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치매의 행동심리증상과 억간산
[강형원] 치매의 행동심리증상과 억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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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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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산본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21세기 보건의료의 중요한 화두는 치매이다. 우리나라는 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라 퇴행성 신경계 질환인 치매의 유병율 또한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73만4천명에 이르며 2025년경에는 100만 명, 2043년에는 2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이번 정보의 대표적인 공약으로 ‘치매 국가책임제’가 언급되고 있으며, 치매 관련 R&D와 치매안심센터에 대한 예산이 크게 증가되었다. 이는 개인에게만 맡겨져 있던 치매 치료와 간병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나눠지겠다는 강한 의지로 볼 수 있다.

치매환자라고 하면 흔히 기억력이 없어지고, 집을 못 찾아오는 인지장애 증상을 떠올리기 쉽다. 기억력, 주의집중, 지남력, 시공간지각, 계산, 언어능력, 판단력, 집행기능 등을 포함한 인지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치매의 핵심증상이자 진단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지기능장애 외에 폭언(욕설), 폭력 등의 공격성, 고함, 배회, 수집벽, 성적일탈, 사회적 부적절한 행동 등의 행동증상과 불안, 우울, 초조, 무감동, 환각, 망상 등의 심리증상이 주변증상으로 동반되기도 한다. 환자 개인별로 어떤 행동심리증상이 동반되는가와 증상의 심각도에 차이가 있지만  치매 전 과정 동안 80~90%에서 행동심리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심리증상은 환자의 일상생활능력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 및 보호자의 부담을 증가시켜, 요양원 같은 시설에 입소를 촉진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치매의 원인자체를 없애고 인지기능을 회복시키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나와있지 않고, 치매 인지장애증상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데 현재 승인된 약물(도네페질, 갈라타민, 리바스티그민, 메만틴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해서는 국내 식약처에서도 승인된 약물이 없고, 미국 FDA에서도 승인된 약물이 아직까지 없어,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개입시 비약물적 요법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회상요법, 음악, 운동, 이완, 원예요법 등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어떠한 비약물적 요법이 효과적인지 검증된 경우가 적고, 적용하는데 시간, 경제적인 어려움 등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현재 임상에서는 항정신병약물을 처방하는 경우가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항정신병약물, 항불안제와 같은 정신과적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효과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내성 및 금단 증상에 의한 장기간 사용이 어렵고, 약물 중단 시 증상 재발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졸음 인지기능 저하와 같은 치매 치료에 반대되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치매환자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비약물요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국가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약물요법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이 시급하다.

이러한 면에서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치료로 한약처방인 억간산(抑肝散)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억간산(抑肝散)은 조구등(釣鉤藤), 백출(白朮), 백복령(白茯苓), 당귀(當歸), 천궁(川芎), 시호(柴胡), 감초(甘草)등 7가지 약재로 구성된 처방으로, 전통 한의학 이론상 억간산이 청열진경의 효능이 있다고 여겨져, 임상장면에서 뇌전증, 불면, 불안장애 등의 다양한 신경증적 정신과적 장애, 소아의 야뇨증 치료에 주로 응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파킨슨병, 치매와 같은 퇴행성 신경계질환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치매의 불안, 초조와 같은 행동심리증상에 효과적이라는 점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부터는 다양한 실험연구와 임상연구가 진행되었다. 억간산의 작용기전은 클루타민산(Glutamic acid) 신경계, 세로토닌(serotonin) 신경계의 작용에 관한 보고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억간산에 의한 공격성, 운동활성에 미치는 여향에 대한 검토보고에서는 Aβ 단백질을 뇌실내로 주입한 마우스에서 공격성이 억제되지만 운동활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으며, 그 외에 항불안작용, 항산화작용 및 항염증작용에 의한 뇌보호 효과도 최근에 보고되었다. 무엇보다 억간산의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무작위대조군임상시험(RCT)의 메타분석 결과 억간산 복용군에서 행동심리증상이 유의하게 감소하였고, 특히 망상, 환각, 초조/공격성에서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척도 또한 억간산 복용군에서 유의하게 호전되어, 효과성을 입증하였고 추체외로증상과 같은 중대한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Matsunaga, S. et al, 2016).

이러한 근거를 기반으로, 일본신경과학회의 ‘치매질환치료 가이드라인 2010'에서 억간산이 권고항목에 추가되었다(Okamoto H et al, 2014). 뿐만 아니라, 2015년 일본노인학회 노인의 안전한 약물치료를 위한 가이드라인(2015)에도 알츠하이머병, 루이소 체병, 혈관성치매에 수반된 행동심리증상을 개선하며, 동시에 일상생활기능, 가족의 개호부담감을 개선시킨다고 하였다. 또한 2015년 주치의를 위한 BPSD(행동심리증상)에 대응하는 향정신병약 사용 가이드라인 2판(후생노동과학특별연구사업)에서 BPSD 치료 알고리즘에서는 환각, 망상, 조조, 공격성에 대해서는 억간산을 권고하고 있다.  

최근 일본 한의학지인 한방의학(Science of Kampo Medicine)에서는 “BPSD와 한방약”이라는 주제로 특별호를 발간하였다. 특별호 안에는 루이소체 치매(DLB)를 처음 보고하고 일본 치매치료의 선도자로 알려진 코사카 켄지 선생을 인터뷰한 ‘BPSD와 억간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게재되었다. 이렇듯 치매환자의 BPSD에는 일본 의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몇 년전 필자 일행이 일본 국립정신병원을 견학했을 때 일본에서는 도네페질(donepezil)보다 억간산을 더 선호한다는 임상현장의 고백에 한국 실정과 너무 달라 놀란 적이 있다. 필자의 임상에서도 환시, 망상의 중증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의 의과 한의과 협진 중에 도네페질(donepezil)의 부작용으로 대체된 억간산 투약은 불안, 초조 등의 이상행동증상을 감소시켜 집에서 간병 가능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기존 치매 약물과 병행 투여해서도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어 환자의 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높았고 보호자의 만족도도 높았다.

일본에서 억간산에 대한 연구가 많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령화를 빨리 경험했고, 치매환자에 대한 관리와 예방 그리고 치료적인 면에서 앞서서 시행한 노력의 일환이다. 억간산은 이미 한의학 전통의학 문헌에서 그리고 오랜 임상경험으로 그 중요성이 정립되어왔고, 오늘날에는 치매의 행동심리증상에 대한 효과가 검증되고 있다. 따라서 만성적인 경과를 밟을 수밖에 없는 치매환자에게 부작용이 적고 가족부담에 큰 문제로 제기되는 행동심리증상에 대하여 억간산의 임상적 활용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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