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 대포폰 사기부터 건강보조제·보험·기부금 편취까지…
농촌·독거노인 돌봄 인프라 취약성이 범죄 표적 만들어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고령의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대포폰 유통조직의 총책 및 조직원 46명을 검거했다고 11일 밝혔다.  

강원경찰청에 따르면, 고령의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잠깐 시간 내주면 현금을 주겠다며 접근해 적게는 60만 원에서 많게는 170만 원을 주고 유심칩을 추가로 개통한 이들은 유심칩을 이용해 고가의 휴대전화를 구매해 요금을 명의를 제공한 노인들에게 청구되도록 했다. 휴대전화는 온라인 중고거래 장터 등을 이용해 되팔아 범죄 수익을 거뒀다.

검거 과정에서 경찰은 외부인이 고령의 노인들에게 일정 댓가를 주고 휴대폰을 개통한다는 제보를 바탕으로 약 1년간 30여 개의 범행 관련 계좌를 분석하고, 경북과 부산 지역에서 추적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직 규모를 파악하고 약 1억 원 상당의 범죄 수익금을 확인했다.

범행 과정에서 피해 노인들은 본인 명의로 발생한 통신 요금과 소액결제 비용을 떠안았고, 일부는 채무 독촉까지 받았다. 경찰은 이들 중 3명을 구속하고, 나머지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령층이었다. 특히 홀로 사는 사례가 많아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도움을 요청할 대상이 마땅치 않았다. 피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명의가 범죄에 이용된 뒤였다.

 

노인 대상으로 현금을 주겠다며 유심 개통해 사기를 벌인 일당이 검거됐다. / 생성형 AI
노인 대상으로 현금을 주겠다며 유심 개통해 사기를 벌인 일당이 검거됐다. / 생성형 AI

 

농촌 노인, 돌봄 공백 속 범죄 표적 되기 쉬워

특히 농촌 지역 노인은 범죄 표적이 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치매 역학조사·실태조사’에 의하면, 농촌 치매 유병률은 9.4%로 도시(5.5%)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다. 그러나 돌봄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 결과, 도시의 치매안심센터가 평균 43㎢를 담당하는 데 반해 농촌은 566㎢로 13.2배 넓은 지역을 소수 인력이 커버해야 한다. 여기에 이동 지원 서비스도 제한적이어서 병원이나 관공서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범이 접근하기 좋은 조건을 만든다. 집 앞까지 찾아온 낯선 사람에게 사은품이나 무료 점검을 제안받아도 이를 검증하거나 신고할 수 있는 구조가 취약하다. 결과적으로 돌봄 인프라의 빈틈이 노인 범죄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승부리는 노인 대상 사기 유형과 예방책

최근 경찰과 소비자원에 접수된 노인 대상 사기는 형태가 다양하다. 우선 통신·유심 사기는 대포폰이나 추가 유심칩을 개통하게 한 뒤 이를 불법 거래에 이용하는 수법이다. 피해자 명의로 소액결제나 대출이 실행돼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며, 나중에 채무 독촉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조제·의료기기 판매 사기도 빈번하다. ‘무료 체험’을 미끼로 고가 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제품의 효능을 과장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지난 3월에는 건강기능식품·의료기기 판매에서 시작해 금융·부동산 투자 사기로까지 확대한 사례가 보고됐다.

보험·금융 상품 사기 역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거나 안정적인 저축성 보험을 권유한 뒤 잠적하는 것이다. 올해 3월 정부나 복지기관을 사칭해 “1억 원을 맡기면 매월 18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속여 돈을 가로챈 유사 수신 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밖에도 기부금·후원 사기가 있다. 종교단체나 복지단체를 사칭해 현금을 요구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위조해 신뢰를 속이는 수법이다.

특히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계약 조건과 결제 내역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범행들은 모두 노인의 정보 취약성과 사회적 고립을 악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돌봄사각지대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니 유의해야 한다 / 생성형 AI
돌봄사각지대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니 유의해야 한다 / 생성형 AI

 

예방과 대응, 촘촘한 ‘연결망’이 해법

전문가들은 노인 대상 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돌봄과 연결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촌 지역에는 치매안심센터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교통 연계 서비스와 함께 사기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이웃과 지자체, 경찰이 상시 연락망을 유지하는 ‘안부 네트워크’를 구축해 노인이 낯선 사람의 제안을 받았을 때 즉시 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일부 지자체와 기관은 직접 현장을 찾아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광주시 북구는 2025년 8월부터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을 순회하며 ‘시니어 금융 사기 예방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과 협력해 금융 사기 사례, 예방 수칙, 노후 금융 지식 등을 전달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서울 성북구의 성북시니어클럽은 어르신 일자리 공동체 참여자를 대상으로 폭염 대비 안전 교육과 함께 금융 사기 예방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7월부터 도내 노인 기관(복지관·경로당 등)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전문 강사 강의와 연극 공연을 병행해 실제 사기 사례와 대처 방법을 쉽게 전달한다.

통신업계도 참여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용산구와 협업해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보이스피싱 등 전기통신 금융사기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연말까지 총 10회로 확대할 예정이다. 교육에는 골든벨 형식의 퀴즈 이벤트를 넣어 참여도를 높였다.

이 같은 시도는 노인들이 실제 생활 현장에서 사기 수법과 대처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돕고, 범죄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이번 유심 사기 사건은 돌봄의 빈틈이 고령자를 어떻게 손쉽게 표적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경고다. 경제적 취약성과 정보 격차, 물리적 거리감은 노인을 고립시키고, 그 틈을 범죄가 파고든다. 누군가의 눈과 손길이 닿는다면, ‘현금 드릴게요’라는 말에 속아 홀로 서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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