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대상 경제적 착취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법학계를 중심으로 관련 법의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경우 20년 전 이미 고령자에 대한 경제범죄 가중처벌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국내는 관련 법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주장의 핵심은 고령자 대상 경제적 착취 관련 법의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판단 기준의 마련이다. 또 수사기관 등 관련 기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종합계획도 촉구했다.
최근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이성기 교수(제1 저자)와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조영일 교수(교신저자)는 '미국의 고령자 대상 경제적 착취범죄 처벌에 관한 법제도 연구'를 한국경찰법학회지에 발표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60세 이상 인구 증가율보다 60세 초과 사기 및 횡령 범죄의 증가율이 훨씬 높아 고령자의 경제범죄 피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 대상 경제범죄 증가로 경찰 당국이나 법조계는 노인 대상 금융사기, 횡령, 배임, 절도를 비롯한 노인의 재산이나 자원을 불법 또는 부당하게 사용하는 모든 행위를 '경제적 학대 행위'로 통칭하는 추세다.
고령자 대상 경제적 학대 행위의 특징은 고령자의 동의를 가장한 거래로 형사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가족, 간병인, 친구 등 고령자와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에 의해 주로 발생해 동의 또는 묵인하에 재산을 취득하기 때문이다. 즉 위축 및 불안한 심리상태를 이용하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경제적 학대는 '경제적 착취', '경제적 부당대우'로도 불린다. 노인복지법(제1조의 제4호)에는 노인학대 유형으로 '경제적 착취'로 사용하지만, 그 정의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은 상태다.
반면에 미국은 지난 2000년대부터 노인 경제범죄를 경제적 착취(financial exploitation)로 규정하고 기존 형법의 규정에 구성요건을 다변화하면서 법정형을 상향했다. 결국 최근에는 미국 대다수 주에서 고령자 대상 경제적 착취에 관한 형사 처벌 규정을 보편화했다.
◆미국의 경제적 착취범죄 법 제도화 과정과 핵심은?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고령자 학대 방지 및 기소에 관한 법(the Elder Abuse Prevention and Prosecution Act, EAPPA)을 계기로 노인에 대한 일반적인 형법상의 경제 범죄도 경제적 착취 범죄로 취급돼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게 됐다.
2020년 현재 39개 주와 콜럼비아 지구(District of Columbia)를 포함한 40개의 사법관할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적 착취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 조항을 두고 있다.
이 중 26개 주 및 콜럼비아 지구는 해당 조항에 ‘착취(exploitation)’ 또는 ‘경제적 착취(financial exploitation)’라고 칭한다. 그 외 약 3개 주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절도나 사기죄와 같은 기존 처벌조항의 법정형을 상향하는 입법으로 고령자 대상 경제적 착취 행위에 대처한다.
고령자에 대한 경제적 착취 범죄는 비교적 법정형이 높다는 게 특징이다. 경제적 착취범죄를 규정하는 주는 대체로 피해 액수에 따라 법정형이 상향되도록 규정한다.
◆국내 치매 관련 판결 추세는?
치매와 관련된 재산 범죄의 판례도 점차 치매 자체보다는 중증 진행 여부와 실제 의사 표시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판단하는 추세다.
연구진이 하급심 판례를 분석한 결과, 대체로 중증도의 치매 진단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고 경증 치매 진단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18년 2월부터 2023년 2월 1일까지 '준사기 및 치매'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관측됐다. 중증 치매의 경우 심신장애를 인정하지만, 치매 진단을 받았으나 증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가 아닌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시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연구진은 고령자에 대한 경제적 착취 범죄가 미국 등에 비해 크게 뒤처진 만큼,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논문을 통해 이성기 교수는 "고령자의 경제적 의사결정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사회적 요소에 대한 경험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호가 필요한 연령대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적 착취에 대한 판단 기준 정립과 함께 수사기관 등 관련 기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종합계획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