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한] 하버드 의과대학 치매 교육 프로그램 참석기
[김도한] 하버드 의과대학 치매 교육 프로그램 참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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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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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Dementia: A Comprehensive Update 프로그램

김도한
하버드신경과의원 부원장, 신경과전문의

Dementia: A Comprehensive Update는 하버드 의과대학 주최로 매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치매 교육 프로그램이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 맥클레인 병원(McLean Hospital), 브리검 여성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 및 캘리포니아 퍼시픽 의료센터(California Pacific Medical Center)에서 인지 및 행동 장애 환자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하버드 의과대학 신경학부 교수진이 주최를 하며 금년에는 6월 7일부터 6월 10일까지 미국 보스턴에 있는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 호텔(Fairmont Copley Plaza Hotel)에서 4일간 진행되었다.


올해로 벌써 21년째를 맞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매년 치매 치료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권위 있는 교수진들이 강사로 참석하며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서 매년 300~400명의 인원이 강의를 들으러 온다. 이 프로그램은 신경과 의사, 정신과 의사, 내과 의사, 일차진료 의사, 노인의학 의사, 심리학자, 치매 전문 간호사, 사회복지사, 직업/물리/언어치료사, 약사, 연구 과학자, 그 외 치매 관련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치매라는 질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치매에 대한 실제적이고 다각적인 치료 방법들을 익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금년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들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인지 장애와 관련된 뇌의 신경해부학, 치매 병리학, 치매의 역학과 사회적 비용, 치매와 관련된 생체표지자(신경계 영상, 뇌척수액, 유전자), 신경심리검사, 알츠하이머병의 예방에 대한 최신 연구들, 특정 치매 질환들(알츠하이머 병, 혈관성 인지장애/치매, 루이소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의 감별 진단과 치료에 대한 최신 지견과 연구들, 치매 환자들의 행동장애에 대한 비약물적치료/약물치료, 치매와 섬망, 만성 외상성 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과 관련된 치매, 흔하지 않은 치매 질환들, 치매 환자의 간병인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리, 치매 환자 및 가족들과 관련된 법률적, 윤리적 문제, 치매 환자에 대한 완화요법과 호스피스 치료 등이다. 정확한 강의 내용과 제목은 하기 웹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cmeregistration.hms.harvard.edu/events/dementia-a-comprehensive-update/agenda-e92c2d9e262c45aab5a47a6467b9d7de.aspx

프로그램은 매년 5월말에서 6월초에 열리며 정확한 일정은 보통 프로그램 시작 3-4개월 전에 결정된다. 그러므로 프로그램에 참석하길 원한다면 그 해 2월에서 3월 사이에 하버드 의과대학 교육센터 홈페이지(https://cmecatalog.hms.harvard.edu)에 접속하여 일정을 확인한 후 온라인 등록을 하면 된다. 금년 프로그램 등록 비용은 전문의는 815달러, 전공의/전임의와 그 밖의 의료 관련 종사자는 475달러로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프로그램의 알찬 구성과 강의의 완성도를 감안하면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012년도에 신경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후 현재 신경과 의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하고 있다. 여러 가지 신경계 질환들 중 하나인 치매는 신경과 전공의 시절에는 자세히 배우기 힘든 질환이다. 수련을 받는 대학병원들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나라의 신경과 전공의 교육 시스템은 대부분 뇌졸중과 같은 급성 중증 질환을 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는 신경과 전공의들은 외래 환자들 보다는 주로 응급실로 오는 중증 환자들과 병동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을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의 시절에는 치매 환자들과 같이 주로 외래 진료를 받는 환자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신경과 전문의를 따고 실제 임상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환자들 중에 하나가 치매 환자들이다. 신경과 전문의 시험을 막 통과한 상태에서 치매 환자들을 정확하고 심도 있게 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 치료에 관심이 있는 신경과 의사들은 전문의 자격 취득 후에도 대학병원 신경과의 치매 파트에 남아 전임의로 근무하면서 더 배우기도 하고 따로 학회 등을 통하여 공부를 더 하게 된다. 필자는 전문의 취득 후 전임의는 하지 않았으며 치매에 대해서는 학회와 서적을 통하여 공부하였다.

하지만 치매와 관련하여 좀 더 체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식들에 대한 갈망이 항상 있어왔다. 그러던 중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의원 원장님의 소개로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매년 개최하는 치매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장님께서는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 맥클레인 병원에서 신경과 임상전임의로 근무하신 적이 있는데 당시에 상기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고 이것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꼭 소개시켜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게다가 프로그램 등록비와 부대비용도 지원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결국 원장님의 추천과 지원으로 프로그램 참석을 위해 미국 보스턴으로 떠나게 되었다.


생전 처음 미국으로 떠나는 길은 험난했다. 한국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가는 직항기가 없기 때문에 경유를 해야 했는데 당시 필자의 스케줄에 맞는 경유지는 홍콩 밖에 없었다. 서쪽으로 홍콩을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가는 비효율적인 경로 덕분에 경유지 대기시간 4시간을 포함하여 보스턴에 도착하는데 총 24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생전 처음 가보는 보스턴이라는 도시에서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할 것을 생각하니 설렘에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프로그램 시작 전에 이틀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휴식도 취하고 보스턴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로 옛날 건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새로운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항구도 있어 해산물이 유명한데 랍스터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 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 오래된 건물들이 인상 깊다 >

이틀간의 휴식 후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강의가 열리는 곳은 보스턴 시내의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세워진 지 100년이 넘은 호텔로 고풍스러운 외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후 강의가 이어졌다.

< 강의가 진행된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 호텔, 바로 옆의 현대식 건물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

강의를 담당한 강사들은 치매 연구와 치료에 있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교수들이었다. 치매 연구의 여러 분야에서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 분야에 대한 강의를 맡는 식이었다. 하지만 각각의 강의는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았으며 강사들은 기본 개념부터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여러 논문을 짜깁기 하거나 요약하는 식의 강의가 아닌 실제 자신의 연구와 치료를 통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강의였기 때문에 더 알아듣기 쉬웠던 것 같다. 기본 개념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진단, 치료에 도움되는 내용들과 최신 연구 결과, 향후 연구 계획과 전망 등에 대해서도 물 흐르듯이 설명되었다. 각각의 강의 전과 후에는 강의 내용과 관련된 퀴즈를 풀 수 있도록 해서 중요한 내용들을 한 번 더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강의를 통해 이전에 교과서에서만 보던 딱딱한 지식들이 실제로 환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었고 앞으로 치매와 관련된 연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미래의 연구들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 강의가 진행된 페어몬트 코플리 플라자 호텔 내부 >

프로그램 첫째 날 오전에는 인지기능, 기억력과 관련된 뇌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설명, 치매와 관련된 병리 소견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이를 통하여 치매와 관련된 뇌의 구조와 이상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잡혔으며 그 이후에 이어진 치매 관련 생체표지자, 증상 발현 전 단계의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강의를 통하여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치매 진단과 치료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첫째 날 오후부터 둘째 날 오후까지는 신경심리검사, 알츠하이머 병, 전두측두엽 치매, 혈관성 인지장애/치매, 루이소체 치매, 그 밖에 드문 치매 질환들에 대해서 해당 파트의 유명한 교수들이 나와 강의를 하였다. 이를 통하여 여러 종류의 치매 질환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각각의 질환들을 감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특히 실제로는 아주 많지만 우리 나라에서 정확하게 진단되지 못하고 있는 루이소체 치매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셋째 날 강의는 치매 환자들에서 동반될 수 있는 행동장애에 대한 비약물적치료/약물치료, 치매 환자의 간병인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리, 치매와 섬망, 만성 외상성 뇌병증과 관련된 치매 등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셋째 날 강의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행동장애에 대한 비약물적치료 부분과 치매 환자의 간병인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런 부분들은 아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의료 환경에서 전혀 신경 쓰이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예를 들자면 치매 환자가 난폭한 행동이나 곤란한 행동을 하여 보호자들이 힘들어 할 때 보통의 우리 나라 의사들은 그 환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환자의 주변 환경이 어떠한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안 좋은 행동을 강제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신경안정제와 같은 약물들을 처방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환자의 상태를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으며 결국 사회경제적 비용을 더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강의의 내용은 그런 안 좋은 행동들을 조절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약물 처방을 하기 전에 환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찾아보고 그 원인을 교정해 준다면 약물 처방 없이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이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적절하게 보살펴주지 않으면 결국 보호자 자신은 물론 치매 환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강의에서는 이에 대한 중요성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들의 시설에서 이것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도 하였으며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향후 계획도 발표하였다. 물론 이에 대한 개념들은 우리 나라 치매 관련 학회에서도 언급은 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에 대한 대책이나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그런 것들을 느끼면서 미국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이런 현실들이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날의 강의는 치매 환자 및 가족들과 관련된 법률적, 윤리적 문제, 치매 환자에 대한 완화요법과 호스피스 치료 등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일정상 아쉽게도 참석을 하지 못하였다.

보스턴으로 가는 일정도 힘들었고 단기간에 시차 적응하면서 강의를 듣는 것도 힘들었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왜 원장님께서 자비로 지원을 해주시면서까지 이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시고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는지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치매라는 질환에 대한 기본기가 튼튼해진 것은 물론이고 최신 지견들에 대한 정보도 얻었으며, 선진국의 치매 정책과 미래에 대비한 계획들을 보면서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미국은 우리 나라보다 치매 치료에 대한 환경이 훨씬 좋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노령화에 의한 치매 환자의 증가에 열심히 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나라는 미국보다 더 빨리 인구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치매 인구 또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치매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적절하게 치료할 수 있는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치매를 볼 수 있는 의사의 수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치매 환자를 적절하게 돌볼 수 있도록 제대로 교육 받은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도 거의 없다. 이는 장차 우리 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매년 열리는 Dementia: A Comprehensive Update 프로그램은 신경과나 정신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치매 치료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의사들에게 여러 면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치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는 치매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고, 이미 치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치매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지식과 미래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제공해줄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보스턴에서 최고의 강의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나도 누군가에게 꼭 소개시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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