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3]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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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0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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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가가성 치매?(Pseudo-Pseudo dementia?)

출처: 픽사베이

어느 날 진료실에 75세의 할머니가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환자분은 6개월 전부터 비교적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지시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며, 행동이 느려지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환자 가족 분은 걱정이 되어 근처 대학병원에 내원하여 인지기능과 영상 검사 등을 시행하였습니다. 결과는 초기 치매에 해당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치매약(콜린분해효소 억제제)을 복용하였으나 큰 차도가 없어 저희 병원에 내원하신 것이지요. 환자는 외래에 오실 때부터 얼굴이 굳어 있으며 대화를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의 집중은 비교적 가능하였으나 목소리는 매우 낮았으며 질문에는 잘 대답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을 잘 하지 못하지만 어떤 단서를 주면 비교적 대답을 잘 하였습니다. 무엇인가 일반적인 치매 환자와는 조금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면담이 끝나고 가족들을 모두 바깥으로 내 보냅니다. 그리고 할머니 손을 잡아 주면서 한마디 해봅니다. “할머니, 젊어서 고생 많이 하셨지요” 그러자 표정 없던 할머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흔들립니다. “남편 때문에 맘 고생 많이 했어요, 이제는 쉬고 싶어요….” “6개월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남편이 교회의 다른 여자와 다정히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다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시는 할머니 눈에는 눈물이 글썽입니다. 저는 다시 인지기능 검사와 영상검사를 확인합니다. 영상검사는 확실하게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인지기능 검사에서는 확실히 기억력과 전두엽 기능의 일부 이상은 보였지요. 제가 보기에는 전형적인 치매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할머니에게 수건을 건내 주고 얼굴을 고치게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와 다시 상담을 하고 환자에게 항우울제(세로토닌 수용체 억제재)를 처방합니다. 이후 환자는 극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아직도 최근의 기억력은 일부 떨어져 있으나 전반적인 기억력도 좋아지시고, 표정도 좋아졌으며, 무엇보다도 일상 생활 활동이 늘어 났습니다. 자신감도 찾으셨고요. 3개월 후 다시 검사하니 아직도 일부 인지기능검사는 떨어졌으나 처음보다 좋아졌고 치매라고 불리울 정도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거듭 말씀드리고 있지만 치매는 병명이 아닙니다. 치매는 뇌의 발달이 끝난 후 어떤 원인이든 뇌에 실질적인 병변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2가지 이상 손상되었으며 직장 생활이나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치매에는 다양한 병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치매는 치료가 되나요? 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지요. 되는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오면 우선적으로 원인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치매는 대부분 노화에 의한 알츠하이머병 치매이거나 뇌혈관 질환과 관련된 혈관성 치매, 기타 퇴행성 치매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완치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보호자들도 치매는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인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치매 이외에 노인과 연관된 많은 병들을 보게 됩니다. 이중 많은 것이 우울증이지요. 원래 우울증은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발병되는데 최근에는 우울증이 나이가 들어서 첫 발병 하는 경우도 매우 많이 보게 됩니다. 보통 젊어서 생기는 우울증은 정서적인 색깔이 매우 강합니다. 즉 죽고 싶다고 하든지, 우울하다고 하든지 하는 그냥 보아도 저 사람은 우울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꼭 전문 정신과 선생님이 아니어도 이런 사람을 보면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한번 가보라고 주변에서 이야기 하지요. 그런데 노인에게 처음 발병하는 우울증은 정서적인 색깔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사가 귀찮고 주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지요. 항상 “늙으면 죽어야지” 라고 이야기 하지만 실지로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말 안하고 얼굴표정 없어지고 매사 흥미가 없으며 집중하려고 하지 않아 실지로 인지기능 검사를 하면 인지기능이 정상보다 낮게 나옵니다. 그래서 환자를 잘 관찰하지 않으면 그냥 치매라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에 의해서 마치 치매처럼 보이는 것을 가성 치매(pseudo dementia)라고 합니다.

1961년 정신과 의사인 카일로(Kiloh)는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과 병에 의하여 마치 치매처럼 보이는 이런 질환을 가성치매(pseudo dementia)라고 하였습니다.1 그는 가성치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1. 가성치매는 정신과 질환에 의해서 생기는 인지기능 장애이다. 2. 이 인지기능 장애는 가역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3. 그 증상은 뇌의 병변에 의해 생기는 치매질환의 증상과 비슷하다. 4. 실지로 뇌 내에 신경질환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중 가장 중요한 개념이 이 가성치매는 가역적인 질환이라는 것입니다. 즉 일반적으로 치매를 일으키는 다른 병과 달리 완치가 될 수 있는 치매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의사는 이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요. 특히 가성치매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우울증은 최근 항우울제의 발달로 그 치료 효과가 매우 높지요. 그리고 만약 약물 치료가 안되면 전기경련요법(ECT; electroconvulsive therapy)을 이용하여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 할 수가 있습니다. 이 환자에게 항우울제 치료로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에게는 한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1년간 추적하였습니다. 할머니는 혼자서 장도 보고, 음식도 하며 일상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환자는 더 이상 저희 병원에 오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근처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2년쯤 후에 다시 가족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오셨습니다. 할머니가 1년 전부터 서서히 기억력이 다시 떨어지고 길을 잃으며 요리를 못하는 등 집에서 혼자 있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지요. 저는 아마도 우울증이 재발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검사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저번과 검사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진짜 알츠하이머병에 특징적인 인지기능 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항우울제를 늘리고 동시에 치매 치료제를 병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어떤 치료도 환자의 병 진행 경과를 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환자는 결국 저희 병원에서 6년을 지내시다가 사망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이 환자를 우울증에 의한 치매라고 진단하고 치료하면서 마음이 약간 걸렸던 것은 다른 모든 검사가 본태성 우울증(다른 병에 의하여 이차적으로 생긴 것이 아닌)을 시사하였지만, 유독 뇌파 검사에서 아주 미세한 변화를 보인 것입니다. MRI 검사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뇌의 구조(형태)를 보여 준다면 뇌파는 구조가 아닌 뇌에서 나오는 전기파, 즉 뇌의 기능을 보는 검사입니다. 우울증은 아무리 보기가(임상적으로) 흉악하게 보여도 뇌파는 아주 아름답고 훌륭하게(?) 나옵니다(정상으로 나옵니다). 우울증과 뇌병변을 구분하는데 아주 싸고 쉽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검사이지요. 또 한가지 이 환자에게 애매 했던 것은 젊어서 그렇게 고생을 해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정서적으로 약했던 분은 아니지요. 치매에 의해서 생기는 대부분의 신경행동정신 장애 증상은 젊어서 생기는 정신과 질환 증상과 증상학적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증상 자체로만 이것이 뇌병변에 의해 생기는 증상인지, 뇌병변 없이 생기는 기능적인 장애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젊어서 보이지 않았던 정신과 증상이 나이가 들어서 처음 나타난다면, 설령 그것이 인지기능장애나, 운동장애와 같이 다른 인지신경학적 증상과 같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뇌질환의 선행증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즉 이 환자의 경우에도 우울 증상이 비록 증상은 비슷하여도 정신과 우울증 진단에 합당하는 병이 아니고 알츠하이머병 치매의 전구 증상으로서 우울증이 나타났거나,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뇌병변이 우울증도 유발할 수 있지요. 어찌 하였든 이 환자에서 특정 기간 동안 이었더라도 항우울제로 증상이 호전되었으니 항우울제와 관련 있는 우울증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카일로는 대부분의 치매가 치료가 될 수 없다는 허무주의를 경계하라고 하며 가성치매의 개념을 강조하였지요. 그리고 이런 환자가 상당수 존재하며 놓치면 안된다고 하였지요.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검사를 통해서 실지로는 이런 가성 치매라고 여겨지는 환자들이 실지로는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병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해도 완전히 가역적으로 좋아지지 않는 것들이 발견됩니다. 즉 과거의 가성 치매(pseudo-dementia)는 돌이켜 보면 가가성치매(pseudo-pseudo dementia)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 과학은 조금 남아있던 희망까지 싹둑 잘라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알츠하이머병 치료가 완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완치라는 것은 얼마나 병을 빨리 찾아서 예방하느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나이가 들어서 젊어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정신행동증상을 발견한다면 알츠하이머병 치매나, 파킨슨 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 나타나기 전에 비특이적으로 나타나는 전구 증상일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조기 검진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또 카일로가 발표하였던 시대보다는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약들이 발달되어 있으므로 증상 치료 역시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날 할머니의 손을 잡아 주었을 때 할머니가 남몰래 흘리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알츠하이머병치매의 전구 증상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할머니가 살았던 힘든 시절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이나 마음의 정리일 것입니다. 아마 이제는 할머니도 진짜로 편하게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Reference

Kiloh, Leslie Gordon. Pseudodementia. Acta Psychiatr Scand 1961;37: 336–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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