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70세 이상 1만여 명 6년 추적 연구…수동적 ‘듣기’만으로도 인지저하 보호효과 확인
음악을 듣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치매 발생 위험이 낮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음악 감상이라는 단순한 행위가 뇌와 정서 기능을 자극하며 인지저하 속도를 늦춘다는 효과가 장기 코호트에서 확인된 것이다.
이번 연구는 치매 예방 전략이 반드시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고난도 활동만으로 이뤄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상 속의 작은 감각 자극이 뇌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생활습관이 치매 예방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호주 모나쉬대학교(Monash University)와 멜버른대학교 연구팀은 70세 이상 성인 10,893명을 평균 6.3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연구팀은 음악 감상과 악기 연주 등 음악 관련 여가 활동 빈도를 조사해, 이후 치매 발생 여부와 CIND(Cognitive Impairment, No Dementia: 치매는 아니지만 표준화된 인지검사에서 정상보다 낮은 점수를 보이는 초기 인지저하 상태) 전환을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 노년정신의학 분야 권위지 <International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 10월 14일 자에 게재됐다.
항상 음악을 듣는 노인, 치매 위험 39% 낮아져
연구팀은 음악 감상 빈도를 ▲전혀/드물게 ▲가끔 ▲자주 ▲항상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항상 음악을 듣는다’고 응답한 그룹은 치매 발생 위험이 39% 낮았다(HR=0.61, 95% CI 0.45–0.82, p=0.001).
추가로 다음과 같은 보호 효과도 확인됐다.
* 악기 연주를 자주 또는 항상 하는 노인 → 치매 위험 35% 감소
* 음악 감상과 악기 연주를 모두 즐기는 경우 → 치매 위험 33% 감소, CIND 위험 22% 감소
수치상으로는 '음악만 항상 듣는 것(39%)'이 '악기 연주와 감상 둘 다 하는 것(33%)'보다 감소 폭이 커 보일 수 있다. 복합활동 그룹은 표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건강·활동성 특성이 달라, 통계적으로 음악 감상만 하는 그룹보다 보호 효과가 낮게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통계적 오차 범위를 고려할 때 두 활동 모두 치매 예방에 매우 효과적인 보호 요인임이 확실하며, 특히 복합 활동은 CIND 예방에 뚜렷한 효과(22% 감소)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체 인지 기능과 기억력 평가에서도, 음악을 꾸준히 즐기는 노인들이 추적 기간에 더 높은 점수를 유지했다. 연구팀은 음악 활동이 노년기에 뇌 기능을 복합적으로 자극하며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감상’만으로도 뇌 기능 자극
그동안 음악 관련 연구는 악기 연주나 합창처럼 능동적 활동에 초점을 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구는 ‘듣기’라는 수동적 음악 활동도 독립적으로 인지 건강과 연관될 수 있음을 대규모로 입증한 사례다. 연구는 음악 감상이 뇌에 미치는 작용 경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보상·정서 회로 활성화
음악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정서 안정과 동기 형성에 영향을 준다. 정서 조절 기능은 인지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신경 회로 연결 강화(신경가소성)
음악을 들을 때 기억·주의·언어 등 여러 뇌 네트워크가 동시에 활성화된다.
▶ 스트레스·우울 감소
노년기 우울과 만성 스트레스는 치매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음악은 긴장을 낮추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 사회적 고립 완충
혼자 듣는 음악도 정서적 자극을 제공해 고립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성을 종합해 음악 감상은 노년기 뇌에 무리가 적으면서도 꾸준히 유지하기 쉬운 생활 기반 자극이라고 설명했다.
누구에게 더 효과가 있었나?…“고학력 노인에서 보호 효과 더 뚜렷”
음악 감상의 보호 효과는 교육 기간 16년 이상 고학력 노인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음악 활동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접근성이 좋거나, 이미 형성된 인지예비능과 음악 자극이 상호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치매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교육 수준–인지예비능–노화 보호 효과’ 구조와 일치하는 결과다.
다만 본 연구는 관찰연구이기 때문에 음악 청취가 치매를 직접 ‘예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참여자의 대부분이 건강한 호주 백인 노인이었고, 다른 문화권과 인구집단에서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후속 연구로 확인이 필요하다.
돌봄 현장과 예방 정책에 주는 의미
이번 연구는 국내 치매 예방 체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우선 음악 감상은 접근성과 지속성이 가장 높은 비약물적 활동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체력, 비용이 필요하지 않으며 스마트폰이나 라디오만으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또한 주간보호센터와 요양시설 등 돌봄 현장에서 제공되는 음악 감상 프로그램의 근거 기반 확대를 뒷받침한다. 기존에는 ‘정서 지원 활동’ 정도로 취급되던 음악 감상이 인지건강과 연관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인지예방 프로그램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지역 치매안심센터의 생활형 프로그램에서도 확장 가능성이 크다. ‘매일 음악 듣기 루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감정 회복 음악 시간’ 등 습관 기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실질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음악의 효과는 정서 안정, 우울 감소, 사회적 연결감 증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신건강–인지건강 통합 접근 모델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고립과 우울이 치매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알려진 만큼, 음악은 통합 돌봄 체계에서 중요한 비약물적 개입 도구로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치매 예방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음악 활동은 신체·정서·사회적 요소를 동시에 자극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실천 가능성 높은 비약물적 예방 전략으로 평가된다.
Source
Jaffa, E., Ryan, J., Storey, E., Woods, R. L., & the ASPREE Investigator Group. (2025). What is the association between music-related leisure activities and dementia risk? A cohort study. International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 Advance online publication. https://doi.org/10.1002/gps.7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