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우울·허약 연구로 간호계 1호 대학중점연구소 선정
지난 2월 28일, 한국 간호계의 큰 별이 졌다. 36대 보건복지부장관이자 11대 국회의원으로 보건복지와 여성정책에 많은 입법 활동에 참여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간호 분야 대학원 과정을 개설해 간호교육을 혁신시킨 김모임 교수(향년 88세)가 별세했다. 간호학을 전문직 학문분과로 발전시키고자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전 국민 연금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김모임 교수가 모교 연세대 간호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해 만들어진 연구소가 김모임간호학연구소다.
김모임간호학연구소는 ‘고령건강과학’을 연구 주제로 ‘치매’, ‘우울’, ‘허약’ 분야에서 개인별 맞춤형 돌봄 및 고령 친화 스마트케어 기술 개발과 실용화를 이루어 건강한 고령사회를 구현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간호학계에서 유일하게 대학중점연구소에 선정됐고, 아직 2호가 나오지 않았다. 노인 건강 전문 연구소로서 세계적인 연구소를 향해 출범한 김모임간호학연구소의 조은희 소장을 만나 치매와 노쇠로 고통받는 고령 세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들어봤다.
Q. 김모임간호학연구소와 조은희 소장님 소개를 부탁합니다.
김모임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전 재산과 시신까지 연대에 기부하셨어요. 모교에 애정이 깊은 분이셨죠. 그래서 김모임간호학연구소가 만들어졌고 이 휴게실도 후학들에게 교수님의 정신을 알리고자 기록물 전시관으로 조성했어요. 저는 고려대 출신이어서 김모임 교수님께 직접 수업을 들은 제자는 아니지만 연대에서 가르치면서 김 교수님을 자주 뵈었어요. 연구소장을 맡으며 주요 행사마다 가까이서 뵀고요. 교수님이 당부하신 일들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노인간호학을 가르치고 있어요. 학부에서는 이론적으로 노인들에게 발생하는 질환들을 소개하고 각 질환의 환자를 어떻게 돌봐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노인장기요양과 실제 병원의 세팅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대학원에서는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요구되는 돌봄, 지식, 서비스를 개발하고 연구합니다. 치매 마을 등 외국의 선진 복지 사례와 프로그램을 어떻게 도입할지도 다루고 있습니다. 실습은 요양시설에서 진행합니다. 우리나라 노인 돌봄이 주로 이뤄지는 곳이 요양시설이고 주야간보호센터를 비롯해 앞으로 많아질 테니까요.
김모임간호학연구소의 전신은 연세대 간호정책연구소에요. 1973년에 설립됐고 우리나라 간호 분야 연구소 중 최초이자 가장 오랜 역사가 있어요. 2020년 간호계 최초로 교육부 이공분야 대학중점연구소로 선정됐습니다. 2028년까지 총 69억 원의 연구비를 교육부로부터 지원받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고령건강과학 연구그룹을 육성하는 계획을 향하고 있어요.
그동안 간호계에서 대학중점연구소로 지정받은 사례가 없어요. 연세대 전체에서도 대학중점연구소는 몇 개 안 되는데 주로 기초의학, 신약 개발 분야에 집중해 있죠. 김모임간호학연구소가 대학중점연구소로 지정받았을 때 간호계가 매우 놀랐어요. 왜 고령 건강 연구가 필요하고 간호학이 대학중점연구소 지원 대상에 들어가야 하는지 발표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에 감성적 요소를 넣었어요. 2020년이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이었기 때문에 “나이팅게일이 탄생한 지 200년이 됐는데, 우리나라 간호계에는 연구비 지원이 이뤄진 적이 없다. 나이팅게일처럼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으니 지원해 달라” 결국 우리 연구소가 지정됐고 간호계에 큰 경사였죠.
그동안 연구비가 주로 지원돼 온 의료분야는 치매 신약 부분이었는데, 진단 위주의 치매국가책임제에 자원이 투입됐지만 진단 후 살아가는 사람을 돕는 돌봄 영역은 사각지대였어요. 진단 후 사람들의 고통은 외면받고 있다는 데 화가 났죠. 정작 중요한 돌봄을 제공하는 노인 간호 분야는 실제로 이바지하는 역할이 큰 데도 연구비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으니까요.
Q. 치매안심센터가 획일적 선별검사로 치매 진단과 명단 작성에만 치우쳐 있는 문제를 디멘시아뉴스가 집중해서 다뤄왔는데 교수님도 진단 후 돌봄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해 오셨군요. 특별히 노인간호학을 박사 과정으로 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문간호사제도가 우리나라에 없어서 미국 정책과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박사 논문 주제를 정하는 시기에 미국의 노인을 보면서 우리나라 없는 제도에 주목했어요. 미국은 너싱홈(편집자 주: 질병의 회복과 요양을 목적으로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며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어르신을 위한 치료와 간호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요양시설)을 빼고는 노인 돌봄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서구에서는 20~30년 전부터 보편화돼 있죠. 너싱홈에 좋은 서비스가 구현돼 있어서 어르신들은 아파도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처럼 가족이 직장을 접고 돌보는 구조가 아니에요.
그래서 보건학 석사 과정을 마친 다음 박사 주제를 노인간호학으로 정해 연구했어요. 미국의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노인전문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간호학 석사 과정도 시작했습니다. 요양시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했고 전문간호사 노하우를 경험했습니다.
Q.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됐을 때 노인간호학을 강의하신 소장님은 남다른 심정이었겠어요.
2007년에 연세대에 부임해서 운명적인 사건을 마주했죠. 이듬해에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겼으니까요. 제가 꿈꿨던 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초창기엔 수정할 문제가 많았습니다. 연세대 간호대학에서 노인간호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밝히고 전화해도 연결을 안 시켜주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제안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요. 지금은 한국노인간호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보건복지부 일도 조금씩 하며 의견을 드리면서 노인을 위한 제도가 자리 잡는 데 정부와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세브란스병원만 봐도 외국에서 손님들이 방문하면 자기네 국가보다 한국이 훨씬 좋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국내 요양시설에 가보면 깜짝 놀라요. 기대보다 부실해서요.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하는지를 빨리 파악했어요. 미국에서 노인간호학을 연구하면서 한국에서는 미국이 실패한 부분을 겪지 않도록 돕고 싶었어요. 미국도 초기에는 시설 위주로 갔다가 시행착오를 거쳐 노인에게 아늑한 집과 같은 환경으로 만드는 정책으로 변경했어요. 그런데 한국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하더라고요. 지금은 김모임간호학연구소에서 현실에 적용하는 노인 질환 돌봄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지도할 때 요양시설에서 실습하니까 현장의 문제를 계속 접하고 있고요.
Q. 요양병원보다 요양원에서 주로 실습하는 이유가 있나요?
요양원(요양시설)에 노인 간호 전문성이 필요해요. 실제로 많은 어르신이 요양시설에 입소해 계시고요. 제가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을 운영했습니다. <노인요양시설 내 전문요양실 시범사업>으로 의료법 위반 소지로 의료계가 반대한 사업이지만 결과가 좋아서 확대 운영된 시범사업이에요. 2019년에 노인요양시설 20개소를 정해 전문요양실을 운영했어요. 요양시설 내 병동 단위로 간호 서비스가 필요한 장기요양 1~4등급 입소자에게,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가 전문적인 간호 서비스, 즉 간호 처치를 제공한 내용이에요.
그동안 요양시설은 의료기관이 아니란 이유로 간호사가 처치를 못 하게 했어요. 실제로 요양시설에 간호사가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은 30퍼센트도 안 돼요. 70퍼센트 이상은 간호조무사만 있죠. 그런 곳에서 간호 처치를 허용하면 조무사에게 허용하는 거고, 병원 외 장소에서 간호사가 간호행위를 하는 것은 법적 제한에 걸리게 돼요. 그래서 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이 실수로 콧줄을 당겨 뽑으면 그 요양시설의 간호사가 직접 넣어주면 되는데 불법인 거죠. 혹시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인 책임을 간호사 개인이 받게 돼 있고요.
요양시설에서 간호 처치를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환자를 직접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콧줄을 꽂고 오라고 해요. 그럼 보호자는 일하다가 전화 받고 황당하죠. 휴가를 내야 하는 일도 있어요. 요양시설이 멀리 지방의 외진 곳에 있으면 보호자가 앰뷸런스를 호출해 환자를 태우고 멀리 도심에 있는 병원에 모시고 가서 해결해야 해요. 그런데 콧줄을 다시 끼는 건 몇만 원인데 요양시설에서 그분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올 때 구급차 비용만 편도 10만 원이 넘어요. 보호자들 불만이 점점 많아졌죠,
일부러 간호사가 있는 요양시설에 찾아왔는데 왜 이걸 해결 못 하게 하느냐는 그런 불만이 복지부 민원으로 많이 들어갔어요. 그래서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요양시설 몇 군데를 정해 시범사업으로 ‘전문요양실’이라는 유닛을 만들어 그곳에서 간호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해 간호행위를 허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보기로 했죠.
제가 수행한 전문요양실 시범사업 설명회에서 요양병원협회는 반대했어요. 왜 병원에서 할 일을 요양시설에서 하려고 하느냐,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간호 처치를 할 수 없다는 항의가 일었어요. 의사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반대가 많았죠. 그래도 설득하고 시범사업을 진행했는데 결과가 좋았어요. 어떤 어르신은 콧줄을 하루에 6번이나 빼낸 분도 있으니 직접 해결해 드리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요양원 안에서 필요한 의료 서비스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간호사 한 명이 수많은 치매 환자를 돌보고 중증 환자가 되면 응급실로 앰뷸런스에 태워 보내야 하는 것은 환자 중심이 아니라 시설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보호자는 더 이해할 수 없죠.
요양시설에 있는 그 많은 어르신을 더 생각해야 합니다. 중증도가 높아야만 요양시설에 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장기요양등급 1, 2등급을 받은 분들을 입소시켜 놓고 의료와 간호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으면 왜 서비스 중증도를 선별합니까? 요양병원에 모시면 된다고들 하지만 그 많은 환자가 요양병원 비용을 감당하며 지내긴 힘듭니다.
Q. 요양병원 측에서는 경영난으로 몹시 힘든 상황임을 강조합니다. 정부 지원책에서 패싱되기도 하고요.
분명히 요양시설에 의료 서비스를 허용해 주면 요양병원은 지금도 어려운데 더 어려워진다는 불안감이 있죠. 정부에서 요양병원의 고통을 해결해 줘야 해요. 예를 들면 암 전문병원이나 재활병원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암 치료를 받고 회복기에 재활 서비스를 받는 병원이 필요하죠. 요양병원이 그 역할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거나 요양병원이 문을 닫지 않게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지원책이 나오지 않으니 정부가 요양시설만 살리고 요양병원은 문 닫게 한다는 불신이 높을 수밖에요. 요양시설은 계약의사가 수퍼바이저 역할을 하고 상주하는 간호사가 처치하니까 의사의 협력하에 운영하는 건 차이가 없습니다.
Q. 김모임간호학연구소의 연구 활동 중 의미 있는 내용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마포 성미산마을 돌봄리빙랩(Living Lab, ‘생활 실험실’이란 뜻으로 주민이 주도적으로 생활 속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설계해 실행하는 사회혁신 정책)과 함께하고 있어요. 성미산 일대의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 주민들이 만든 마을공동체인데 1994년 ‘신촌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세워 공동육아를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교육, 주거,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공동체를 이루었죠. 성미산마을 돌봄리빙랩은 시민사회운동가들이 주축이 돼 돌봄 문화와 체계를 만들었어요. 김모임간호학연구소는 이런 시민사회가 만들어 가는 활동과 연대해 어르신 돌봄, 노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어요. 우리 연구소의 전문 간호 역량과 연결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지원해 양질의 돌봄을 제공하며 연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학자들만 돌봄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뛰는 시민운동가에게서 더 깊은 관심과 열정을 발견한 거예요. 간호사나 요양시설 직원들이 돌봄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지, 일반 시민이 이렇게 조직화해서 돌봄을 깊이 고민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직접 시민운동가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노인 돌봄 문제를 어떻게 빨리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에 우선적 관심을 두지만, 돌봄리빙랩의 시민운동가들은 공감과 문화, 여론 형성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더라고요. 처음에 저는 일의 속도가 안 붙어서 힘들었는데 그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먼저 건강한 돌봄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게 당장 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Q. 소장님의 이 말씀은 디멘시아뉴스가 연재하는 치매 마을의 호그벡 마을 공동 설립자가 한 말과 뜻이 통하네요. “치매 마을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건 함께 공존하려는 문화, 치명적인 진단을 받은 사람을 포용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학교의 연구자는 현장에서 배워야 해요. 저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익숙한데 처음에는 왜 이리 느릿느릿하지? 이 답답함은 무얼까 고심했는데 우리가 2년을 리빙랩과 같이 일하다 보니 지금까지 연구실에서 강구한 방법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의 간호사에겐 도움이 됐을지라도 어르신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맞는 방식은 아니었어요. 그런 와중에 디멘시아뉴스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기사들을 보면서 우리와 같은 고민의 같은 목적을 지닌 언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Q. 김모임간호학연구소가 추진하는 일 중 헬스케어 기업과의 연계 사업도 있더군요.
치매 관련 디지털 기술과 접목할 필요가 있었어요. 사실 돌봄 종사자들은 식사할 시간도 없어요. 그래서 치매 환자의 연구가 엄청 어려워요. 보호자 인터뷰를 잠깐 하고 싶어도 치매 환자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인터뷰 시간 내기가 어렵죠. 하루 종일 치매 환자에게 매여 있는 분들을 위한 효율적인 해결책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거의 모든 치매 환자 가정에는 가족 중 한 명이 돌봄을 책임지고 있으니까 그분이 치매 환자를 잘 돌볼 수 있게 연구하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역할이죠. 그래서 앱으로 회상요법을 할 수 있도록 구현했고, 인지 기능을 더 유지하도록 돕는 기술적인 면을 지원해요. 이런 훈련은 개인 맞춤형이 효과적이에요. 병원이나 요양시설보다 가정에서 보호자가 치매 어른이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 애착을 가진 물건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른 방법이죠.
보호자가 여유를 가지고 식사할 수 있도록 돕는 앱 등 첨단 기술을 융합한 도구를 만들려고 헬스케어 회사들과 손잡고 있어요. 연구자로서는 완벽한 결과물을 보호자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 몇몇 유망한 기업을 컨택했죠. 독거노인이 안전하게 살게 하려면 어떤 센서가 필요한지에 관한 연구도 하고, 기술 융합 테크놀로지 회사와 협업해 다양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가상현실과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비알프레임’, 소량의 혈액만으로 정밀한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체외 진단 의료기기를 만드는 ‘스몰머신즈’, 보행 보조 웨어러블 로봇 스타트업 ‘위로보틱스’ 등 회사들과 네트워킹하고 있어요.
Q. 김모임간호학연구소가 지향하는 일들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제가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스승으로 만난 분이 김화중 교수님이에요. 지역 사회 간호학을 가르치셨는데 제가 그 전공으로 석사를 했어요. 김 교수님께서 그 후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셨어요. 간호사가 이렇게 보건복지부 장관도 하고 정치도 하는구나, 생각하며 미국 유학을 갔죠. 그런데 연세대에 와보니 먼저 그 길을 가신 김모임 교수님이 계신 거예요.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정치에 관심이 없는데 간호계에 딱 두 분 계신 보건복지부 장관과 모두 인연이 닿았어요. 저는 노인간호학에 부르심을 받아 두 분의 스피릿을 이어가고 있어요. 두 분에게 공통으로 배운 것이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특히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늘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인간호학을 연구하며 접하는 가장 취약한 대상은 요양시설과 집에서 와상환자로 계신 어르신들이에요. 저는 두 분께 영향을 받아 취약한 상태에 계신 노인께 관심이 많습니다.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식체를 만드는 거로 생각해요. 지적인 근간을 만드는 거죠. 제가 리빙랩을 말씀드렸는데 그곳의 시민운동가들은 저보다 철학적으로 훨씬 더 오래 고민한 분들이에요. 지역 노인에 대한 애정도 저보다 훨씬 많으세요. 그분들만큼 우리 연구자들이 열정과 애정이 넘칠 수 있느냐, 한결같기는 쉽지 않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이 부족한 부분을 도와드리는 일, 어떻게 돌보는 것이 어르신의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 현장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체를 완성도 있게 만들어 제공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현실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리빙랩과 협력하면서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어요. 스포츠학과 교수님과 시니어 운동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소개하고 있어요. 집에서 따라 하실 수 있는 드레싱과 석션, 중환자 체위 변경 등 보호자용 돌봄 콘텐츠를 쇼츠로 만들어 공급하는 등 교육 자료를 늘려갈 계획입니다.
Q. 결국 요양시설과 가정에 파견돼 돌보는 요양보호사에게 전문 교육과 그분들의 사명감 고양이 필요한데 돌봄의 질 개선 문제는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요양시설의 퀄리티 컨트롤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국처럼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이 많아서 국가에서 기본 퀄리티를 유지하도록 제도화할 것인가, 미국처럼 민간에게 맡기되 민간이 퀄러티 수준을 지키도록 유도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요양시설을 민간에 거의 맡겼어요. 그래서 저는 공적 영역에서 퀄러티 컨트롤에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미국처럼 퀄리티 평가를 해야 합니다. 미국도 돈에 민감한 사회이다 보니까 엉망인 요양시설이 있고 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한 번 퀄리티 평가에 걸리면 문을 닫아야 해요. 바로 퇴출이죠. 우리나라도 그렇게 정부가 요양시설의 서비스 퀄러티 평가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의사 표현 못 하는 환자분들이 문제 있는 서비스를 받아도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그분들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소통 창구도 없어요. 쉽게 다른 시설로 옮길 수도 없고 집으로 갈 수도 없으니까 그분들 권리를 보호하는 데 정부가 개입해야 합니다. 제가 정부에 늘 강조하는 제안이 요양시설 서비스 개선 문제입니다.
Q. 보건복지부에서 해야 하는 일을 김모임간호학연구소에서 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리빙랩도 그렇고 요양시설 서비스 개선 문제도요. 연구소가 국내 고령건강 거점연구소로 해야 할 일이 참 많네요.
정부에서 하면 제일 좋죠. 그런데 정부가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먼저 연구사업을 시작한 뒤 결과가 나오면 정부에 방향을 제시할 기회가 많습니다. 자문회의와 공청회에서 설명한 주제가 현실에 반영되고 제도화하면 보람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연구를 위해 이전에 안 해본 시도를 많이 해보고 있어요.
Q. 그동안의 연구소 성과는 어떤 것들이 있죠?
일단 리빙랩을 세팅해서 학자들의 연구를 현장으로 확장했습니다. 학술적인 연구와 현장을 융합한 노인학 연구를 많이 개척했어요. 예를 들면 기초의학 연구자가 노인 관련 연구를 한다거나 병원의 간호학 연구자가 지역사회 서비스 개발을 유기적으로 하는 등 여러 분야 교수님의 개인 연구에서 팀 연구로 확장한 주제가 많아졌어요. 각자의 전문 지식을 좀 더 큰 규모의 연구로 성과를 내는 데 기여하고 있죠.
특히 노인간호학 전문 교수를 우리가 배출하고 있어요. 그들이 여러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죠. 그동안 노인간호학 연구와 학자가 부족했어요. 노인간호학회에서도 노인간호학 전공 교수가 별로 없어요. 일할 사람이 부족한 이유는 간호학에서 노인간호학이 가장 늦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노인간호학 전공 교수를 보유한 대학이 몇 개 안 돼요. 교수가 없다는 것은 후학이 안 생긴다는 뜻입니다. 현실은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돌봄 인력이 가장 부족한 쪽이 노인 돌봄인데 노인간호학을 배운 적 없는 간호사들이 태반입니다. 우리 연구소에서 노인간호학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인간호학에 관심 있는 연구자가 많아야 하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도 많이 생겨야 합니다.
치매도 그래요. 치매에 관한 노인간호 전공자가 없으면 누가 치매를 가르칠까요? 그동안 정신과에서 가르쳐 왔어요.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치매 환자에게 제대로 된 돌봄이 이뤄지고 치매 연구가 일어날까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제도적인 문제를 정비해야 합니다. 한국이 고령화되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까 제도가 뒤따라가지를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김모임간호학연구소의 연구진과 회의하며 정부 정책을 제안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정부에서 요청하는 자문이나 공청회는 꼭 가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어요. 사회적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노인 돌봄에선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이 치매에 걸리고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허약해지고 우울해져도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것, 그래서 내가 치매에 걸려도 너무 두렵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김모임간호학연구소의 목표입니다.
Q. 디멘시아뉴스의 목표와 같아서 반갑습니다. 함께 노력하면 꼭 그런 사회가 오는 날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연구소는 치매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일단 치매는 내가 안 걸리고 싶다고 완벽하게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없어요. 치매에 걸렸을 때 안전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살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복지국가고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치매 걸려도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치매 환자가 지역사회에 살든지 요양시설에서 지내든지 어디서나 양질의 돌봄을 받는 서비스 패키지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치매국가책임제에서 현재 획일적인 치매 진단에만 치중하지 말고, 치매 환자들이 걸리는 질병에 대한 대책도 내놓아야 해요. 치매 환자는 통증이 없나요? 치매 환자도 폐렴, 뇌혈관 질환에 걸립니다. 다른 모든 노인이 걸릴 수 있는 병에 걸리는 한편 치매 환자는 의사소통이 어렵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말하기 어려우니 제대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전문가가 있어야죠. 그 전문가가 지역 사회에 있어야 하고 요양시설에도 있어야 하고 병원에도 있어야 해요. 그래서 맞춤형 서비스 패키지가 구비되도록 간호학적인 지식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Q. 간호법을 거부한 정부가 의대 정원 사태 국면에서 간호사의 역할 확대에 구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상식선에서 간호사가 어르신을 돌보는데 왜 법 때문에 안 되지? 하는 일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열어줘서 어르신께 필요한 서비스를 우리 간호사 통해서도 하게 해준다면 저는 간호법을 이제야 재발의한 것을 적극 수용해요. 우리 사회의 돌봄의 질이 올라가려면 한 직종의 목소리가 너무 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의사 의견이 맞을 때도 있고 간호사 의견이 맞을 때도 있고, 요양보호사 의견이 맞을 때도 있어요. 환자 옆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니까 각각이 의견을 낼 수 있고 그중에 옳은 것은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는 의사 중심의 결정이 많았어요. 왜 요양시설에서 계약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내면 안 될까요? 왜 요양시설에서 사망하실 분을 구급차 태워 응급실로 가야 하죠? 또 요양시설에서 사망하면 간호사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면에서 어르신 케어에 장애가 되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길 바라고요. 법이 현실에 맞게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끝으로 디멘시안뉴스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감명 깊게 읽은 《똥꽃》이라는 책이 있어요. 아들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에요. 치매 환자인 어머니가 변을 처리하지 못하고 벽과 바닥에 닦았는데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그게 꽃처럼 보였다는 거예요. 얼마나 사랑하면 꽃처럼 보였겠어요. 저는 이론으로 치매를 배우고 치매 환자를 돌봤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려서 돌본 경험은 없어요. 디멘시아뉴스가 치매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그분이 살아온 삶의 전체를 조명하고 공감하는 기사를 많이 선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는 이들의 진정 어린 마음을 연구자와 관련 기업가들이 느끼고 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