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간병, 끝까지 책임지지 못해 절망한 이들의 선택
치매 간병, 끝까지 책임지지 못해 절망한 이들의 선택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1.22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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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끝나는 전쟁’ 계속 방치할 것인가
대구달서경찰서 / 퍼블릭도메인
대구달서경찰서 / 퍼블릭 도메인

지난 17일 대구에서 치매를 앓던 80대 아버지를 간병하던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숨지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버지는 15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아 증상이 심해졌고 아들은 8년을 오롯이 홀로 간병해왔다. 유서에 아버지와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

이웃 주민들에 의하면 숨진 아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치매 아버지를 간병했다고 한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자라 이웃과 만날 일이 없었다. 경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방침이다.

숨진 부자는 관할 구청이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지 않았다. 간병을 하더라도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도록 돕는 돌봄 정책이 여전히 사각지대를 놓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은 ‘당사자’나 ‘가족’, ‘대리인’ 등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신청하면 건강 상태 등을 조사해 등급을 부여한다. 가장 낮은 등급인 인지 지원 등급이더라도 주야간 보호센터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지만, 사건의 50대 아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을 신청한 기록이 없다고 전한다.

달서구 관계자는 “현재까지 지역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분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한 복지 담당 공무원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면 행정 기관이 먼저 나서서 도움이 필요한 치매 환자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건강보험공단과 지자체는 현수막이나 지역 통장 회의 등을 통해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신청을 안내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편 대구에서는 지난해 10월, 뇌병변을 앓는 중증 장애 아들(39)을 아들이 태어난 후부터 계속 보살핀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는 범행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외출 후 돌아온 아내에 의해 발견돼 의식불명 상태에서 회복했다. 대구지검 형사2부는 지난 5일, 60대 아버지를 구속기소했다. 아버지는 장애로 거동할 수 없는 아들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 곁에서 식사와 목욕 등의 간병을 도맡아 왔다. 아내와 다른 가족은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작년 1월 19일 인천지법 형사12부는 38년간 돌봐온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60대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검사는 10년을 구형했으나 재판에서 경감을 받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간병살인, 간병자살에 대해 국민의 법감정은 안타까움에 기울어 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며 치매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시설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가정은 가족 간병을 택한다. 간병이 장기화되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간다. 더는 간병할 수 없을 만큼 소진되고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혹심한 절망감에 간병살인을 저지르고 동반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한다.

평생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 자녀를 돌본 부모처럼 장기간병을 하는 가족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퇴직금 등 모아둔 돈까지 다 쓰고 우울증에 시달려도 돌봄의 책임감 때문에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다. 간병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이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를 베풀기에는 복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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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간병살인으로 2006년부터 2018년 사이 213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해에 16.4명, 한 달에 1.4명이다. 간병의 한계에 부딪혀 발생하는 간병 범죄는 고령화가 큰 원인을 차지한다. 2007년에 65세 이상 인구 21.5%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매주 한 건씩 연평균 46건의 간병살인이 발생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외 3명이 2016년에 발표한 <치매노인의 증상 정도가 부양자의 자살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증상이 심해질수록 가족 관계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부양자의 자살 생각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간병살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범죄의 절반 이상이 치매 환자 가정에서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허만세 계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원이 필요한 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을 당국이 선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공공 돌봄 체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비극적 사례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사회 복지 서비스가 더 확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장은 의협신문 칼럼에 간병에 대한 법적 지원을 통해 간병인의 삶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썼다. 미국은 2006년 ‘레스핏 케어(Respite Care)’를 통해 간병을 일시적으로 다른 이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을 권리로 인정했다. 레스핏 케어는 간병 스태프를 파견받아 간병인이 병상을 떠나 수면과 휴식을 취하게 하는 제도다. 예약을 통해 야간이나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다. 병상을 일단 벗어나면 이성적으로 가족을 마주할 힘이 생겨 환자 학대와 방임을 예방할 수 있다.

영국도 2014년 간병관련법을 마련해 간병인에게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일본은 2010년 케어러(Carer) 지원 추진법안을 발의해 간병의 책임을 국가가 담당하고, 지방 공공단체는 지역 실정에 맞춘 제도를 시행하며, 기업은 임직원이 업무와 간병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고 있다.

생명이 최고의 가치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간병인이 될 수 있다. 간병살인과 간병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심한 고통이 나를 비껴가리란 법이 없다. 인간적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과 더는 돌봄의 책임을 다할 수 없는 간병 피로로 절망한 보호자들을 누가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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