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동포럼 온라인 개최…80여 명 전문가 참여, 일본·영국 사례 공유
장기요양보험과 지역 돌봄, 시장 논리 넘어 사회적 권리로
민간 자본 확산 속 공공성 회복, 한국 돌봄 정책의 과제
26일 줌(Zoom)으로 열린 2025년 국제 공동포럼 ‘돌봄의 금융화: 자본의 침략과 돌봄의 공공성 확보’에서는 돌봄 영역에 자본이 깊숙이 스며드는 현상을 어떻게 대처하고 공공성을 지켜낼지를 논의했다.
유코 수다 일본 도요대 명예교수와 전용호 인천대 교수가 각각 일본과 한국·영국의 사례를 발표하며 돌봄 영역의 금융화가 불러올 과제를 했다.
이번 포럼은 한국노인복지학회, 한국통합사례관리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가 주최하고, 연세대학교 BK21 사회복지예비사업단과 복지국가연구센터 등이 후원했으며, 광역치매센터, 사회복지협의회, 연구원, 학계 전문가 등 80여 명이 참여했다.
사회는 남석인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았다. 남 교수는 포럼 제목에 ‘침투’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돌봄 영역에 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준비 없이 맞으면 큰 피해로 이어지고, 한 번 무너지면 회복도 쉽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연대해 폐해를 막아내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일본의 경험: 개호보험 속 금융화의 그림자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유코 수다(Yuko Suda) 일본 도요대 명예교수는 일본 개호보험제도의 20여 년 변화를 짚으며 돌봄 시장에 진입한 금융자본의 영향과 민관협력의 과제를 제시했다. 공적 재정 기반에서 출발한 개호보험은 최근 민간 금융자본의 적극적 진입으로 서비스 다변화와 효율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불평등 심화와 비용 증가라는 부작용이 뚜렷해졌다.
유코 교수는 “대형 금융기관과 투자펀드가 노인 돌봄 시장을 새로운 수익 창출처로 삼고 있다”며, “돌봄의 금융화가 불가피하다면,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어떻게 관리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영국 비교: 공공성 확보의 교훈
이어진 발표에서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과 영국의 돌봄 시스템을 비교 분석했다. 영국은 시장주의 개혁 이후 돌봄의 민영화가 급속히 진행됐고, 그 결과 돌봄 질 저하와 인력 불안정 문제가 심각해졌다. 최근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다시 공공성을 회복하려는 ‘재공공화’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은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통해 공적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서비스 제공은 민간기관 중심이다. 전 교수는 “공적 재정을 투입하면서 민간 중심 공급 구조를 그대로 두면 공공성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영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풀어야 할 연구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더욱 구체적인 연구와 정책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우선 돌봄 시장에서 금융화가 실제로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를 면밀히 파악하는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요양병원과 장기요양시설, 실버타운이나 UBRC와 같은 주거형 돌봄 시설에 민간 자본이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점은 현장에서 체감되고 있지만, 그 구체적 실태와 영향에 대해서는 학문적 분석이 부족하다. 자본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고, 그 과정이 돌봄의 질과 접근성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 실증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공공성과 민간 효율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도 중요한 연구 과제다. 돌봄 영역에서 민간 참여를 전면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시장 논리를 그대로 두는 것도 위험하다. 공공-민간 파트너십 모델,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용한 서비스 공급 체계, 비영리 기관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 등 다양한 균형 모델이 실험되고 있으나, 한국적 상황에 맞는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한 정책 연구가 본격화돼야 한다.
아울러 취약계층 보호 장치는 한국 사회가 반드시 강화해야 할 부분으로 꼽혔다. 금융화가 심화하면 소득이나 거주 지역에 따른 돌봄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다. 특히 농촌·도서 지역과 저소득층 노인의 돌봄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는 만큼, 장기요양보험 내에서 추가적 보장성을 확보하고, 서비스 격차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돌봄 인력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금융화는 종사자의 고용 불안을 키우고 임금과 처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국에서도 요양보호사 등 돌봄 인력 다수가 불안정한 고용 구조에 놓여 있는 만큼 고용 안정화와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제도 설계 차원이 아니라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끝으로, 돌봄과 금융상품의 결합에 대한 규제·감독 체계에 대한 연구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험, 펀드, 부동산 개발과 돌봄 서비스가 결합된 신상품이 고령층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는 노인 자산을 둘러싼 새로운 금융 리스크를 내포한다. 불완전 판매와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며, 금융감독체계 안에서 돌봄 서비스가 어떤 지위를 가져야 하는지 규범적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연대 없이는 공공성 지키기 어렵다
종합토론에는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권현정 영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남원주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발표 내용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질문을 던졌다. 토론자들은 각자의 연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돌봄의 무분별한 시장화에 대한 경계 ▲지방정부 재정 책임 확대 ▲지역 커뮤니티 기반 돌봄 강화 ▲학문과 현장의 연계 필요성을 공통으로 강조했다.
이번 국제공동포럼은 학문적 담론과 함께 한국이 직면한 제도적 과제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일본의 개호보험, 영국의 재공공화 논의는 한국 사회가 장기요양제도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묻고 있다.
남석인 교수의 말처럼, 자본의 침투가 돌봄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학계·현장·정책 당국이 긴밀히 연대해야 할 시점이다. 돌봄은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권리라는 점에서,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곧 초고령사회 한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임이 이번 포럼에서 다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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