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과 비교해 본 대통령의 인지 기능 저하 대응 방식
지도자의 투명성과 정직함이 남기는 정치적 유산

13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악시오스(Axios)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배우 조지 클루니를 알아보지 못한 사건을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4년 6월 1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배우 조지 클루니를 즉각 알아보지 못했다. 클루니는 바이든과 15년의 친분이 있었으며, 당시 1년 반 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바이든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건강 문제와 인지력 저하 논란을 부추겼고, 그의 가족과 참모들이 이를 숨기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바이든은 척추 퇴행으로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그는 2021년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위해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졌으며, 2023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행사에서 연설 무대 바닥의 모래주머니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이에 대해 당시 대통령 주치의는 사적으로 '또 한 번 심각한 낙상이 발생하면 회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휠체어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며, 바이든 대통령의 보좌진은 휠체어 사용 가능성을 내부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델라웨어주 상원의원(민주당) 시절 조 바이든. 2005년 1월 2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에서 '부시 2세 시대의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의회의 견해' 세션에 참석한 모습 / 레미 슈타이네거
델라웨어주 상원의원(민주당) 시절 조 바이든. 2005년 1월 28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총회에서 '부시 2세 시대의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의회의 견해' 세션에 참석한 모습 / 레미 슈타이네거

 

민주당 내부에서 지도력 공백과 당내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던 중에 결국 대선을 불과 107일 앞둔 7월 21일, 바이든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 기능 저하와 치매 가능성에 대한 의혹은 언론과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으며, 바이든의 가족과 참모들은 그의 건강 상태를 숨기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6월 1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해당 모금 행사에는 조지 클루니 외에도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배우 줄리아 로버츠 등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보행 속도가 몹시 느렸고 행사장에는 보좌관이 그의 팔을 잡고 안내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조지 클루니를 못 알아보자 보좌관은 “조지”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여전히 클루니를 잘 모르겠다는 반응에 보좌관은 “조지 클루니”라고 다시 설명했다. 그제야 바이든 대통령은 “아, 그래! 안녕 조지!”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이 장면은 행사장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 보좌진이 그를 조용히 다른 공간으로 이끌었다.

친숙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Prosopagnosia)는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치매나 뇌손상, 뇌졸중 등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치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진행성 얼굴인식장애'라고 하며, 이는 '진행성 실어증'과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이 보인 보행장애도 척추 퇴행 외에 치매가 심해져서 파킨슨 증상이 동반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클루니는 7월 10일 <뉴욕타임스>에 “나는 조 바이든을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후보가 필요하다”(I Love Joe Biden. But We Need a New Nominee)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해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한 공개적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칼럼에서 “내가 만난 조 바이든은 2020년 대선 때의 그가 아니었다”고 밝히며, 대선 후보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열흘 뒤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린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조지 클루니 / 하랄드 크리첼
지난해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린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조지 클루니 / 하랄드 크리첼

 

민주당 내부와 지지층 사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바이든 전 대통령의 재출마 적합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은 향후 대선 전략을 재검토하며 바이든의 ‘이미지 회복 투어’에 찬물을 끼얹었다.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원내대표인 척 슈머(Chuck Schumer)는 공개적으로는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비공식적으로는 다른 후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상원의원 피터 웰치(Peter Welch)는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한 첫 번째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다.

민주당 하원의원 얼 블루메나우어(Earl Blumenauer)를 포함한 최소 9명의 하원의원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중단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우려가 선거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할리우드의 주요 기부자들도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일부는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디즈니 가문의 애비게일 디즈니(Abigail Disney)는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민주당에 대한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전 오바마 캠페인 수석 전략가인 데이비드 플러프(David Plouffe)는 바이든 대통령의 늦은 사퇴 결정이 민주당의 선거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한 우려가 당내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패배하면서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며 대선의 막을 내렸다.  

이 내용은 CNN 기자 제이크 태퍼(Jake Tapper)와 악시오스(Axios) 기자 알렉스 톰슨(Alex Thompson)이 공동 집필한 《오리지널 신》(Original Sin: President Biden's Decline, Its Cover-Up, and His Disastrous Choice to Run Again)에 공개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 상태와 관련된 내부 증언이 담긴 이 책은 5월 20일 출간 예정이다.

제이크 태퍼는 백악관과 미국 정치를 깊이 있게 취재하며, 특히 대선 토론 진행과 정치 분석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왔다. 그는 2024년 6월 27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CNN 대선 토론을 공동 진행했으며, 이 토론은 5,10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기록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 태퍼는 CNN 합류 전에 ABC 뉴스에서 백악관 수석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에미상(Emmy Award)을 포함한 여러 저널리즘상을 받은 기자다.

알렉스 톰슨은 정치 전문 기자로 백악관과 미국 정치 전반을 깊이 취재하며, 특히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과 민주당 내부 상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악시오스 이전에는 폴리티코(Politico)에서 백악관을 담당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과 내부 갈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미국 역사상 치매 증상을 보인 대통령

미국 역사상 재임 기간 혹은 재임 후 치매(또는 인지 기능 저하) 증상을 보인 대통령이 몇 명 있다. 공식적으로 진단을 공개한 경우는 레이건 대통령이 유일하다. 주로 후일 전기나 기록, 전문가 평가를 통해 추정되는 경우가 많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28대 1913~1921년 재임)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 평화 회의(Paris Peace Conference)를 이끌며 국제연맹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1919년 뇌졸중으로 인해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었다. 이후 인지 기능 저하와 신체 마비 증상이 나타났으며, 일부 기록에서 치매 초기 증상으로 추정되는 행동들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윌슨은 뇌졸중 이후 아내 엘리노어 윌슨이 사실상 대리 역할을 했으며, 대통령의 건강 문제는 당시 비밀에 부쳐졌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34대 1953~1961년 재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재임 중 심장마비, 뇌졸중 등 여러 건강 문제를 겪었다. 공식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뇌졸중 이후 기억력과 인지 기능 저하가 보고돼 학자들은 경도인지장애(MCI) 가능성을 제기했다. 당시 의료 기록과 자료는 제한적이다. 아이젠하워는 건강 이상에도 불구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28대 대통령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34대 대통령 / Unsplash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40대 1981~1989년 재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후 5년 뒤인 1994년(당시 83세)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공개했다. 공식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재임 말기(1987~1989년)에 경미한 인지 저하 징후가 있었던 것으로 일부 역사학자와 전직 참모들이 추정했으나 당시 본인은 부인했다. 치매 증상은 퇴임 이후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은 1989년 퇴임 직후부터 1992년까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짧은 논평 형식의 ‘레이건 일기’(Radio Commentaries)를 진행했다. 이후 1994년 알츠하이머병 진단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기 전까지 간헐적으로 목소리를 매체에 드러냈는데 종종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거나 말을 중간에 멈추는 일이 잦았다. 한 방송에서는 과거 일화를 이야기하다가 핵심 단어를 잊거나, 특정 인물 이름을 틀리게 말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부 방송에는 이전에 말한 내용을 반복하며, 새로운 주제에 대한 접근이 줄어갔다. 청취자와 방송 관계자들이 “레이건의 정신적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지적했으나, 백악관과 측근은 이를 일상적인 노화 현상으로 설명했다.

 

1981년 11월 21일 화이트하우스 정원에서의 포즈를 취한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 / Wikimedia Commons

 

전문가들은 레이건이 라디오 방송에서 노출한 변화를 경도인지장애(MCI) 혹은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전조 증상으로 분석한다. 의학자들과 전기 작가들은 이후 회고록에서 이 시기를 ‘이미 인지 저하가 시작된 때’라고 언급했다. 이 라디오 방송은 치매 초기 징후를 감지하는 최초의 기록자료로 평가받는다. 미국 국립공공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에서 퇴임 후 음성 녹음본 일부가 아카이브돼 있어 공개 청취가 가능하다. 치매 초기 목소리 변화 사례로 학술 가치가 높은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레이건은 미국 국민에게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사실을 자필 편지로 공개했다.

“나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내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미국 사회의 많은 사람이 이 병에 걸릴 것입니다. 나는 내가 병과 싸우며 미국 국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두운 여정의 시작이지만, 나와 낸시는 우리가 함께 걸어갈 수 있어 기쁩니다. 하느님이여, 나의 여정을 인도해 주소서."
_전문 중 일부 발췌

이 편지는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하며, 치매를 ‘부끄러운 병’이 아닌 공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질환으로 인식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긴 작별 (The Long Goodbye)”이라 부르며 남편을 헌신적으로 간호했고, 이후 치매 관련 활동에 적극 나섰다. 낸시 여사는 알츠하이머 연구 재단에 기부하고, 줄기세포 치료법 합법화 활동을 이어갔다.

미국 보수 정치의 상징이면서 최초로 치매 인식 개선을 이끈 레이건 대통령은 약 10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은 끝에, 2004년 6월 5일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선한 영향력’

알츠하이머병을 숨기지 않고 알린 최초의 미국 전직 대통령인 레이건은 정파를 초월해 동정과 지지를 받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치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치매는 가족 안에서 숨기는 병이었으나, 레이건의 편지와 이후 활동은 치매를 ‘말할 수 있는 병’으로 바꿔 놓았다.

1980년 설립된 알츠하이머협회(Alzheimer’s Association)가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데 기여했고, 전 세계 치매 인식 개선의 물결을 촉진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과 낸시 레이건 재단은 대규모 모금 활동을 통해 치매 연구 기금 확대를 주도하며, 치료법 개발과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지원했다. 이들 기관은 알츠하이머병 치료 및 예방 연구 발전과 대중의 인식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미국 노인 건강 정책, 치매 조기진단 캠페인, 의료 윤리 논의에도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알츠하이머병 연구 예산은 1990년대 말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

 

백악관 경내에서 포즈를 취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레이건 여사 / 백악관 사진 컬렉션
백악관 경내에서 포즈를 취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레이건 여사 / 백악관 사진 컬렉션

 

대통령의 인지 건강 논란과 레이건 사례가 주는 교훈

일부 전직 대통령 및 고위 정치인 중 재임 후 인지 기능 저하를 겪었다는 추정 사례는 있으나, 명확한 진단 공개나 공식 기록은 없다. 미국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국가 안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병리나 치매 진단이 공식적으로 공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사후에 평가된다. 과거 재임 대통령의 치매와 인지 장애는 당시 의료 기술과 진단 기준이 현재와 달라 후대 평가에 따른 해석이 포함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임 중에 사망한 인물을 행사장에서 찾거나, 해외 정상의 이름을 과거 인물과 혼동하는 등 반복적인 기억 혼란과 언어 실수로 인지 기능 저하 의혹을 받아왔다. 또한 무대에서 길을 찾지 못하거나 질문에 동문서답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공개되며 우려가 커졌다. 백악관은 대통령이 건강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인지기능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점은 논란으로 남았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인지 건강 문제 공개 방식은 크게 대비된다. 레이건은 퇴임 후 알츠하이머병 진단 사실을 직접 공개하며 사회적 공감을 끌어냈고, 알츠하이머협회의 ‘도덕적 상징’으로 자리 잡으며 치매 인식 개선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바이든은 재임 중 건강 문제를 끝까지 부인했으며, 퇴임 후에도 인지 저하 관련 정보를 밝히지 않은 채 정치적 논란과 불신을 남겼다. 레이건은 자발적인 발표를 통해 치매 연구와 환자 지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치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퇴임 후에도 바이든은 인지 저하 질환을 계속 숨겼다는 의혹에 대중과 정치권의 신뢰는 크게 추락하고 있다.

결국 지도자가 퇴임 후 질병을 공개하는 방식과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대통령의 유산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도자의 투명성과 정직함이 역사적 평가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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