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실험실 관찰에서 2025년 의료데이터 분석까지, 감염성 치매설 부상

30년 전 발표된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알츠하이머병의 연관성’ 연구가 최근 국제 학계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1997년 발표 당시에는 논란이 많던 이 가설은, 현재 바이러스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실험으로 확인하는 연구부터, 수많은 사람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임상 연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근거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로 2025년 발표된 미국 UTMB 연구팀의 344,628쌍 의료기록 분석은, 1997년 논문을 직접 인용하며 “이전의 실험실 근거를 실제 임상 수준에서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연구의 제안자인 루스 이츠하키(Ruth Itzhaki) 박사 본인이 과학 매체 <The Conversation>에 직접 기고하며 연구를 재차 강조했고, 최근 3년간 관련 논문 수가 급증하며 ‘HSV-1과 알츠하이머’는 글로벌 치매 연구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 중이다.

 

헤르페스 단순 바이러스 1형(HSV-1)을 묘사한 디지털 일러스트 / 생성형 AI
헤르페스 단순 바이러스 1형(HSV-1)을 묘사한 디지털 일러스트 / 생성형 AI

 

HSV-1이란? 입술에 자주 나타나는 흔한 바이러스

단순 헤르페스 바이러스 1형(Herpes Simplex Virus type 1, HSV-1)은 전 세계 인구의 60~80%가 평생 한 번 이상 보유하는 매우 흔한 감염성 바이러스다.

흔히 ‘입술 헤르페스’로 불리는 이 바이러스는 주로 입술 주변, 입, 코, 턱, 뺨 등 얼굴 부위에 물집을 형성하는 감염을 일으킨다. 단순 포진이라고도 불리며, 전염성이 강하여 키스나 수건, 식기 공유 등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

일단 감염되면 피부병변(물집 등)을 일으킨 뒤 삼차신경절(얼굴 감각과 관련된 주요 말초신경 집합체) 등 신경계에 평생 잠복한다. 대부분은 무증상 혹은 재발성 물집 정도로 그치지만, 면역이 약화되거나 뇌로 침투하면 신경계 감염(헤르페스 뇌염)이나 만성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2009년부터 2020년대 중반까지 HSV-1 감염과 알츠하이머병 간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본격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임상 자료 기반 연구들도 늘어나며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1997년, HSV-1과 ApoE4 유전자의 결합이 치매 위험↑

1997년 <The Lancet>에 발표한 이츠하키 박사팀의 논문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 조직에서 HSV-1 DNA가 다수 검출되었으며, ApoE ε4 유전자 보유자의 경우 위험이 최대 12배까지 증가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을 단일 단백질 병리(아밀로이드, 타우)로만 설명하는 기존 모델에 감염성 요인과 유전 감수성을 결합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실험실에서 밝혀진 병리 기전…바이러스가 병리 단백질 축적 유도

2009년 Wozniak 박사팀은, 알츠하이머 환자 뇌의 아밀로이드 플라크 중 90%에서 HSV-1 DNA를 확인했으며, 감염된 신경세포에 항바이러스제(acyclovir 등)를 투여한 실험에서는 병리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및 타우 축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결과를 <Journal of Pathology>에 발표했다.

2024년 미국 연구팀은 HSV-1 단백질 ICP27이 타우 단백질을 인산화(세포 내 단백질 기능을 조절하는 화학적 변화)해, 초기에는 신경세포 보호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반복 감염 시 병리적 타우 응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비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HSV-1이 피부 감염 바이러스에 그치지 않고, 뇌 신경세포 내에서 알츠하이머병 병리를 유도할 수 있는 분자적 기전을 가진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분석된다.

 

2025년, 대규모 임상자료가 위험 상승과 치료 가능성 입증

2025년 5월, 미국 텍사스대학교 갤버스턴 의과대학(The 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 at Galveston, UTMB) 연구팀은 50세 이상 미국 성인 344,628쌍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대규모 사례-대조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BMJ Open>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HSV-1 감염 이력이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1.8배 증가했으며, 감염 이후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복용한 집단에서는 치매 위험이 1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그동안 실험실 수준에 머물렀던 감염성 치매설을, 현실 의료데이터(real-world data)를 통해 임상적으로 검증한 첫 대규모 분석 사례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바이러스 감염 관리가 치매 예방 전략이 될 가능성이 더욱 구체화됐다.

 

감염성 치매에 대한 과학적 대응 전략…이제는 현실 과제

과학적 근거가 쌓이면서, HSV-1을 중심으로 한 정밀예방 기반의 치매 대응 전략도 구체화되고 있다.

HSV-1 감염력이 있는 고위험군(특히 ApoE ε4 보유자)을 조기에 선별하고, 아시클로버(Acyclovir), 팜시클로버(Famciclovir) 등 항바이러스제를 예방적 차원에서 투여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한 현재 HSV-1 자체의 상용 백신은 없지만, 독감·폐렴·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면역력 전반을 유지하는 것이 뇌 염증을 억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백신의 예방적 가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ApoE 유전자 검사와 HSV-1 감염 이력 확인을 통해 개인별 치매 위험을 정밀 분석하고, 고위험군에 맞춤형 생활습관 개입, 정기적 인지평가, 항바이러스 치료를 연결하는 정밀예방 전략이 제안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연구는 감염–염증–치매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관찰연구나 후향적 데이터 분석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향후에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군 임상시험(RCT), 바이오마커 기반 연구, 다학제 연구 등 더 강한 근거 수준의 연구 설계가 요구된다.

 

Sources

IItzhaki RF, Lin WR, Shang D, et al. Herpes simplex virus type 1 in brain and risk of Alzheimer’s disease. The Lancet. 1997;349(9047):241–244. https://doi.org/10.1016/S0140-6736(96)10149-5

Wozniak MA, Mee AP, Itzhaki RF. HSV-1 DNA is located within Alzheimer’s disease amyloid plaques. Journal of Pathology. 2009;217(1):131–138. https://doi.org/10.1002/path.2449

Tzeng NS, Chung CH, Lin FH, et al. Anti-herpetic medications and reduced risk of dementia in patients with herpes simplex virus infections: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cohort study in Taiwan. Neurotherapeutics. 2018;15(2):417–429. https://doi.org/10.1007/s13311-018-0611-x

Liu Y, Kuo PH, Chen YC, et al. Association between herpes simplex virus infection and Alzheimer's disease: a population-based, matched case-control study. BMJ Open. 2025;15(5):e093946. https://bmjopen.bmj.com/content/15/5/e09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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