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환자 102명 대상 망상 네트워크 분석...‘도둑 망상’ 가장 흔해
곽용태 박사 "공간 인식 오류가 망상의 허브...도둑 망상이 가교 역할"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망상 증상 중 ‘중복성 기억착오증(reduplicative paramnesia)’이 다른 유형의 망상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돼 핵심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복성 기억착오증은 특정 장소나 사물, 사건이 복제됐거나 서로 다른 두 위치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믿는 망상으로, ‘망상성 오인 증후군(delusional syndromes of misidentification)’이라는 용어로도 알려졌다.
예를 들어 이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본인의 집과 똑같은 집이 다른 곳에 또 한 채 존재한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망상이 주로 병원이나 주거지와 관련돼 나타나며, 남성과 오른손잡이에게 더 높은 빈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됐다.
효자병원 신경과 곽용태 박사 및 순천향대천안병원 양영순 교수 연구팀은 약물 치료를 받지 않은 아밀로이드 PET 양성 알츠하이머병 환자 102명을 대상으로 망상의 하위유형을 파악하고, 망상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유형 간 상호관계를 분석했다.
연구를 주도한 곽용택 박사는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환자의 망상이 어떻게 연결돼 퍼지는지 ‘실타래처럼 얽힌 구조’를 지도처럼 그려 본 것"이라며 "그 지도 안에서 어느 고리를 먼저 풀면 전체가 풀릴 수 있을지 알려주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평균 연령 73.7세(±4.3)의 경도에서 중등도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평균 10.7년(±4.3)의 정규 교육을 받았다.
한국형 간이정신상태검사(K-MMSE)를 통해 측정한 인지 기능 평균 점수는 17.9점(±3.1)이며, 평균 임상치매평가척도(CDR)와 CDR 총점(CDR-SB)은 각각 1.6점(±0.5)과 7.9점(±1.5)으로 나타났다. 망상의 하위 유형은 한국형 치매행동평가척도(K-NPI)를 사용해 정의됐다.
연구 결과, 가장 흔하게 나타난 망상은 ‘도둑 망상(theft delusion)’으로 전체 환자의 89.2%에서 관찰됐다. 그다음으로는 중복성 기억착오증이 46.1%로 높은 빈도를 보였다.
특히 네트워크 분석에서는 중복성 기억착오증이 다른 유형들과 강한 연결성을 보이며 가장 중심적인 망상으로 나타났다. 도둑 망상 역시 주요 허브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배우자 부정 망상(infidelity delusion)’은 네트워크 내에서 주변 노드(node)로 분류됐고, 도둑 망상과도 음의 상관관계를 보여 별도의 병리학적 경로를 가질 가능성이 제시됐다.
또한 모든 하위유형에서 K-MMSE 점수와 유의한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망상 유형 중 ‘편집증’과 중복성 기억착오증 같은 ‘공간적 오인 망상’이 서로 밀접하게 얽혀있으며, 이들 망상이 공통된 뇌 병리 기전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환경에 일관된 단서를 제공하거나, 특정 인지 전략을 활용하면 여러 종류의 망상을 동시에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에 배우자 부정 망상과 같은 질투형 망상은 대인 관계나 정서적 요인 문제가 더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개별적 중재가 더 효과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곽 박사는 "‘망상 네트워크 분석’은 쉽게 말해 망상들 사이의 관계를 페이스북 친구 망처럼 그려 본 것"이라며 "모든 환자의 망상 패턴을 모아 망상들 간 연결 구조를 한눈에 시각화하고, 어떤 망상이 중심에 있고 누가 누굴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지까지 살펴보는 게 바로 이 분석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통계적 방식이 “치매가 심해지면 망상도 심해진다”라는 식의 넓은 경향성만 보여줬다면, 이번 네트워크 분석은 '이 망상이 저 망상을 직접 끌고 온다'는 식의 구체적 경로까지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연구는 ‘집이 복제됐다’는 공간 인식의 오류가 망상의 허브로 작동하며, ‘도둑 망상’이 연결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며 "이 둘을 우선적으로 다루면, 복잡하게 얽힌 여러 망상들이 함께 완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달 22일 미국 노인정신의학회지(American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에 온라인으로 실렸다.
Source
Yang, Y. Kwak, Y.T. Network Analysis of Delusion Subtypes in Amyloid PET–Positive, Drug-Naïve Alzheimer’s Disease Patients. The American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 https://doi.org/10.1016/j.jagp.2025.04.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