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는 장기 복용 시 치매 위험 증가

수면은 모든 연령대에서 최적의 인지기능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수면장애가 오면서 수면의 질과 양이 떨어진다. 불충분한 수면은 비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 및 인지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만성 질환의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됐다.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고,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서 불면증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수면장애 환자는 최근 5년 동안 약 30% 증가했으며, 2022년 기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수면장애 환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다. 노인 중 여성에게서 수면제 사용이 더욱 늘어나고 있고, 졸피뎀과 같은 일부 수면제는 남자와 여자의 대사 능력 차이로 인해 각기 다른 용량으로 처방되고 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치매 위험이 커진다고 하니, 수면제를 복용해서라도 잠을 청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수면장애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수면제가 인지장애, 기억상실 등 치매나 치매의 전조 증상으로부터 도움이 되기보다 장기간 복용하면 오히려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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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과 치매

불면증과 치매 위험에 대한 연구에서 중년기(약 50대)의 불면증과 노년기(약 70대 이상)의 불면증은 높은 치매 위험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수면장애가 있는 남성을 수면장애가 없는 남성과 40년의 관찰 기간을 두고 분석했는데, 수면장애가 있는 쪽의 치매 발생 위험이 1.33배 높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남성 노인을 10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에서 불면증 자체가 혈관성 치매와 연관성이 유의미하지는 않았지만, 불면증과 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코골이, 주간 수면 등과 같은 수면장애는 혈관성치매와 연관성이 있었다.

 

과다 수면과 치매

과도한 주간 수면은 원하는 각성 유지에 어려움이 있거나 과도한 수면에 대한 불만이 있는 증상이다. 노화는 주간 수면 증가와 관련이 있고, 20~30%의 노인은 낮에 잠이 들거나 어떤 징조도 없이 갑자기 잠이 쏟아지는 수면발작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기간 수행된 여러 연구에서 과다 수면증이 있는 사람에게서 치매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의하면 과도한 주간 졸림을 보고한 사람은 주간 졸림을 보고하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2배 높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또한 과도한 주간 수면뿐만 아니라 수면의 부적절함은 치매 발병 위험과 연관성이 있다고 나타났다.

치매가 없는 고령자의 과도한 주간 졸음은 장기적인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로 주간 졸음은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의 위험 요소임을 뒷받침한다.

 

곽용태 박사의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 디멘시아북스 

 

치매와 수면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낮 동안에는 늘 눈물을 흘리고 마음이 천 근같이 무겁더라도 밤에 잠이 그를 사로잡는다면 그래도 참을 수 있는 불행”이라는 표현이 있다. 수면을 빼앗긴다면 인간은 쉴 공간이 없다. 불면인 사람은 필사적으로 수면을 찾고, 수면장애가 심각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있다.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는 책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디멘시아북스)에서 치매와 수면제에 대해 설명했다.

노화나 치매는 수면을 유도하는 중추신경을 손상하므로 불면, 일주기의 변화, 숙면 부족, 토막잠, 밤낮의 바뀜 등 수면과 관련된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수면을 위해 뇌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억제성 신경전달 물질이다. 주로 가바(GABA, Gamma-Aminobutyric Acid)라고 불리는 아미노산이 이 역할을 한다. 가바 수용체를 자극하면 뇌는 점차 진정되면서 불안, 흥분, 불면이 사라진다.

이 가바 수용체에 작용하는 약이 바비튜레이트(Barbiturates),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Z-Drug 등이다. 과거에는 바비튜레이트 계열을 많이 사용했다. 저용량에서는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s, BZDs) 계열과 마찬가지로 가바 수용체의 측면에 붙어 가바의 기능을 향상시키지만, 고용량이 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알코올과 같이 복용하면 치명적이다.

원칙적으로 수면제는 단기간 처방 후 중단하는 것이 옳지만 치매 환자는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가바 수용체에 작용하는 약들을 노인에게 사용하면 치매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사람에게는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치매 환자에게 이와 같은 수면제는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연구됐다.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와 알츠하이머병

대한수면학회에 따르면 사람의 수면과 각성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된다. 일주기 리듬을 결정하는 것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상교차핵이라는 부분으로 우리의 생체시계라 할 수 있다. 이 시계의 리듬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은 저녁에 잠이 들고 아침에 깨는데 일부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에 맞지 않는 일주기 리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저녁에 잠이 오지 않거나 아침에 일찍 깨기 어려운 증상 혹은 초저녁에 잠이 들어 새벽에 깨는 등의 증상으로 불면증이나 주간 졸음 증상을 호소한다. 이러한 증상을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라 부른다.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흔히 발생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일반적인 증상으로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와 조절의 어려움이 보고됐다. 일주기 조절과 관련된 뇌 구조에서 진행되는 신경 변화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일주기 리듬의 변화는 치매와 경미한 인지장애의 발생을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제의 이상반응

수면제는 수면을 유도하고 불면증의 치료에 사용되는 일종의 향정신성 약물이다. 수면 개선 효과와 불안 등의 진정제 역할을 하는 수면제는 기억장애, 인지장애와 같은 잠재적 이상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국내에서 사용 중인 수면제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비 벤조디아제핀(Non-BZDs) 계열, 항우울제, 멜라토닌(Melatonin) 약물 등이 있다.

우선 마약류로 분류되는 BZDs 계열의 약물인 플루니트라제팜(Flunitrazepam), 플루라제팜(Flurazepam), 디아제팜(Diazepam), 로라제팜(Lorazepam), 클로나제팜(Clonazepam), 알프라졸람(Alfrazolam), 브로마제팜(Bromazepam), 클로티아제팜(Clotiazepam)의 정신 신경계 이상반응은 치매의 전조 증상인 초조감, 전향성 기억상실, 지남력 상실, 기억장애, 불안, 우울증, 섬망, 정신병 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Non-BZDs 계열의 약물인 졸피뎀(Zolpidem), 에스조피클론(Eszopiclone)의 정신 신경계 이상반응은 불면증 악화, 선행성 건망증과 같은 인지장애, 기억상실증 및 기타 신경 정신 증상, 정서 불안감, 기억장애, 지각 이상, 비정상적 사고, 신경장애 등이 보고됐다.

항우울제인 트라조돈(Trazodone), 독세핀(Doxepine), 미르타자핀(Mirtazapine)의 정신 신경계 이상반응은 망상, 파킨슨, 불면, 지각장애, 지남력 장애, 초조, 주의력 장애, 혼돈 상태, 기억상실, 정신 기능 장애, 치매 등이 보고됐다.

멜라토닌(Melatonin) 계열 약물의 정신 신경계 이상반응은 초조, 우울, 방향 감각 상실, 기억장애, 주의력 장애, 하지 불안 증후군, 지각 이상 등이다.

해당 약물의 정신 신경계 이상반응에 대한 조사 결과, BZDs 계열, Non-BZDs 계열, 항우울제, 멜라토닌 계열 약물에서 기억상실 및 기억장애 등과 같은 치매의 전조 증상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수면제의 이상반응 / 식품의약품안전처, 수면제 복용에 따른 인지장애 유발의 성별 차이(아주대 글로벌제약임상대학원 김백규 석사 논문 2020)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는 수면제의 이상반응 / 식품의약품안전처, 수면제 복용에 따른 인지장애 유발의 성별 차이(아주대 글로벌제약임상대학원 김백규 석사 논문 2020)

 

수면제 장기 사용에 따른 인지장애의 영향

BZDs와 Non-BZDs 계열 수면제는 수면장애 환자 중에서도 특히 노인 환자의 수면장애와 불안 등의 치료에 처방되고 있다. 벤조디아제핀은 수면 유도 효과 외에도 항불안 효과, 근육 이완 작용, 기억력 장애와 같은 부작용이 같이 발생한다.

BZDs 계열 수면제와 Non-BZD 계열 수면제의 사용과 치매 발생 위험과 연관성을 제시한 연구에서 BZD를 사용한 사람은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치매 발생율이 78% 더 높게 나타났다. 타이완에서 수행된 졸피뎀(Zolpidem) 연구에서도 지속적인 졸피뎀 사용은 치매 위험 증가와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BZD를 장기간 복용한 사람은 높은 인지기능의 손상을 나타낸 반면, 수면제 복용 중단에 대한 영향성 평가 연구에서는 BZDs과 Non-BZDs의 중단과 수면의 질 개선과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였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치매가 없는 60세 이상 환자를 검사한 결과 정기적으로 BZDs 계열을 사용한 환자에게서 치매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더 높은 BZDs 노출에서는 치매 위험이 더욱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기 사용에서 치매 위험이 약간 큰 결과를 나타냈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발생하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국민건강보험 서비스에서 50대 환자 5%(총 268,170명)를 대상으로 수행한 후향적 코호트 연구에서 진정성 수면제에 노출된 환자가 노출되지 않은 환자들보다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더 큰 결과를 보였고, 진정성 수면제의 노출 기간에 따른 경향 분석에서도 장기 지속 노출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이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미국 시애틀의 통합의료전달시스템(Integrated Healthcare Delivery System)의 치매가 없는 65세 이상의 노인 3,434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전향적 코호트 연구에서 더 많은 BZDs 사용과 더 높은 인지장애 결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상반된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선행 연구 결과와 상반되게 나타난 이유는 다른 연구에 비해 BZDs 사용 범위가 낮게 설정됐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대만의 국민건강보험청구데이터(National Health Insurance Research Database)에서 수집된 65세 이상의 환자 6,922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후향적 코호트 연구에서 일 년 내 졸피뎀 누적 복용 환자는 졸피뎀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높은 치매 발생 위험을 나타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만의 국민건강보험청구데이터로부터 수집된 최초 치매 진단을 받은 65세 이상 환자 8,406명에게서 졸피뎀의 평균 누적 사용량을 분석하여 용량 효과를 확인했더니 졸피뎀 사용자는 알츠하이머를 제외한 대부분의 치매 유형에서 복용량 대비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다.

결론적으로 수면제 장기 복용이 길어질수록 치매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제 복용이 인지장애를 유발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많지만, 아직 발생기전의 인과관계와 남녀 차이에 따른 영향은 불명확하다. 향후 개별 수면제의 사용에 따른 인지장애 유발의 남녀 차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차별화된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는 “중등도 이상의 치매 환자를 진료할 때 가바 수용체 작용제의 사용기간이나 용량을 꼭 지켜야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암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때 부작용 등을 우려해 아주 엄격하게 규제했지만, 요즘은 좀 더 유연하게 사용한다.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현재의 통증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중등도 이상의 치매 환자가 필사적으로 잠을 원하는데 전체적인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따져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중증의 치매를 견디는 이들은 오늘 하루도 치열한 전쟁을 치르기 때문이다.

 

Source
곽용태.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디멘시아북스
김백규. 수면제 복용에 따른 인지장애 유발의 성별 차이. 아주대 글로벌제약임상약학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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