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종 소장, “고령자의 자산은 멈추고, 사기는 증가한다…‘금융제론톨로지’로 대응해야”

12일 열린 "초고령사회에서의 치매 대응 방안" 심포지엄에서 금융제론톨로지 연구소 이형종 소장은 ‘치매머니 이슈와 시니어 금융소비자 보호대책’을 주제를 발표했다.

이형종 소장은 초고령사회에서 고령자의 자산 보호와 금융 접근권 보장을 위한 정책·서비스 설계에 앞장서 온 국내 대표 시니어 금융 전문가다. ‘금융노년학(금융제론톨로지 Gerontological Finance)’ 개념을 소개하고 고령자의 인지 저하로 인한 자산 동결 문제, 가족신탁과 사전대리권 설정 등의 제도적 대안을 제시해 주목받아 왔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시니어 마케팅 마스터》 등의 저서를 통해 고령사회의 금융 리스크에 경고음을 울려 온 이 소장은 치매로 동결되는 자산에 대해 보호를 넘어 ‘의사결정 지원’ 중심의 금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함을 강조해 왔다.

이 소장은 “고령자의 자산이 동결되고, 판단력이 저하되며, 금융사기에 노출되는 삼중고 속에서 한국 사회는 제도적 대응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치매머니 이슈와 시니어 금융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는 이형종 금융제론톨로지 연구소장 / 황교진 기자
'치매머니 이슈와 시니어 금융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는 이형종 금융제론톨로지 연구소장 / 황교진 기자

 

"치매가 오면 자산도 멈춘다"…인지보호자산(치매머니)의 실제

이 소장은 치매로 인해 본인의 계좌조차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설명하며 일본 사례를 근거로 인지기능 저하가 금융 거래 중지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짚었다.

“가족이 대신 처리하고 싶어도 위임장이 없으면 금융기관은 계좌 접근을 거부한다. 결국 병원비, 요양비, 간병비 등 삶의 필수 비용을 사용할 수 없는 ‘자산 동결 상태’가 발생한다”며, 일본에서는 치매인이 보유한 자산이 2020년 기준 255조 엔에 달했으며, 2040년에는 349조 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 막대한 자산이 점차 유동성을 잃고 ‘고립된 돈’이 된다는 점이다. 이 소장은 이를 초고령사회의 심각한 경제·복지 위협 요소로 지목했다.

 

고령자의 금융사고, 예방 가능한가?

이 소장은 “노화는 단지 몸의 문제만이 아니다. 판단력도 노화된다”고 밝히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이중과정 이론(Dual Process Theory)’을 인용해 노화가 의사결정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인간은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 1’과 논리적·숙고적인 ‘시스템 2’를 통해 판단하는데, 고령자일수록 시스템 2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피해자의 65%는 50대 이상이며, 2022년 기준 60대 이상 시니어가 입은 피해액은 704억 원에 달했다. 이 박사는 “본인은 ‘나는 괜찮다’고 믿지만, 그 자체가 자기 과신의 증거”라고 지적하며, 고령자의 금융 판단력 저하를 전제로 한 사전 보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중과정 이론, 인간의 의사결정 시스템: 고령자일수록 시스템 2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 이형종 소장 발표 자료
이중과정 이론, 인간의 의사결정 시스템: 고령자일수록 시스템 2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 이형종 소장 발표 자료

 

제도적 공백, ‘가족신탁’으로 미리 위임

이 소장은 현재의 성년후견제도가 절차의 복잡성과 접근성 부족으로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그는 “가족신탁이나 사전대리권 설정 제도화를 통해 건강할 때 자산의 운용 권한을 미리 위임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신탁은 부모가 자녀 등 신뢰할 수 있는 수탁자에게 재산을 맡기고, 치매 발병 이후에도 재산이 유연하게 활용되도록 하는 민사신탁의 일종이다. 일본에서는 유언신탁, 유언대용신탁, 사후사무위임형 신탁 등 다양한 유형이 금융권과 연계돼 활발히 운용되고 있다.

그는 특히 “고령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산 관리 능력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며, 금융기관은 인지기능 감퇴를 전제로 한 ‘거래 간소화’와 ‘위험 감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00세 시대의 자산 관리 방향 / 일본 금융청(2019), 이형종 소장 발표 자료
100세 시대의 자산 관리 방향 / 일본 금융청(2019), 이형종 소장 발표 자료

 

왜 ‘금융제론톨로지’인가?

이 소장은 금융기관과 정책당국이 금융제론톨로지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노년학, 인지과학, 금융을 통합한 융합적 접근법으로, 고령자의 판단력 변화와 경제 행동을 기반으로 금융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6년 게이오대학이 금융노년학연구센터를 설립했고, 2019년에는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고령자 대응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국 역시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 관리를 중심으로 금융제론톨로지 기반의 상품을 확산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고령층의 급증과 자산 관리 환경의 변화가 있다.

첫째, 7,5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가 2030년까지 65세 이상 고령층에 진입함에 따라 미국 사회 전반에 고령자 중심의 금융 대응이 필요해졌다. 둘째, 이 세대는 전체 보유 자산 중 절반 이상을 뮤추얼 펀드(Mutual Fund)로 운용하고 있어 고위험 자산에 대한 관리 수요가 크다. 셋째, 확정급여형(DB) 연금에서 확정기여형(DC) 연금으로의 전환 후 은퇴한 뒤에도 개인이 직접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시니어의 자산 관리 역량과 지원 시스템이 절실해졌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은퇴 이후까지 평생에 걸친 자산 관리 필요성이 대두됐으며,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금융상품과 서비스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고령자 금융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접근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보여준다.

 

'치매머니 이슈와 시니어 금융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는 이형종 금융제론톨로지 연구소장 / 디멘시아북스
'치매머니 이슈와 시니어 금융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는 이형종 금융제론톨로지 연구소장 / 디멘시아북스

 

돈이 묶이면 삶도 멈춘다

발표 끝에 이 소장은 “우리는 지금 돈이 묶이고 삶이 멈추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산은 숫자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생존을 유지하는 도구다. 금융은 보호보다 지원, 제한보다 설계로 가야 한다”며, 초고령사회에서의 금융위기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소장은 국가와 금융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해 ‘인지기능 저하로 인한 자산 동결 문제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초고령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치매인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고령에 이르면 겪을 수 있는 ‘미래의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령자의 자산이 멈춘다는 것은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동성과 존엄이 멈추는 일이다. 이 소장의 발표는 고령자 스스로 자산의 주체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돕는 금융 시스템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제안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초고령사회의 금융은 ‘보호’가 아닌 ‘설계’와 ‘동행’이어야 함을 환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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