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1
[곽용태] 알츠하이머병,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부모님 이야기 1
  • DementiaNews
  • 승인 2017.04.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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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연세대 외래교수

최근 대한민국 사회가 전례 없이 노령화됨에 따라 나이와 연관된 질환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이면서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이 치매입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치매를 어떤 특정 병으로 생각할 정도로 치매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치매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정의, 그러면 왠지 공부하는 느낌이 나니까 그냥 치매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치매로 판별하려면, 첫번째로 일단 뇌가 발달이 끝난 후에 증상이 발생해야 하는데,  나이로 말하면 18-20세 이상이 경과해야 합니다.

똑 같은 인지기능 장애라고 하여도 발달기에 나타나는 증상은, 치매라고 하지 않고 정신박약, 정신지체와 같은 다른 용어를 씁니다.

두번째로, 치매라는 용어는 기억력 장애를 포함한 다른 인지기능장애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사용됩니다. 흔히 장년기를 넘어 가면 누구나 깜박거리는 증상이 있고 이 증상이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인지기능의 장애 없이 기억력만 나쁘면 치매라고 하지 않고, 건망증과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세번째로는, 이러한 복합적인 인지기능장애가 충분기간(적어도 3-6개월)  지속되면서, 일상 생활에 문제를 일으켜야 하고, 마지막으로 이 증상이 약물이나 대사성 질환i과 연관이 없을 때 치매라고 정의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면 눈치 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치매는 특정 병명이 아닙니다. 이런 특징을 만족시키는 증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간혹 환자나 보호자가 물어 봅니다. "선생님 치매를 조기 발견하면 완치가 되나요?"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열나는 것을 일찍 발견하면 완치가 될까요?  열나는 원인에 따라 다르겠지요." 즉 치매라는 증상을 일으키는 특정 질환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병에 따라서 예후ii가 결정이 되는 것이지요.

어떤 병은 아무리 조기 발견해도 치료가 안되고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병도 있지요. 그리스 신화에 보면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날 때부터 저주를 받았고, 그 저주를 알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저주를 풀 수 없었던 그런 것과 유사하지요.

의학에서 이런 성격을 가진 대표적인 질환이 헌팅톤씨 무도병iii입니다. 즉 진단은 100% 내릴 수 있지만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모르고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한 병이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새기 시작했지만 왜 사회가,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치매를 무서워 할까요? 이 부분이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치매의 원인에 따라서는 뇌종양, 뇌수종, 특정 영양소 결핍 등과 같이 수술이나 약물에 의해서 조기발견, 완치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완치가 불가능한, 그리고 서서히 혹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그리고 가장 흔한 치매 중 하나인 알츠하이머병 치매에 대한 것입니다. 

치매의 정의 중 가장 핵심적인 인지기능 장애는 기억력 장애 입니다. 이는 알츠하이머병의 기본적 증상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시골 집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많이들 살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본인들 방을 지키고 계시면서 무엇인가 열심히 구석에 감추고, 손자들 오면 얼굴 가끔 기억도 못하시다가, 어쩌다 알아보시면 숨겨둔 것 하나씩 꺼내 주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아들이 오면 손자와 혼동하기도 하시고, 며느리에게는 심술 궂게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밥 안준다고. 그러면 머리가 희끗희끗 해지기 시작한 며느리가 푸념하십니다.

우리 어머니는 방금 전에 밥상 차려 드렸는데 돌아서면 밥 달라고 하신다고. 즉 치매의 기본 증상인 기억력 장애는 모시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시지 않게 하고 때 맞추어서 식사 드리고 그때마다 잠깐 살강이 하면 됩니다. 옛날 절에서 나이가 한참 많으신 고승께서 동자승하고 밀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노인병원에 근무합니다. 따라서 많은 종류의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것 같이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 장애만 있는 환자는 거의 입원하지 않습니다. 즉 이런 증상은 가족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환자, 환자 보호자, 사회에 부담이 될까요? 그것은 치매와 동반되어서, 심지어는 인지기능 장애 전에 나타나는 다양한 행동심리적증상 (Behavioral Psychological Symptoms of Dementia; BPSD)입니다. 치매의 대표적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에서 이러한 행동심리적 증상이 80-90%, 즉 대부분 나타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iv.

그러면 어떤 증상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망상, 환각, 공격성, 우울, 불안, 비정상적 행복감, 무감동, 충동조절장애, 화, 반복적인 행동, 수면장애, 식습관의 변화 등등 정신과 환자에서 보이는 모든 증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때로는 특정 증상만, 또 어떤 때는 여러가지 증상이 동시에, 또 어떤 경우에는 한가지 증상만 쭉 나타나기도 하고, 또 많은 경우에는 시간적으로 증상 변화가 오는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이기는 합니다.

그냥 얌전하게 밥만 달라고 하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경찰에 전화하십니다. 도둑이 들어와서 통장을 훔쳐갔다, 심지어는 그 도둑이 아들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들이 진짜로는 아들이 아니고 아들 얼굴 모양의 가면을 쓴 다른 사람 이라고도 합니다.

흥분하시면 폭력도 쓰십니다. 밤에는 잠을 안자고 돌아다니시고, 때로는 귀신이 보인다고도 하고, 이미 한 참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옆에 있다고 하며 다정하게 대화도 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음직이지 않으려 하고 죽고 싶다고도 하고..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설득합니다. 통장은 아버님 책상에 잘 있다고, 돌아가신 할머니 사진 보여주면서 할머니는 살아 계시지 않는다고, 밤에는 주무시라고 그래도 안되면 수면제도 처방받고, 하지만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 완강히 버티시고 없던 증상마저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부모 자식 간에 넘지 못할 선을 넘기도 하고, 자식이나 배우자로부터 아버지와 더 이상 같이 못 있겠다고 최후의 통첩을 받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그러다 몇몇 분은 의사에게 가서 전문적인 면담을 받습니다. 그 분들 중 몇 분은 저와 만나게 됩니다.

제가 면담했던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없지만, 지난한 간병과정 중에 어느 정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병은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병이구나' 하는 것을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환자와 가족의 평화, 그 평화는 사실 이 병을, 이 증상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특히 환자나 환자 보호자들을 무섭게 극단으로 몰고 가는 치매의 행동심리 증상은 매우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연구가 잘 되지 않은 분야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의사들마저 이러한 증상을 치매라는 특정 병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잘 걸리는 정신병 증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환자도, 환자 보호자도, 심지어는 의사 자신도 미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다음에는 이 증상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i) 대사성 질환: 비만이나 운동부족, 과잉영양 등 생활습관이 원인이 되는 병, 한경경제용어사전(네이버 지식백과)
ii) 예후: 병세의 진행 및 회복에 관한 예측, 사회복지학 사전(네이버 지식백과)
iii) 헌팅톤씨 무도병: 유전병으로서 증상이 환각, 심각한 정서변화, 치매, 무도병 동작(경직되고 변덕스러우며 무의식적인 몸짓)인 병을 말함, 사회복지학 사전(네이버 지식백과)
iv) Aalten P, de Vugt ME, Lousberg R, Korten E, Jaspers N, Senden B, et al. Behavioral problems in dementia: a factor analysis of the neuropsychiatric inventory. Dement Geriatr Cogn Disord 2003; 15: 9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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