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신약 개발, 실패 사례에서 기회를 엿본다"
"치매 신약 개발, 실패 사례에서 기회를 엿본다"
  • 원종혁 기자
  • 승인 2022.09.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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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벤져스 인터뷰| 배진건 박사(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

 

배진건 박사.

"(신약 개발과 관련) 실패 사례를 놓고 낙담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짚어야 한다."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연구소에서 만난 배진건 박사(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는 최근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약 임상평가에 있어 이 같은 신념을 분명히 밝혔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여러 질환 가운데서도 유독 표적 신약의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분야로 손꼽힌다. 약물 유효성분의 뇌혈관장벽(BBB) 통과가 1차적 관문인 만큼 후보물질의 차별성과 함께 이를 전달할 플랫폼 기술의 중요성도 한층 강조되기 때문이다.

현실은 더 복잡하게 얽혔다. 특정 신약 후보물질의 작용기전에만 전적으로 기대기엔 임상 실패 시 떠안아야 할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에서다. 작년 6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 시장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시판허가를 획득한 베타 아밀로이드 표적 항체 신약 '아두카누맙(제품명 아두헬름)'의 사례가 이를 정확히 대변한다. 

실효성 부족과 부작용 문제를 넘어, 치료제를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반이나 타우 단백 덩어리를 줄인다고 해서 환자의 인지 기능 개선혜택으로까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독특한 약물 작용기전 '자체'보다는 다양한 활성약물을 담아낼 수 있고, 뇌혈관장벽 통과가 용이한 '그릇(플랫폼)'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된다는 얘기다.

배 박사는 "결국 치매 치료에 있어 유일 타깃은 뇌다. 항체치료제를 투약했을 때 유효 약물성분의 BBB 투과율이 관건"이라며 "표적부위에 약물성분이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이는 항체치료제 분야에서 약물 전달 셔틀(운반체)을 이용한 플랫폼 접목 기술을 주목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빅파마 로슈가 개발 중인 '간테네루맙(gantenerumab)'의 사례를 지목했다. 그는 "아밀로이드 표적약 간테네루맙도 초기 임상에선 실패했다. 당연히 BBB 투과율이 문제였다"며 "최근에 BBB 셔틀 플랫폼을 접목한 임상을 시작한 상황이라 이러한 데이터를 지켜보고 결론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치매 신약 후보물질 자체의 실패 경험들이 많다 보니, 신약 플랫폼 기술에 대한 주목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치매 분야 바이오 신약 개발과 관련해, 바이오벡터 영역에서 약물흡수 개선기술 및 제형변경, 이중항체, ADC (Antibody drug conjugate), 약효지속형 플랫폼 기술 등 활용폭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를테면 국내 기업인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후보물질 셔틀 플랫폼 기술도 동일한 맥락으로 언급했다. 글로벌 제약기업인 사노피에 공동개발 및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이중항체 후보물질 'ABL301'은 에이비엘바이오가 보유한 '그랩바디-B(Grabody-B)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BBB 투과를 극대화시키는 'IGF1R' 표적 BBB 셔틀 플랫폼으로 알려졌다.  

배 박사는 "에이비엘바이오의 셔틀 기술도 같은 의미에서 주목된다"며 "BBB 셔틀을 이용해서라도 약물의 유효용량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추후에 실패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같은 계열 치료제라도 표적 부위가 다양한 만큼 여전히 알츠하이머병 분야에 가용성 베타 아밀로이드 저중합체를 찾는 작업은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의료계에선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 수립에 있어 전환점을 마련한 비임상 연구 논문에 이미지 데이터 일부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당 치료제 개발 분야에도 나비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배 박사는 "아밀로이드 가설에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라고 단정하기에 앞서 유효성분이 BBB를 통과해 뇌에 닿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며 "가설에 기반한 임상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버릴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의혹만으로 아밀로이드 가설 전체를 부정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어 "과학은 의심이고 종교는 믿음이다"라며 "데이터는 의심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조작을 해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십수년 전 국내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이 일었지만, 이를 놓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배 박사는 "학계 조사를 보면 게재된 논문의 절반 정도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며 "원하는 결론을 도출하고 좋은 학술지에 싣기 위해 어느 한 측면만 바라봐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치매 표적 바이오마커 명확해진 상황, 타깃 선정 연구 집중할 때" 

사진: 이노큐어 테라퓨틱스 연구소에서 배진건 박사.

배 박사는 "아두카누맙의 사례는 허가과정에서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생각"이라며 "아밀로이드 가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두카누맙과 다른 표적 부위를 타깃하는 도나네맙의 데이터가 더 좋게 나온 상황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현재 아두카누맙이 포진한 베타 아밀로이드 표적 항체약 시장에는 후발 신약 진입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기는 하다. 바이오젠과 에자이제약이 아두카누맙의 후속주자로 준비 중인 '레카네맙(lecanemab)'과 일라이 릴리의 '도나네맙(donanemab)' 등이 유력 후보물질로 거론된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같은 표적 항체약임에도 타깃 부위에는 차이를 보인다는 대목이다. 이들 후보물질은 베타 아밀로이드 저중합체(oligomer)에 결합해 응집체 형성을 차단한다는 개념을 놓고 선발주자인 아두카누맙과 유사한 작용기전을 가지고 있지만,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 구조의 서로 다른 부위를 타깃으로 한다. 릴리의 도나네맙은 Aβp3-42가 주요 표적 부위기도 하다.

이에 배 박사는 실패 사례를 통해 낙담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짚어야 한다는 평소 신념을 전했다.

그는 "최근 베타 아밀로이드 표적 계열 후보물질들의 임상들은 아밀로이드나 타우 수치와 함께 pTau181 및 217, 231 등의 추가 지표에 주목한다"며 "이 같은 지표들은 혈액에서도 측정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알츠하이머병에 정확한 타깃을 알지 못했지만 아두카누맙 등과 같은 임상사례를 통해 명확해진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표적 바이오마커가 보다 잘 알려진 상황에서 저분자화합물이나 항체치료제 등 나아가 다양한 타깃을 정해서 개발에 집중할 시점"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치매 신약 시장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그대로 연출되는 모양새다. 베타 아밀로이드와 독성 타우 단백에 집중하던 표적치료제 개발은 이제 셀 수 없이 다양한 관련 단백질과 신경전달물질의 상호작용을 포함해 신경감염 및 염증반응, 유전자 변이, 면역기전 등을 두루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배 박사가 몸담고 있는 이노큐어 테라퓨틱스(대표이사 유혜동)의 경우에도 차세대 표적 단백질 분해기전의 신약 개발에 집중하는 상황이다. 회사는 신약개발 기술인 'PROTAC(프로탁)' 및 'AUTOTAC(오토탁)' 등의 신기술을 활용해 항암제와 퇴행성 뇌신경계 질환 등 희귀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탁 표적 단백질 분해기술은 적은 약물 투여용량으로 효과는 증진시키고 부작용은 줄이는 약물개발 기술로, 희귀질환 분야에 효과가 있는 여러 신규물질들을 확보해 퇴행성 뇌질환과 희귀질환 분야 전문제약사 및 바이오기업들과 공동연구를 추진 중에 있다.

배 박사는 표적 단백질 분해기술과 관련해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에 접목 가능성을 놓고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자가포식(autophage)을 이용한 오토탁 기술이 중추신경계 치료에 적절할 것으로 본다"며 "물론 프로탁 전문기업인 아비나스(Avinas)의 임상데이터도 있지만, 프로탁은 크기가 작은 단백질의 일부를 인식해서 없애는 한편 큰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토탁이 더 적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노큐어도 오토탁과 관련해 '오탁'을 보유한 상황으로, 개념검증(POC) 절차를 끝마쳤다.

끝으로 배 박사는 치매 신약 개발에 방향성을 두고 "도나네맙의 사례가 좋은 예일 수 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타깃 물질에 도전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며 "3상임상 진입도 중요하지만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특허물질을 만드는 작업이 활발히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바이오 업계 투자 분위기는 많이 침체됐다. 결국 좋은 물질을 바라보는 눈이 중요하다"며 "정부는 산업계를 살릴 수 있는 투자를 제대로 지원해야 한다. 어떠한 신약도 신념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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