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경퇴행성질환 환자에서의 신경완화치료
[칼럼] 신경퇴행성질환 환자에서의 신경완화치료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 승인 2023.10.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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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 교수 / 계명의대 동산병원
유수연 교수 / 계명의대 동산병원 신경과

최근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 덕분에 야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 등 수많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스포츠 경기들을 볼 때면 늘 드는 생각은 승리를 위해서는 점수를 얻기 위한 적극이고도 정교한 ‘공격’이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점수를 잃지 않기 위한 견고한 ‘방어’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오히려 게임이 길어질수록 ‘방어’를 잘하는 측이 승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이러한 스포츠 경기와 질병 치료 과정을 완벽하게 동일시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상당히 닮아 있는 점들이 있긴 하다. 

특히 질병이라고 하는 어려운 상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 환자,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한 팀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 부분이 가장 비슷하다.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 / 유수연 교수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 / 유수연 교수

그리고 다양한 질병과 싸움 중에서도 그 경기의 호흡이 가장 길고 이기기 어려운 상대와 맞붙어야 하는 경우가 바로 ‘신경퇴행성질환의 치료’일 것이다. 

신경퇴행성 질환 혹은 퇴행성 신경 질환이란 우리의 중추신경계의 특정 부위 또는 전반에 퇴행성 변화가 나타나 고유의 기능이 소실되어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는 병을 의미한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이나 움직임이 느려지고 몸이 뻣뻣해지며 떨림을 동반하기도 하는 파킨슨병이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에 속한다.

신경퇴행성질환은 세계적으로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부담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신경퇴행성질환은 한 번 발병하면 점차 진행하여 육체적, 정신적인 기능의 저하를 일으키며 병을 앓는 기간이 길고 질병의 특성 때문에 기나긴 간호와 간병이 필요하며 병의 경과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어서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은 암과 같은 중증 내과 질환보다 더 심각한 경우도 많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는 신경 퇴행성 질환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완치 방법), 스포츠 경기로 치면 ‘필승을 위한 공격 방법’이 뚜렷하게 개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항체 치료제 등도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최신 약제 역시 ‘완치’를 보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경퇴행성질환 치료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우리는 공격적인 치료법 개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질환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움을 줄이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어적인 치료에 관한 관심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치료가 바로 ‘완화치료(Palliative care)’이다.

완화치료 중에서도 신경계 질환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보호자/간병인 등)을 위한 특별한 치료를 ‘신경완화치료(Neuropalliative care)’라고 하며, 이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여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전문 의료진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완화치료라는 용어가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고 있으며 그나마 말기 암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치료’가 좀 더 떠올리기 쉬운 이미지일 것이다. 

실제로 호스피스 치료의 정의는 기대 여명이 6개월 미만인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과도한 검사나 시술은 피하고 편안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이며 완화치료는 좀 더 포괄적으로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질병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통을 경감 시켜주기 위해 행해지는 모든 치료 과정과 방법을 의미한다. 

환자의 사후에 가족들이 겪는 슬픔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 역시 포함되어 있는데 완화치료는 환자의 상태와 질병의 경과에 따라 수년 이상의 기간 지속하기도 한다.

이러한 완화치료의 개념을 고려해보면 아직 완치 방법이 개발되지 않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진단받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처음부터 완화치료가 병행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신경완화치료의 경우, 암 환자를 위한 완화치료와 비슷한 형식으로 전문적인 팀을 형성하여 다양한 방면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신경완화치료팀의 구성 / 유수연 교수
신경완화치료팀의 구성 / 유수연 교수

신경완화치료팀은 신경완화치료 전문의, 전문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로 구성된다. 팀원들은 각자의 전문 영역의 특성에 따라 환자와 가족들에게 접근하게 되는데, 신경 완화치료 전문의는 질병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전반적인 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전체적으로 팀을 통솔하는 역할을 한다. 

전문 간호사는 실제적인 완화치료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복지사는 사회적/공적 자원에 대한 접근을 도와주게 된다. 그리고 성직자는 환자와 가족들의 영적 문제를 해결하고 영적 지지를 담당한다. 

환자 맞춤 사전 의료 계획의 수립 / 유수연 교수
환자 맞춤 사전 의료 계획의 수립 / 유수연 교수

신경완화치료 팀과의 진료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가 질병에 의해 발생하는 개인적(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법적(나의 질병 상태에 따라 법적인 권리 행사가 어려울 때 누가 대행할 것인가?), 의학적(나의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며, 언제까지/어느 정도의 치료를 받고 말기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 경제적(치료와 간병에 관련하여 드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영적(나의 영혼의 문제, 사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인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고민할 기회를 얻게 되며, 자신들의 삶과 질병에 대한 사전치료계획(Advance care plan)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신경완화치료 팀과 만남은 환자와 가족들이 겪게 될 불안이나 우울감도 줄일 수 있고, 기존의 치료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들이 느꼈던 불만족이나 아쉬움(짧은 진료 시간, 질병의 치료 과정과 예후에 대한 적절한 설명 부족, 사회적/공적 자원 접근 방법에 대한 궁금증, 영적 혹은 종교적인 대화의 부재 등) 역시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한국에 신경 완화치료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의료진은 없는 상태이며 의료진, 환자, 가족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도 지금의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어떠한 방식으로 개선해야 할지는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신경 완화치료 팀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극복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다. 

한국 사회에 신경완화치료의 정착을 기대하며 / 유수연 교수
한국 사회에 신경완화치료의 정착을 기대하며 / 유수연 교수

신경완화치료가 ‘질병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할 수 있는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며 환자와 가족들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치료라는 것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경완화치료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정책적인 지원이 병행되어야 신경완화치료를 위한 전문 의료진이 배출되고 좀 더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치료의 혜택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극복할 수 없는 신경퇴행성질환과 질병 진행에 따라 당면하게 될 수 있는 고통과 죽음이라는 결말은 우리 모두에게 슬픔과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경완화치료는 환자와 가족들이 삶의 아름다운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좀 더 편안하고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언젠가 신경완화치료가 한국에서도 익숙하고 당연한 개념이 되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지금도 힘겨운 신경퇴행성 질환과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수많은 환자, 가족, 그리고 의료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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