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해법, '나이 듦'이 아닌 '가능성'의 시대로
주거·의료·모빌리티 혁신으로 열어가는 시니어 친화 사회 구축 전략
삶의 마지막까지 '내 자리'를 지키는 힘...AIP와 치매 친화 공간의 중요성
31일, 사단법인 포럼 130+ 출범을 위한 첫 국제 심포지엄이 양재 AT센터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심포지엄은 ‘130세 시대, 실버 모빌리티의 미래와 커뮤니티 혁신’을 주제로 다양한 전문가의 발표와 토론으로 초고령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했다.
100세 시대를 넘어 130세 시대를 앞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고령화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혁신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세미나에는 주거, 의료, 건축, 시니어 비즈니스 분야의 현장 전문가와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시니어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건강과 행복을 위한 여정을 설계하고 현실화하는 방안들에 큰 관심을 보였다.
보건복지부 대변인 정호원 실장, 한국웰니스산업협회 김미자 회장이 현장에서 축사를 전했고, 계명대 동산의료원 조치흠 병원장, H+ 하노이병원 김상일 병원장, 보바스기념병원 나혜리 병원장이 영상으로 축사를 대신했다.
김경인 박사: 라이프존 구축을 통한 지속 가능한 고령자 주거 모델
기조 강연으로 환경공학자이며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를 쓴 김경인 박사가 초고령사회에서 시니어의 품격 있는 삶을 위한 핵심 개념으로 ‘라이프존’을 제시했다. 라이프존은 주거 공간, 커뮤니티, 모빌리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공간 안에 다양한 필요를 충족하는 통합적인 환경을 의미한다. 김 박사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실현하기 위해 재개발이나 재건축 시 고령자 시설을 도입하되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가 어우러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일본 히바리가오카의 재건축 사례를 통해 라이프존의 성공적인 구현 가능성을 설명했다. 이 사례는 기존 주거 시설을 리모델링해 고령자 주택과 그룹홈을 만들고 약국과 요양병원 같은 필수 시설을 신설한 것이다. 거주자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데이케어는 물론 모든 돌봄 서비스를 보장받도록 했다. 김 박사는 이러한 라이프존 모델이 130세 시대에 인간다운 품격의 삶을 영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고령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활발하게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툇마루와 같은 실내외 개방형 공간과 고령자 이동 환경에 벤치와 같은 편의 시설을 확충하는 것의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시설은 좋은데 마음은 슬픈’ 노인 주거 현실에서 탈피해 ‘자립과 존엄이 있는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자립과 존엄을 위해서는 일상생활능력(ADL, Activities of Daily Living)이 떨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문턱 제거, 안전 손잡이 설치, 침대, 자동 조명 센서, 보조 의자 등 실내 구조 개선이 요구된다. 노년층 자기 돌봄의 상징적 실천이 ‘식물 키우기’이며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 같은 요양공동체도 참고해 치매 환자도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디자인을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어려서 다니던 공간을 나이 들어서도 다니게 하고 장애인과 치매 환자가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하고 소통하면서 모든 세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공간, 즉 ‘살고 싶은 곳’이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강연은 두 개의 세션으로 나눴고, 첫 번째 세션은 ‘커뮤니티와 건강’을 주제로 3명의 연자가 발표했다.
김선국 포럼 130+ 대표: 실버 모빌리티 플랫폼의 개념과 커뮤니티 확장
포럼 130+ 대표이며, 부동산 개발 및 도시·건축계획 전문 기업 슬로우아크(Slow Ark)의 김선국 대표는 '실버 모빌리티'를 단순히 이동 수단 개념을 넘어선 '삶의 플랫폼'으로 정의했다. 김 대표는 ‘벽 없는 집, 마당 있는 삶, 햇살과 만남’ 등 시니어의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흙집이나 컨테이너 하우스, 아파트 내 공동 주거 형태, 심지어 세컨드 하우스를 통한 마지막 삶의 준비 등 다양한 주거 형태에서 시니어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다양한 거주 형태를 포괄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중규모 또는 대규모의 공동체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제시하며, 해외 성공 사례와의 연계 전략도 덧붙였다. 건축가, 의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등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에 노력하되 이익 창출보다 사회적 담론 창출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이호갑 박사(전 삼성노블카운티 상무): 실버 커뮤니티 실제 사례 통한 대안
실버복지 분야 선구자인 이호갑 박사는 노인복지 주택의 입지 조건 중요성을 강조했다. 운영자 전문성을 배제하고 하드웨어 측면만 강조한 실버주택은 실패하며, 대학병원 두 곳에 대학교 다섯 곳이 밀집한 천안 실버타운 프로젝트를 예로 제시하며 의료 및 교육 인프라의 입지 조건을 부각했다.
이 박사는 이러한 요소들을 기반으로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와 같은 등급 분류 시스템을 적용해 시니어 주거 시설 입지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면서, 실버 커뮤니티의 핵심 요소로 교통 및 쇼핑, 의료시설의 접근성을 강조했다.
남윤주 자인플러스병원 원장: 커뮤니티 병원의 역할과 스마트 헬스케어 미래
자인플러스병원 남윤주 원장은 초고령사회에서 커뮤니티 병원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발표하며, 만성 질환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 원장은 연속혈당측정기와 같은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의료진 및 가족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AI 기반의 예측 모델을 통해 만성 질환과 정신 질환자의 위험을 예측하면 전체 의료비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혁신을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과 노인의학 전문 인력 양성이 필수적이며, 정신건강의학과뿐만 아니라 노인 내과 등 다양한 분야의 다학제 팀워크를 통한 통합 돌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남 원장은 실제 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낙상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의 사례처럼 저상형 침대 보급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휠체어 접근성을 높이고 대형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시니어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 개선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커뮤니티 병원은 단순히 질병 치료를 넘어, 시니어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전반적인 건강 관리를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두 번째 세션에서 ‘실버 모빌리티의 공간’을 주제로 3명의 연자가 발표했다.
김성룡 한경국립대 교수: 치매 친화적 공간에 대한 이해
김성룡 한경국립대 디자인건축융합학부 교수는 '치매 친화적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치매가 더 이상 두렵고 낯선 개념이 아닌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노년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치매 친화 공간의 핵심 키워드로 프라이버시, 유니버설 디자인, AIP(Aging in Place), AIC(Aging in Community), 유니트 케어 등을 제시했다.
특히 AIP는 본인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자기다운 일상을 지속하고, 쓸모 있는 역할을 하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이는 시니어의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례 조사에서 125명의 고령자가 최대 20년 이상 택로소에서 안심하고 생활하며, 12.8%가 그곳에서 사망하는 등 '자기 자리'의 중요성을 밝혔다.
또한 다인실 위주의 비효율적인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의 집 분위기를 제공하는 '유니트 케어'의 한국형 모델을 시급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시니어들이 일률적인 병원 시설을 탈피해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선택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효진 케어닥 시니어 하우징 디자인연구소 소장: 홀리스틱 웰니스(Holistic Wellness), 저속노화 가능한 시니어 공간 전략
강효진 케어닥 시니어 하우징 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실버 모빌리티’를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 한정하지 않고, 피지컬(Physical), 멘탈(Mental), 소셜(Social) 환경의 연결 안에서 균형 잡힌 긍정적 자극이 유지될 때 치매 예방과 건강한 노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정의했다. 시니어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통합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시니어 돌봄과 라이프로그 데이터 수집을 통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어닥의 비전을 설명했다.
강 소장은 노인 빈곤율 통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지적하며, 실제 시니어들의 자산 여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압구정동에 자기 집이 있어도 소득이 0이면 빈곤하다고 잡히는 통계”라고 설명하며, 소득 기준으로만 산정하는 현재 통계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음을 꼬집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강 소장은 시니어 하우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케어닥은 현재 신탁사와 협업해 시니어들이 자신의 자산을 활용해 시니어 하우징을 선택할 때 좀 더 안정적으로 삶의 질을 이어가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일본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한국 역시 시니어 하우징과 관련 자산 관리 영역의 준비가 시급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따라서 시니어들이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나은 삶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소장은 고령화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다각적인 접근이 중요하며, 시니어 모빌리티와 시니어 하우징의 발전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노년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했다.
조위덕 아주대 명예교수: 스마트 실버 라이프 케어 위한 지능 공간 디자인
정보통신기술 융합과 스마트 리빙케어 분야의 권위자 조위덕 아주대 명예교수는 익숙함을 추구하는 시니어의 특징을 짚으며 한 장소에 오래 사는 것이 항상 최선인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프라이버시가 중요하지만, 내 건강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시니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현재 부자들을 위한 시니어 정책이 주를 이루는 현실을 비판하며, 일반 중산층도 접근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스마트홈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AI 연구의 자유로운 진행과 방대한 데이터 확보를 위해 동남아나 중국과 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언급하며,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의 균형에 대한 고민을 촉구했다.
조 교수는 시니어들이 익숙한 것에만 머무르기보다는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라이프 스타일 사이언스를 10년째 연구한 조 교수는 마음 챙김(Mindfulness)과 웰니스를 결합한 마인드 리빙(Mind Living)의 정밀 기술이 솔루션 검증단계로 일상 가까이 와 있다고 덧붙이며, 리빙랩 투자 등으로 더는 지체하지 않고 현실화하도록 정부에 부탁했다.
건강하고 행복한 130세 시대 위한 통합적 접근
포럼 130+ 국제 심포지엄은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 초고령사회 삶의 질과 사회적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130세 시대를 가능성의 시대로 만들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며, 초고령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세미나의 사회를 맡고 포럼 130+ 출범을 주도한 헬스케어 공간 디자인 기업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의 노태린 대표는 "주거, 의료, 모빌리티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발표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며, "단순한 담론을 넘어 정책, 기술, 산업, 문화가 융합되는 실천적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발전해 가겠다"고 방향과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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