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6]
치매 걸리신 부모님들이 먹는 약 이야기[16]
  • DementiaNews
  • 승인 2018.07.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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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수면제


“누군가 낮 동안에는 늘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천근같이 무겁더라도 밤에 잠이 그를 사로 잡는다면 그래도 참을 수 있는 불행이지요.잠은 눈꺼풀을 덮어 선한 것, 악한 것,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것(Sleep covers your eyes Good, evil, forgetting everything)”
--호머의 오딧세이 중에---

팝의 황제라고 불리는 마이클 잭슨이 2009년 6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5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LA 카운티 검시소는 오후 2시 26분에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며, 자택에 의료진이 도착했을 때 이미 맥박과 호흡이 끊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반응이 없었으므로 실제 사망한 시각은 그보다 더 일렀을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재판에서 검찰은 잭슨의 사망 직전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비디오를 공개하였습니다. 잭슨은 이 비디오에서 아동 병원을 짓겠다는 계획과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그 어느 전성기보다 왕성한 활동의지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잭슨이 왜 사망하였을까요? 콘서트 준비로 불면증을 호소하던 잭슨은 자신에게 마취제를 투여해 줄 의사를 찾던 중 머레이 박사를 개인 주치의로 고용했다고 합니다. 머레이 박사는 잭슨이 사망한 날 밤 안정수면제인 로라제팜과 미다조람, 신경안정제 바륨 등을 주었지만 잭슨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호소하자 결국 25밀리그램의 프로포폴을 투여하였다고 합니다. 머레이 박사는 더 이상의 약 주기를 주저하였지만 잭슨이 강력히 요청하여 할 수 없이 주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호머의 오딧세이에서 나온 위의 구절처럼, 아무리 낮에 힘들고, 어렵고, 구차한 것이 있더라도 밤이 자신을 사로잡는다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두 잊고 쉴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원인이든 깊은 수면을 빼앗긴다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게 됩니다. 호머는 오딧세이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합니다. “숙면은 맛있고 심오하며, 죽음의 다른 면(Sleep, delicious and profound, the very counterfeit of death)이다”. 실감나는 말입니다. 불면인 사람은 필사적으로 수면을 찾으려고 하고 만약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음을 불사할 수도 있지요. 따라서 수면 건강이 매우 중요하지만 수면장애는 특별한 2차적인 원인이 없어도 올 수가 있습니다. 특히 노화나 치매는 수면을 유도하는 신경 중추에 손상이 오기 때문에 불면, 일주기의 변화, 숙면부족, 조각 잠, 밤낮의 바뀜 등 수면과 관련된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우리 대뇌는 많은 신경전달 물질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자극이 되면 뇌를 흥분 시키고 어떤 일을 행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요(임상적으로 흥분 상태가 지속되면 충동조절 곤란, 흥분, 불안, 불면 등이 생기지요). 하지만 반면 계속적인 흥분이나 일을 하게 되면 뇌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지요, 따라서 뇌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뇌를 안정화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억제성신경전달 물질입니다. 인간에서는 주로 gamma-aminobutyric acid 즉 약자로 가바(GABA)라고 불리우는 아미노산이 이 역할을 합니다. 이 가바가 작용하는 수용체가 가바(GABA)수용체입니다. 이 수용체를 자극하면 뇌는 점차 쿨 다운 되기 시작하면서 불안, 흥분, 그리고 불면 등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 가바수용체에 작용하는 3가지 종류의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바비튜레이트(barbibutrates) 계열,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 계열, z-drug 이라고 불리우는 최근에 개발된 약 계열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모두 가바수용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바비튜레이트 계열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이 계열의 약은 저용량에서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과 마찬가지로 가바수용체의 옆에 붙어 가바의 기능을 향상시키지만 고용량이 되면 가바수용체에 직접 작용하여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하지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 역시 중독성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짧은 기간 최소 용량으로 제한적으로 사용 됩니다. 최근에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과 유사한 수용체에 작용하지만 전혀 화학적 구조가 다른 졸피뎀과 같은 z-drug 이라는 약들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벤조다이아제핀 계열과 다른 수용체에 작용하며 작용 시간이 짧지요. 그래서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에 비하여 부작용이 적다고 하여서 많이 처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량이 올라가면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이 작용하는 수용체에도 같이 작용하여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과 같은 다양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복용 시 주의하여야 합니다. 특히 알코올과 같은 물질과 같이 섭취하게 되면 그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수면제는 단기간 처방 후 끊는 것이 옳지만 치매 환자의 경우는 상당 기간 이 약이 필요할 수도 있으므로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 주의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런 가바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들이 치매가 아닌 노인에서 사용시 치매의 발생 위험성을 증가 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증상을 더 악화 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확실히 이런 약들을 사용하면 치매 환자에서는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 관찰합니다. 왜 그러는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이 인지자원보유(cognitive reserve)에 영향을 준다는 것 입니다. 인지자원보유 가설을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뇌 신경구조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좀더 많은  신경세포의 시냅스가 형성된 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어떤 부위에 손상이 와도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뇌신경구조가 형성되어 병변이 생겨도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바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들은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신경의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인지기능손상에 대한 보상작용이 어렵게 되어 더 많은 증상을 보이는 것이지요. 따라서 누차 이야기 하지만 이 계통의 약을 사용할 때는 필요할 때만 단기적으로 즉 3개월 이내로 사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하지만 치매가 중등도 이상 진행된 환자 입장이나 환자를 보는 저의 입장에서는 과연 가바수용체에 작용하는 이런 약 들을 기간이나 용량을 정확하게 지켜야 할지 의문입니다. 예전에는 암 환자에게 마약을 처방할 때 부작용 등을 우려하여 아주 엄격하게 규제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좀더 유연하게 많은 양(아니 적정 양)을 사용합니다.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고 현재의 통증이 치료해야 할 가장 중요한 증상이지요. 마찬가지로 중등도 이상 진행된 치매 환자가 필사적으로 잠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전체적인 인지기능에 대한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선택의 문제를 마주 합니다.
 

무지개 너머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땅이 있죠
 무지개 너머 하늘이 파랗게 물든 어딘가에
 그리고 당신이 꿈을 꾸면
 반드시 이뤄지죠………………………


영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1939)”에 삽입된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쥬디 갈란드의 대표곡입니다. 원래 이 노래는 1930년대 미국의 시대상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1929년 미국은 대공황이 터지면서 경제가 파탄 나고 기나긴 불황기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이런 우울한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은 1930년대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전세계에 유행하게 된 것은 전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 하였을 초기 미국은 중립을 지켰으나 결국 1942년 참전하게 됩니다. 수 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유럽 전선으로 차출 되며 죽음을 넘나 드는 전쟁현장 속에 내몰리게 됩니다. 황량한 유럽 전선 속에서 어두운 밤 하늘, 참호 속에서 담배 한대와 차가운 공기를 타고 흘러나오는 이 노래는 미국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쟁 속에 시름하던, 그리고 흥분하고, 불안해 하던 사람들의 뇌를 조금이라도 쉬게 하였던 노래였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오늘 하루 종일 치열한 전쟁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라도 쉴 수 있는 이 노래와 같은 일이 마법과 같이 펼쳐 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약이든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이든지….


Reference
1. Pariente A, De Gage SB, Moore N, Be´gaud B. The benzodiazepine-dementia disorders link: current state of knowledge. CNS Drugs. 2016;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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