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환 나들이데이케어센터 대표, 돌봄 현장에서 보는 치매 정책
정경환 나들이데이케어센터 대표, 돌봄 현장에서 보는 치매 정책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11.27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 자신이 치매라면’으로 감정 이입해서 치매에 공감하기
칸막이 구조 못 넘는 정부 정책

도심 곳곳에 주간보호센터, 데이케어센터가 들어서 있다. 고령의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면서 단순히 사람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돌봄 시설을 운영하는 주체는 정부 정책을 잘 살펴야 하고, 현장의 요구 사항도 살피며 연구자와 실천가의 용모를 가져야 한다. 지금도 인터넷에 주간보호센터 설립 조건을 찾는 관심 자가 많고 관련 내용도 넘친다. 과연 치매인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주간보호센터, 데이케어센터를 세우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존 치매 돌봄 기관의 서비스 질은 잘 유지되고 있을까? 치매 돌봄 현장에서 10년째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정경환 대표가 디멘시아도서관을 찾아주었다. 돌봄 현장의 운영자에게 한국 치매 돌봄의 현실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디멘시아도서관 청춘사진관 존에서 정경환 대표

 

1. 정경환 대표님과 나들이데이케어센터를 소개해 주세요.

2014년 5월 1일부터 군포시에 있는 나들이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치매에 특별한 지식과 경험 없는 상태에서 교회 목회를 하다가 운영을 맡게 됐습니다. 이용자 정원은 22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직원은 계속 늘어 현재 12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로 살다가 처음 해보는 일이라 무척 힘들었어요. ‘주야간보호센터’가 아닌 ‘데이케어센터’는 어감상 차이가 큽니다. ‘보호’는 수동적인 모습이고, 데이케어센터는 치매 증상의 분들 눈높이를 맞춰 교감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데이케어센터 운영에 도움이 될 책을 여러 권 읽고 연구했습니다. 호주의 치매 환자인 크리스틴 브라이든이 자신의 투병 내용을 기록한 책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통해 치매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노인 전문가들이 쓴 현장 사례집 《노인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 수발을 요하는 고령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으므로 비즈니스화할 때 필요한 직업의 전문성, 서비스의 질, 관련 종사자 간의 유대관계, 지역 사회와 연대 등을 공부하면서 돌봄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한편, 치매에 관한 좋은 책들이 절판되는 상황이 안타까웠는데 디멘시아도서관이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같이 치매 책을 찾아 읽고 연구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도서관입니다.

12월부터 (사)치매케어학회의 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주최하는 치매 전문 교육을 받던 중 《치매케어텍스트북》을 탐독했고, 이 책의 번역자 황재영 박사님을 만나면서 치매케어학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여기서 다학제 간 공부를 하며 돌봄 서비스의 질적 강화를 연구해왔습니다.


2. 데이케어센터에서 10년간 일하며 많은 경험을 하셨을 테니, 국가 정책에 관해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치매로 고생하셨습니다. 당시 한옥에서 살았는데 할아버지 방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교회 목회를 하며 노인 성도분들을 특히 많이 만났습니다.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해 보니, 그때의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치매를 인생 여정으로 받아들이며 오랜 세월에 굳어져 수동적인 분이 많습니다. 치매인의 보호자도 발병 후 ‘어떤 열정’으로 알아보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국정 과제 중 ‘치매국가책임제’가 있어, 각 지자체에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되고 치매 조기 검사 등이 이뤄졌습니다. 현 정부의 치매 정책은 그보다 후퇴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보건소 산하 치매안심센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인장기요양사업의 일환인데, 현장에서는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공단의 치매 케어 방향성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에게 휴머니튜드케어(Humanitude Care, ‘인간다움’, ‘인간을 존중하고 돌보는’의 뜻으로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운 환자더라도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며 돌봐야 함을 의미)와 퍼슨센터드케어(Person-Centred Care, 사람 중심 돌봄)로 치매환자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고 불안감을 줄여야 하는데 단순히 스킬만을 요구합니다.

 

디멘시아도서관 장서를 보는 정 대표

3. 돌봄 서비스의 현장 종사자로서 치매 관련 기관의 한계는 뭐라 보십니까?

치매안심센터와 장기요양기관의 하드웨어는 숱하게 많지만, 이용자와 직원의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소프트웨어의 접근이 미진하죠. 종종 우리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도대체’ ‘무엇을' 구현하고 싶은지 질문이 생깁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들여다보면, 이용자 입장의 서비스를 구현하기보다 관료의 자기 합리성과 탁상공론으로 규정한 내용이 많아 법제의 효능감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공단과 협의해 지역사회에서 치매 친화를 위한 공부를 하고자 문의한 적이 있습니다. 공단은 자신들 일은 장기요양이지 치매 케어가 아니라는 답을 내놓아 난감했습니다. 또한 관료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본인이 치매 케어의 현장을 좀 더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더군요.

안타깝게도 정부와 현장이 서로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현장도 정부의 치매 정책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의 숫자는 2% 정도에 불과하고, 치매를 돌보는 보호자를 쉬게 해주자는 ‘치매가족 휴가제’도 이용하는 비율이 저조한 데 아직까지 특별한 개선책이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현 대통령이 치매 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칸막이 구조입니다. 즉, 허들을 넘는 대안을 짜기보다 문제를 부문별로 구획해 칸막이로 나눠 사고하고 쪼개어 제각기 대응하는 틀만 제공합니다. 문제를 바라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학계와 연구자들의 초기 아이디어 단계부터 중앙 정부와 지방정부에서 이뤄지는 관료들의 집행까지 모든 단계에 칸막이가 존재합니다.

치매 정책을 실현할 지자체는 관심이 부족하고, 치매안심센터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협력이 부족합니다. 민간 기관은 사람 중심의 치매 접근이 부족합니다. 치매인과 치매 가족의 돌봄권 주장은 개인의 몫이 돼 있습니다.

 

4. 대표님께 대안을 묻는다면 무슨 말씀부터 하고 싶으신가요?

‘만약 우리 가족에게 치매가 생긴다면’의 접근이 아닌, ‘나 자신이 치매라면’으로 감정 이입해서 치매인을 공감하는 공부를 하고, 치매 케어 방법을 습득해야 합니다. 현장의 장기요양 종사자는 치매 케어에 관련된 책을 일 년 동안 몇 권이나 읽고 관심 가지며 공부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치매인은 먼저 본인을 자책하지 말고,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자기 돌봄의 시선이 중요합니다. 그 따뜻한 시선으로 치매를 돌보는 분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이라며 많은 뉴스에 언급됩니다.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가 14% 혹은 20%가 되면, 사회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그 의미에 대한 답은 잘 들여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초고령사회의 다양한 지표로 두려움을 증폭하고 있으면서도, 대비를 위한 철저한 기본기는 미약해 보입니다.

 

디멘시아도서관 서가의 정 대표

5. 정 대표님과 나들이데이케어센터의 꿈과 디멘시아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바는?

맡겨진 소명에 따라 치매 케어의 내공을 안팎으로 다듬어, 우리 사회의 모두가 사람다운 길을 내다가 아름다운 인생 소풍을 마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데이케어센터 이름 ‘나들이’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싯구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도 치매인도 세상 소풍 마치고 아름다웠더라 고백할 수 있길 빕니다.

치매라는 주제의 뉴스, 도서관, 출판으로 치매 가족을 위한 길을 집중적으로 모색하는 그 열정을 응원합니다. 디멘시아뉴스처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연구하며 아픔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부조리는 조금씩 해소되리라 믿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