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없는 마을 ① 치매 환자가 행복하게 사는 프랑스의 랑드 알츠하이머
한국에 없는 마을 ① 치매 환자가 행복하게 사는 프랑스의 랑드 알츠하이머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1.09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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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로만 구성된 주민,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인생의 겨울을 보내다

2025년 한국은 초고령사회를 맞는다. 그에 따라 치매 환자의 급격한 증가가 예상된다. 도심 곳곳에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요양병원이 있지만, 정작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불안과 죄책감 등 심적 고통을 덜어주며 행복한 여생을 보장하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은 찾을 수 없다. 여전히 가족 간병이나 요양원 입소가 해결책이다. 특히 난감한 것은 부모님이 모두 치매이거나 더 나아가 양가 부모가 모두 치매인 경우다. 그 자녀들과 배우자의 심적 고충은 이만저만 아니다.

과거 이웃집 구성원의 밥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낸 마을 중심의 소박한 사회일 때는 마을에 치매 어른이 계시면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 배회 중이면 집으로 안전히 돌아가시도록 도왔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걱정해 주었고, 말 동무와 보호자 역할까지 대신해 주었다. 현대 사회는 잦은 이사에 아파트 중심의 개별화된 마을이다 보니 옆집에 누가 사는지 거의 관심이 없다. 소음과 담배연기 분쟁만 없으면 다행이라고 여긴다.

마을 단위로 치매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우리 사회가 주목해 봐야 할 마을이 있다. 디멘시아뉴스는 전 세계에 12개 정도 존재하는 ‘치매 마을’을 소개한다. 한국에는 없는 마을,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프랑스의 ‘랑드 알츠하이머(Landais Alzheimer)’다.

 

랑데 알츠하이머 빌리지 / villagealzheimer.landes.fr
빌리지 랑드 알츠하이머 / villagealzheimer.landes.fr

 

랑드 알츠하이머는 BBC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소개됐다. 프랑스 남서부에 있으며 마을 주민 모두가 치매를 앓고 있다. 중앙 광장에 있는 상점에서 식료품을 파는데 돈을 받지 않아 지갑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모임 장소에서 신문을 읽거나 커피를 들며 건강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눈다. 치매를 겪고 있지만 불편한 것이 없다. 극장도 있고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직원이 치매 어른과 1대1로 구성돼 있어 모든 상황에 대비가 돼 있다. 랑드 알츠하이머 마을은 치매를 겪기 전 삶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치매 어른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한다.

주민들은 쇼핑, 청소 등 자신이 해온 일상을 느긋하게 하면서 각자의 삶의 리듬을 존중받는다. 자신이 치매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게 하는 이 마을에 입소한 사람들은 인지 기능 저하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마을을 관찰하는 엘렌 아미바 교수는 “우리는 일종의 부드러운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를 이곳에 입소시킨 가족들은 죄책감과 불안감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전한다.

치매 환자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데 목적을 가진 이 마을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은 입소 비용일 것이다. 이 마을에서 지내기 위해 치매 환자 가족이 내는 돈은 일반 요양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운영비의 상당수는 프랑스 지방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마을 설립에 약 281억 원을 지원했다. 전 세계에 이런 마을이 12곳 정도 있고, 향후 치매 문제 해결책으로 랑드 알츠하이머 마을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랑드 알츠하이머 마을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이는 앙리 에마뉘엘리(Henri Emmanuelli)라는 정치인이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랑드주 주지사를 지낸 그는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을 참고해서 프랑스식으로 바꾸어 랑드 알츠하이머 마을을 기획했다.  

 

Village Landais Alzheimer / NORD Architects
빌리지 랑드 알츠하이머 / NORD Architects

 

치매 마을 프로젝트

단순 실버타운이나 복지공간을 넘는 치매 마을, 랑드 알츠하이머는 앙리 에마뉘엘리 주지사가 2013년 11월에 치매 마을 프로젝트로 제안했다. 이 마을 설립의 주요 아젠다는 의학적 접근 방식보다 혁신적, 사회적 접근 방식이다. 그 구성 요소는 ‘자비로운 건축’, ‘의료 기호 제거’, ‘맞춤화 지원’, ‘취향과 삶의 리듬 존중’, ‘사랑하는 사람과 긴밀한 관계 유지’, ‘도시 구조와 도시 생활과의 통합’ 등이다. 2020년 6월 11일에 오픈한 마을에는 60세 미만 주민 10명을 포함해 12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직원 120명, 자원봉사자 120명이 함께하고 있다. 60세 미만의 사람들을 위한 10가구가 예약돼 있으며 12세 이하가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과 임시 숙소도 갖췄다. 마을 위치는 도심과 가까운 부지로 보르도에서 1시간 15분, 파리에서 고속열차 TGV로 3시간 25분 거리로 접근성이 매우 좋다. 

 

사람 중심 지원

프랑스의 독특한 실험 마을로 알려진 랑드 마을은 환자와 간병인의 삶의 질과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일상생활, 건강, 연구 측면에서 프랑스와 유럽의 사회 복지 목표를 실현했다. 랑드 마을은 치매 주민의 인지적, 실제적 능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인간적 접근과 비약물적 접근에 초점을 맞췄다. 모든 직원은 치매에 관한 철저한 전문 교육을 받았으며 특히 환자가 좌절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환자의 심리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실제적인 치매 치료 연구 장소

이 마을에는 최고의 치료 방법을 전파하기 위한 알츠하이머병 전문가와 건강 전문가가 의료적·사회적 치료와 교육을 연구하는 센터가 있다. 치매 치료를 위한 연구를 병행하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매인에게 특화된 일상 공간의 필요뿐만 아니라 치매 치료의 신약개발과 인간적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치유의 공간이란 필요도 충족시킨다. 치료제가 없는 알츠하이머를 인류가 정복하려면 이런 마을 안에서의 연구가 가장 실제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빌리지 랑드 알츠하이머 / NORD Architects

 

치매 주민에게 최적화한 마을

마을 관리는 다양한 분야의 다재다능한 돌봄 직원들(의사, 간호사, 노인학 보조원, 심리학자, 작업 치료사, 정신운동 치료사, 애니메이터)이 맡고 있다. 행정 직원과 요리사 등 일반 서비스 직원도 정규직으로 120명이 근무한다.

전문가를 보완하는 자원봉사자는 이 마을 프로젝트에 필수적이다. 각자의 지역에서 익숙한 생활 패턴을 마을 공간에 가져옴으로써 치매 환자가 낯설어하거나 당황하는 상황을 배제하는 치료 공간을 제공한다. 마을 주민 각자는 개별 활동을 수행하거나 마을에서 제공되는 공동 인프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강당에서의 콘서트, 활동실에서의 그림 그리기, 미디어 도서관에서의 독서 등은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랑드의 문화적, 사회적 향유 활동 중 일부다.

마을의 책임자인 프랑수아즈 디리스(Françoise Diris)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습관과 노하우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항상 접촉할 사람이 있는 이런 환경이 치매 환자의 정신적 안정에 도움이 되고 실제로 약물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

 

랑드 알츠하이머 주민들 활동 모습/ villagealzheimer.landes.fr

 

친숙하고 배려하는 건축

건축은 이 마을의 전통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민들이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반의 시설을 갖췄다. 프랑스-덴마크 프로젝트 관리팀인 Champagnat & Grégoire(Landes)와 Nord Architects(코펜하겐)가 건축했으며 노인을 위한 삶이 체계화된 콘셉트로 계획했다. 기술적으로 자연 채광을 촉진하고 공간의 지속 가능을 보장하고 확장성을 염두에 두었다. 경제적 운영을 위한 디자인과 재료 및 장비를 채택해 에너지 관리, 사용자의 온열 쾌적성, 장기적인 환경 친화성과 유지면에서 탁월하도록 강점을 주었다.

 

마을의 코어, 바스티드의 공동 서비스 공간

마을 중심부에 있는 서비스 공간인 바스티드(La Bastide)는 카페, 레스토랑, 부서별 네트워크 미디어 도서관, 모두에게 개방된 강당, 연수생과 간병인을 위한 9개의 숙박 스튜디오가 있는 의료 센터, 식료품점 등을 갖추고 있다. 바스타드 1층에는 주민, 직원,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는 생활 공간과 운동 공간이 있다. 활동실, 미디어 도서관, 강당, 체육관, 미용실, 식료품점, 음식점 등은 마음껏 이용이 가능하다. 또한 의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심리학자, 작업치료사 등이 입주자의 요구에 맞는 시설(체육관, 의무실, 감각 공간 등)에서 실습을 진행한다. 1층 리셉션실은 마을 연구에 동행하는 주민이나 연구원 가족에게 임시 숙소로 제공된다.

최대 80명을 수용하는 강당은 마을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악기를 배우거나 연습하고, 콘서트를 감상하고, 연극 공연에 참여하도록 개방돼 있다. 미디어 도서관은 모든 주민에게 항시 열려 있다. 활동실에서는 주민들이 예술 활동, 음악, 스포츠 활동 등을 즐긴다. 주민들의 웰빙 또한 필수이므로 누구나 미용실에서 자신을 가꿀 수 있다. 그외 마음껏 이용 가능한 식료품과 일상용품 판매점이 있고, 직원, 자원봉사자, 주민이 함께하는 레스토랑은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가족적이고 친숙한 환경

숲이 우거진 환경에서 120명의 주민을 수용하는 4개 동네로 구성돼 있다. 모두 친숙하고 가족적인 환경을 체험하도록 설계했다. 각 구역은 고유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어 주민들이 색상, 초목, 냄새 등에서 친숙함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이의 삶의 질에 필수적이다.

 

인지기능에 도움되는 요소들

각 구역은 7~8명의 주민을 수용하는 네 가구로 구성된다. 숙소에는 공용 공간(테라스, 거실, 식당, 주방)이 있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넓은 객실은 책상, 안락의자, TV를 갖추었고 전용 욕실이 있다. 입주민의 프라이버시는 완벽하게 보호된다.

5헥타르 규모의 조경 공원 내에서 주민들은 공동 채소밭을 가꾸며 원예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미니 농장에 있는 두 마리의 당나귀를 포함해 애완동물을 돌볼 수도 있다.

이처럼 랑드 마을의 생활 환경은 인지 장애를 앓는 사람들을 위한 최적화된 구성을 자랑한다. 식물은 주민들의 시공간 위치를 파악하게 하고 감각에 좋은 자극이 되도록 돕는다. 길은 치매 주민이 식별하기 쉽게 계획해 놓았다. 울타리는 제한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러운 조경 요소를 사용했다.

 

랑데 알츠하이머 빌리지 / NORD Architects
빌리지 랑드 알츠하이머 / NORD Architects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는다. 대다수는 인생의 마지막에 치매를 겪는다. 노화와 함께하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도 자기 삶을 천천히 살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웰다잉이 될 것이다. 치매를 앓아도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고, 느긋한 삶의 리듬으로 자유와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마을을 우리도 서둘러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치매 환자 가족이 죄책감,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치매 어른 또한 자신이 살아온 생활과 부딪히지 않는 편의 공간에서 인생의 겨울을 맞는다면, 그 겨울은 즐거우면서 천천히 가는 겨울이 될 것이다. 다음은 랑드 알츠하이머 마을에 아이디어를 준 네란드 호그벡 마을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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