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0월 일본 요코하마. 87세 노인이 몰던 트럭이 등굣길 초등학생들을 덮쳤다. 이 사고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1명이 숨지고, 초등생 4명을 포함해 총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곧바로 트럭 운전자를 현장에서 검거, 사고경위 조사에 나섰으나 운전자는 당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피의자는 사고상황은 물론, 자신의 신원에 대해서도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경찰은 피의자의 나이와 상태를 고려해 피의자의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결과는 '치매'. 피의자는 전날 집에서 쓰레기와 잡동사니를 트럭에 싣고 집을 나선 뒤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24시간 가량 돌아다녔지만,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어디를 아떻게 돌아다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일본 검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만인 지난 3월 피의자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피의자가 치매의 영향 아래 장시간 운전을 해 피로가 쌓였고, 이로 인해 제동장치를 적절하게 조작할 운전능력이 상실됐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피의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어린이 사망자까지 발생한 참사에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던 사고.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치매환자 등 노인의 운전면허를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졌다.
#한 달 앞 선 지난해 9월, 우리나라에서도 치매 운전자에 의한 교통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심야 대전에서 치매환자가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마주오던 승용차와 전면 충돌, 맞은편 승용차에 탄 일가족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이에 국내에서도 치매환자를 운전면허 결격사유자에 추가하거나 운전금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정부가 치매 등 중증질환자에 대한 면허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은 "고령운전자와 중증질환자에 대한 교통사고 발생이 사회 이슈화됨에 따라 엄정한 운전면허 관리를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앞서 공단은 치매환자 등 노인, 중증환자 면허관리체계 개선을 목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도개선 연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를 모아 21일 국회에 관련 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개정안에는 치매질환·뇌전증·정신질환 등 중증질환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 운전면허관리에 필요한 정보 관계기관 공유, 신체검사 없이 재발급하는 제2종 운전면허 갱신시 적성검사 제도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단은 "현재 시력과 청력 위주인 신체검사 항목을 개선, 면허종별과 연령별로 차별화된 적성검사 항목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는 치매 등 인지장애환자에 대한 면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조치. 실제 지난해 7월 부산 뇌전증 운전자 교통사고 사건, 9월 대전 치매환자 고속도로 역주행 사건 이후 국내에서도 치매 등 중증질환자에 의한 면허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16년 7월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 5등급' 판정자 2만 5061명 가운데 2541명(10.1%)가 운전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 5등급은 '노인성 질병에 해당하는 치매환자'다.
연령별로는 70대가 1135명으로 전체의 절반가량(44.7%)을 차지했으며, 80대 837명(32.9%), 90대도 66명(2.6%)이 있었다. 면허종별로는 2종보통이 1219명(48%), 1종보통이 669명(26.3%) 등이었고, 1종대형면허소지자도 161명(6.3%)이나 됐다.
연령이 가장 높은 노인장기요양보험 5등급 운전면허 보유자는 1918년 생으로 2015년 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을 받고도, 현재까지 별다른 관리 없이 2종보통 운전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춘숙 의원은 "현재 도로교통법상 위험과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정신질환자나 뇌전증환자는 운전면허 결격사유자로 구분되어 수시적성검사를 하도록 되어 있고, 복지부 장관이 이런 자료를 경찰청에 통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국민들을 예측할 수 없는 도로 위 위험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칫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에 의한 무고한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복지부와 경찰청이 관련 자료를 공유, 경찰청이 노인장기 5등급 판정자에 대해 수식적성검사를 실시해 운전결격자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과 영국, 호주 등에서는 이미 노인 등 인지기능저하군을 위해 별도의 면허관리를 체계를 두고 있다.
일본은 70세 이상 운전자에 대해서는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하도록 하고,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해서는 치매검사를 의무화, 기억력이나 인지능력 장애가 의심되면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고령자에 대해서는 인지기능과 인식검사, 신체적 능력검사, 시력검사, 도로주행 등을 꼼꼼히 살피는 종합평가제도를 두고 있으며, 호주는 80세 이상 운전자는 면허갱신시 의료증명서를 제출하고, 85세 이상은 실제 주행 시험을 실시하도록 하는 면허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디멘시아뉴스 dementianews@dementianews.co.kr
<저작권자 © 디멘시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