 갈다가 넘어지신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광장시장 마을금고는 시장 안쪽에 있기에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 가게에서 우리 남매 교육비와 우리 집 생활비를 모두 건져 올리셨다. 쉬고 싶은 날도 피곤한 눈 비비며 이 시장에 나오셔서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인들 상대로 심야 시간에 장사를 시작하셨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계좌를 인출하려면 복잡한 서류를 내야 했다. 가족관계 증명서, 사망진단서, 제적등본, 기본증명서 그리고 아버지와 나, 여동생의 인감증명, 신분증과 도장 등. 모두 잘 챙겨 왔다. 한참을 기다려 240여만 원이 내 통장에 입금됐다. 현재 백수인 내게 주신 뜻밖의 선물이었다. 

마을금고에서 광장시장을 다시 빠져나오면서 종로5가역까지 걷는 그 시장길에서 원단 냄새, 인간 냄새, 엄마 냄새가 섞여 코로 들어왔다. 이제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까? 코가 시큰했다. 이런 복잡하고 여가 없는 시장에서와 달리 천국에서 편하게 계실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뒤에도 내게 선물을 남기셨다. 병간호의 추억과 20년에 걸쳐 이별할 준비 시간을 주셨고, 그리고 많은 용돈까지.

황교진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보며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로 활동. 
중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이며,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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