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버지가 남긴 아파트 증여와 소유권 이전, 무효일까?
치매 아버지가 남긴 아파트 증여와 소유권 이전, 무효일까?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1.17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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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성년후견제도’ 시행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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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서 소개된 “아버지가 남긴 아파트 증여와 소유권 이전, 치매였다면 무효일까?” 사연이 화제다. 이 사연의 법률 자문에서 언급된 성년후견제도를 자세히 살펴본다.

사연은 이러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막내딸 A씨가 홀로 간병했다. 서울에서 살던 A씨는 직장을 다니다 퇴사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던 중에 아버지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는다. A씨는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했다. 언니들이 있었으나 육아와 직장생활로 바쁜 언니들 대신 A씨가 돌봄의 책임감을 갖고 아버지 계신 고향 집에 내려와 독박 간병을 했다.

아버지는 치매 증상이 있었고 막내딸을 못 알아보거나 외출 후 집이 기억나지 않아 파출소의 도움을 받는 일도 있었다. A씨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고 매일 찾아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이런 생활이 1년 흐르자, 아버지는 “다른 딸들과 달리 곁에서 돌봐줘 고맙다”며 A씨와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가 본인 명의의 아파트를 증여했고 소유권 이전 등기도 마쳤다. 이후 치매 증상은 점 심해졌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A씨의 언니들은 아버지가 막냇동생에게 아파트를 증여한 사실을 알자,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상태의 증여는 무효라며 원래 자신들이 받기로 한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아버지 간호를 도맡던 중에 언니들은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무관심했으면서 인제 와서 아파트 증여 사실에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이 사연에 이준헌 변호사는 “증여계약 당사자는 A씨와 아버지로 A씨의 언니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증여 무효의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할 수는 없다”고 했고,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자매 중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아버지의 성년후견인이 된다면, 그 자매들이 포괄적인 대리권을 갖고 아버지를 대리해 증여 무효의 확인을 구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년후견인에 A씨 언니들은 선임되기 어렵다. 디멘시아뉴스가 정리한 아래 성년후견제도의 후견인 선임 대상 항목을 보면, 후견인 후보자에 대해 '가족 간 다툼이 있는 경우 후견인으로 선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실제 소송에서 치매 때문에 증여가 무효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최근 판례를 보면 치매를 이유로 단순히 환자를 의사무능력자로 보는 경향에 변화가 생겼다”며, “치매 환자라고 해도 법률행위 당시 의사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면 그 법률행위는 유효하다고 본다. 사연자의 아버지도 치매라는 이유로 곧바로 증여가 무효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아파트 증여 당시 아버지에게 의사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요양병원 진료기록에 대한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해 진료기록을 확보하고,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 등을 통해 증여 당시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온전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할 때가 많았다는 영상이나 대화 녹음이 존재한다면 입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라디오 법률 조언에 의하면 A씨가 증여받은 아파트 소유에 대해, 아버지의 상태를 입증하는 진료기록을 증거로 제시하면 문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연에서 나온 성년후견제도에 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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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후견제도란

성년후견제도는 장애·질병·노령으로 재산과 신상을 돌볼 수 없는 경우 성년후견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로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그 이전에는 금치산·한정치산제도가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이를 폐지하고 시행한 제도다.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의 돌봄은 전통적으로 친권 책임으로 맡겨졌다. 성년후견제도의 시행으로 친권에게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성년자 또는 장애·질병·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 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까지 보호와 지원이 가능해졌다.

성년후견제도는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기본이념으로 하여 후견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재산 관련 분야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등 신상에 관한 분야에도 폭넓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현재 정신적 제약이 없는 사람이라도 미래를 대비해 성년후견제도(임의후견)를 이용할 수 있다.

 

성년후견제도의 종류

성년후견제도의 후견은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법정후견'은 후견을 받을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법률에 근거하는 반면, '임의후견'은 후견을 받을 사람이 미래에 질병, 장애, 노령 등 사유로 문제가 생길 상황에 대비해 미리 후견인을 선임하며 당사자 간의 계약에 따른다.

법정후견에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이 있다. 정신적 제약으로 인해 사무처리 능력이 일시적 결여인가, 전반적인 결여인가, 결여의 지속성은 어느 정도인가 따라 구분한다.

 

어떤 경우 신청하는가

성년후견 신청은 부모, 배우자, 자녀 등이 질병, 장애, 노령과 같은 제약으로 재산관리, 신상에 관한 결정이 어려운 경우에 후견인으로 선임된 사람이 재산을 관리하고 신상에 관한 결정을 해준다.

 

후견개시 신청은 누가 청구하는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감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가정법원에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성년후견인 선임 대상

법원은 우선 피후견인의 의사를 존중하되, 피후견인의 건강, 생활 관계, 재산 상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적합한 자를 후견인으로 선임한다. 가족·친척·친구 등은 물론 변호사·법무사·세무사·사회복지사 등의 전문가도 후견인으로 선임될 수 있고, 여러 명이 선임될 수도 있다.

단, 후견인 후보자가 결격사유가 있거나 후견인 후보자에 대해 가족 간 다툼이 있는 경우 후견인으로 선임되지 않을 수 있다. 결격사유는 미성년자,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 피특정후견인, 피임의후견인, 회생절차개시결정 또는 파산선고를 받은 자,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기 중에 있는 사람, 법원에서 해임된 법정대리인 등이다.

 

성년후견인의 권한과 의무, 감독 및 개인정보 보호

후견인이 갖는 권한은 피후견인의 법률행위 취소, 피후견인 재산에 관한 대리행위, 신상에 관한 결정 등이다. 의무로는 피후견인의 재산목록과 후견사무보고서 등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감독은 가정법원 또는 후견 감독인이 한다. 후견과 관련한 별도의 등기제도를 통해 후견인 선임 여부에 대한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다.

 

A씨 자매들의 경우

본문 사연의 A씨 언니들은, 아버지가 치매로 인해 생활에 문제가 발생한 후이므로 성년후견제도를 사용하려면 '법정후견'에 해당한다. 또한 두 언니는 후견인 후보에서 가족 간 다툼이 있는 경우이므로 선임되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과거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보이기 전에 이 제도를 사용했다면 '임의후견'에 해당한다. 평소 아버지 돌봄에 관심도가 높지 않았다는 맥락을 보면, A씨 언니들은 임의후견을 이용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다른 후견제도는 모두 법원의 심판에 의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것이지만, 임의후견은 법원의 후견 개시 심판을 거치지 않는다. 단지, 후견인과 후견을 받을 사람 사이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맺는 후견계약만으로 후견인 선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임의’ 후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단, 후견계약은 가정법원에 의해 임의후견감독인이 선임된 후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시행 10년의 평가

성년후견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후견제도에 대한 의견 대립이 일고 있다. 후견인을 선임한 장애 당사자들이 각종 자격 취득, 취업을 제한당하고 당사자의 의사결정과 자율성이 침해되는 사례가 일어나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장애인을 취약한 상황에서 보호하고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데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유엔, “성년후견제도 폐지하라” 권고, 한국 정부는 거부

한편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 2014년 한국의 성년후견제도는 ‘대체의사결정제도’라며 이를 ‘조력의사결정제도’로 바꾸라고 권고했다.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장애인의 의사를 타인이 대신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를 최대한 조력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정부는 위원회 권고를 따르지 않고 2019년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 “성년후견제도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금지하는 차별이라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한국 정부에 로버트 마틴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은 “피후견인의 권리는 사실상 박탈당하고 있다. 이 같은 대체의사결정제도는 철폐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위한 예산과 일정이 준비돼 있는지 알려달라”고 질문했다.

정소연 법무부 인권정책과장은 국가보고서 내용을 반복하며 “후견제도는 장애인의 행위능력을 제한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의사능력과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후견을 개시할 때 당사자 의사를 고려하고 의료전문가 감정도 받고 있다. 또한 당사자 의사에 따라 가정법원에 청구하면 후견 종료도 가능하다. 후견제도가 폐지되면 장애인의 권리행사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후견인이 재산 갈취, 악용 막을 감독 인원 부족

작년 말 시행 10주년이 된 성년후견제도의 허점에 관한 분석이 나왔다. 성년후견인은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관리하는 감독관은 15명뿐이다. 2022년 감독 1명당 291건을 담당했다. 한국은 서양과 달리 친족이 후견을 맡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감독관 업무가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감독 인력 부족으로 문제 인지 시점이 매우 늦어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50대 남성 A씨는 4세 수준 지능의 발달장애인 숙부 B씨 소유 아파트를 2020년에 대신 팔았다. 집을 팔아 번 10억 원의 현금을 챙긴 그는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A씨가 B씨의 성년후견인이 된 이듬해 벌어진 일이다. 이 가운데 5억 원을 사업자금과 생활비로 멋대로 사용한 A씨에게 법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대리인 자격으로 아파트를 매매하도록 허가하면서 판매대금을 B씨 통장에 보관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A씨는 이 돈을 자기 통장으로 빼돌렸다. 이 사실을 법원이 뒤늦게 알았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건 사건 발생 3년 뒤인 작년 1월이다.

시행 10주년을 맞은 성년후견제도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처럼 후견을 감독하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충희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사무총장은 “A씨 사건의 경우 감독이 적기에 적절하게 이뤄졌다면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문정민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상임이사도 “후견인이 보고서를 1년 넘게 제출하지 않은 시점에서 뒤늦게 문제를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견개시 역시 빨라야 4개월 뒤에 심문기일이 잡히는 등 일본과 비교했을 때 사건 처리 속도가 확연히 늦다”고 강조했다.

 

제2회 한국후견대회에서의 10주년 점검

작년 9월 12일 열린 ‘제2회 한국후견대회’에서 성년후견제도 시행 10주년을 점검했다. 정동혁(51·사법연수원 31기)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가 ‘후견제도 운영 10년의 성과와 전망’을 발표하며, “후견인의 횡령 등 부정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친족상도례 배제 규정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철웅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이 대회에서 ‘성년후견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발표했다. “발달장애, 치매, 정신장애가 있는 성인도 자기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만 그 의사표시를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들의 권리, 의사, 선호도를 이해하고, 그것에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지원의사결정제도의 패러다임임을 언급했다.

시행 첫해인 2013년 1,833건에 불과했던 후견사건은 2018년 8,359건으로, 2022년에는 1만1,473건으로 해마다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치매에 걸린 박 할머니의 임의후견 사례

아들에게 생활비를 뺏긴 박 할머니는 자신의 노후를 지켜달라며 한 노인보호센터를 찾았다. 전문가들이 모여 상의 끝에 오랜 시간 간호조무사로 요양원에서 근무해 온 후견인과 박 할머니와의 임의후견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남편과 사별한 후 박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 법원을 통해 박 할머니의 임의후견 계약을 개시하려 한 담당 변호사는 까다로운 절차와 한번 후견을 개시하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번복이 어렵다는 부담감 때문에 후견 개시를 망설였다.

 

노년이 행복할 권리 위해

한국성년후견학회는 임의후견이 피후견인 본인이 장래를 생각해 후견인과 후견 사항을 비롯한 후견 방법을 미리 정한다는 점에서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에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후견심판 41,901건 가운데 성년후견이 34,394건(82%), 한정후견이 4,016건(9%), 특정후견이 3,361건(8%), 임의후견 130건으로 법정후견(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이 임의후견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임의후견제도는 피후견인의 자기 결정권 존중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피후견인이 정신 능력의 감퇴가 일어나기 전, 예측되는 시기에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보호에 관한 사무를 타인에게 위탁하고 대리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후견계약 후 임의후견인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후견인에 대한 공적 기관의 감독을 법제화했다.

성년후견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임의후견의 개시가 크게 늘고, 문제 대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만한 감독 인력을 충분히 보충해야 한다.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다. 노년의 행복할 권리에 기여하는 성년후견제도의 내용을 상세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시행 10년을 넘기며 드러난 명암을 분석하고, 제도의 허점과 담당 인력을 보완해 치매 노인과 장애인의 삶과 재산 보호에 효능감 있는 제도로 정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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