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1,000여 명 추적조사...“사기 취약성이 치매 조기 신호일 수도”
노인이 전화 사기나 금융 사기에 쉽게 속는다면 알츠하이머병 치매가 훨씬 더 일찍 발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사기 범죄 피해액은 약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5,0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70세 이상 노년층에서 1인당 평균 사기 피해액은 20대보다 2~3배 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미국 러시 알츠하이머병 연구소(Rush Alzheimer’s Disease Center) 연구팀은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노인 1,092명을 대상으로 최대 11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사기 취약성이 높은 그룹이 낮은 그룹보다 평균 7년 일찍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설문을 통해 참가자들의 사기 취약성을 평가하고, 이후 매년 인지 기능 검사를 포함한 임상 평가를 수행했다. 참가자들은 연구 시작 시점에서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사기 취약성 평가는 미국 퇴직자 협회(AARP)와 미국 금융산업규제당국(FINRA) 등 사기 예방 기관의 사기 피해 위험 행동을 반영한 5가지 문항으로 구성됐다.
▲전화가 오면 발신자를 모를 경우에도 받는다.
▲모르는 사람과의 통화에서 쉽게 전화를 끊지 않는다.
▲텔레마케팅 전화를 끝까지 듣는다.
▲65세 이상 노인이 사기의 주요 표적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너무 좋은 제안은 대개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연구에 따르면, 사기 취약성이 높은 상위 10% 그룹(평균 3.6점)은 낮은 10% 그룹(평균 1.6점)보다 평균 7년 일찍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연구 기간 동안 188명(17%)이 알츠하이머병 치매로 진단받았으며, 이 중 사기 취약성이 높은 그룹의 평균 발병 연령은 90.9세인 반면 낮은 그룹에서는 98.2세로 조사됐다. 중간 정도의 취약성을 보인 그룹(평균 2.8점)은 93.7세에 발병했다.
일반적으로 사기 취약성이 높은 노인은 인지 저하 위험이 크다. 연구팀은 이러한 연관성이 단순한 인지 저하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참가자들의 초기 인지 점수(global cognition score)를 보정한 후에도 추가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인지 기능을 고려하더라도 사기 취약성이 높은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치매 발병 속도가 여전히 더 빠른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 인지 기능이 정상인 그룹(경도인지장애나 치매가 없는 참가자 770명)만을 따로 분석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사기 취약성과 치매 발병 시기의 연관성은 인지 기능, 성별, 교육 수준을 통제한 후에도 유의하게 유지됐다.
연구팀은 “사기 취약성 평가는 단순한 인지 기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만적 의도를 감지하는 능력, 비현실적인 주장을 인식하는 능력, 감정 조절과 강한 압박 속에서도 유혹을 거부하는 능력 등 복잡한 사회적 인지 기술이 필요하다”며 “치매 발병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기 취약성이 인지 저하보다 앞서 나타나는 행동적 변화일 수 있다”며 “향후 다양한 인종과 사회적 배경을 고려한 추가 연구를 진행해 사기 취약성과 치매의 연관성을 더 정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연구는 주로 백인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연구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500명 이상의 흑인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 연구를 수행 중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5일(현지 시간) 미국 알츠하이머협회 학술지인 ‘알츠하이머와 치매(Alzheimer’s & Dementia)’ 온라인판에 실렸다.
Source
Boyle PA, Wang T, Mottola G, et al. Scam susceptibility is associated with a markedly accelerated onset of Alzheimer’s disease dementia. Alzheimer’s Dement. 2025;21:e14544. https://doi.org/10.1002/alz.14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