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그리움과 현재의 어려움 사이에 살아가는 돌봄 보호자들
엄마가 넘어지셨다. 다급한 목소리다. 일단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시라고 했다. 달려가는 내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 댁에 갔더니 무척 두려운 표정으로 계셨다.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지르시는 엄마의 상태,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내 차로 움직이려고 하니 화장실에서 아파트 현관까지도 이동이 어려웠다. 가족들이 놀라서 모두 모였고 세 명이 엄마를 부축해 어떻게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아니, 어른 세 명이 노인 한 분을 부축 못하나? 결국 119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아파트 좁은 현관에 과연 들것이 들어올까? 전문가들은 역시 다르다. 신속하게 환자를 들것에 옮기고 구급차에 태운다. 삐뽀삐뽀…. 구급차 달려가는 소리만 들어도 떨렸던 내가 엄마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세상을 본다.
엄마의 상태는 아주 최악은 아니었다. 고관절 골절이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도 치골에 금이 가서 통증은 엄청나지만, 수술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환자 본인의 감금 생활이 시작되었다. 1주일 입원 후 퇴원 명령이 떨어졌는데, 집으로 모시기에는 너무 무섭고 불안한 상황이라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수소문했다. 나는 SBS에 있을 때 노인 프로그램 전문가로 알차고 유익한 방송을 해왔다. 노년층에게 용기와 희망을 드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건강관리와 식이요법, 운동과 생활의 지혜 등을 전하면서 행복한 노년의 모습을 실천하도록 정보를 드렸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넘어지시고 보니 나의 멘탈은 무너졌고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요양병원은 노인들 천지였다. 그것도 골절로 인한 환자들이 이 방 저 방에 누워 계셨다. 복도를 돌며 연세를 살펴보니 74세부터 92세로 기록돼 있다. 아…, 무서운 현실이다. 노인 낙상과 안전에 관한 자료를 보면 낙상 노인 네 명 중 한 명이 집에서 겪는 사고다. 소파에 걸려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욕실에서 나오다가, 작은 문턱에 걸려서 등 어이없이 발생하는 낙상사고는 모두 고령자들에게는 위험 요소다. 사고로 인한 손상 부위는 머리와 뇌, 무릎, 엉덩이, 허리 순이다. 노년에게 필요한 것은 저금통장이 아니라 근력통장이라는 말도 있듯이 관절염이나 혈압약의 장기 복용, 기립성 저혈압, 빈혈 등 다양한 이유의 낙상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엄마를 일시적으로 요양병원에 모신 뒤 나와 동생은 매일 병원을 오가면서 상태를 살폈다. 한번 낙상하게 되면 그것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노인들의 근력은 빠르게 약화되고 장기간 침상 생활을 하는 경우에 근육 소실이 가속화된다. 낙상 후 정상으로 뼈가 회복되기까지 원치 않는 입원 생활에 재활 관리가 필요하다. 요양병원은 전문 의료 인력이 상주하고 치료가 목적이므로 입원비의 일부를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받고, 요양원은 노인의 일상 돌봄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노인장기요양등급의 시설등급을 받아야 입소가 가능하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는 언제 퇴원하냐고 자주 물으신다. 하루가 그만큼 길고 지루하다는 얘기다. 책을 읽기에는 눈이 어둡고 총기도 예전 같지 않아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시는 우리 엄마를 보면 안타깝다. 젊었을 때 깔끔하기로 이름난 여름날의 하얀 도라지꽃 같던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뽀얗고 하얀 피부에는 어느덧 검버섯이 늘어간다.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무료함을 달래는 데는 놀이가 최고다. 92세의 우리 엄마 박 권사님은 신앙이 좋으시지만 의외로 젊었을 때 화투도 즐기신 기억이 났다. 고도리같이 어려운 것은 못하지만 재미로 가족들과 민화투 놀이를 하며 광 팔고 똥 팔던 기억이 났다. 찾아보니 치매 예방에 좋은 어르신용 화투가 있어 그것을 사 들고 엄마에게 갔다. 병실에서 엄마와 화투 그림 맞추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맞추고 틀리며 웃었다. 대형 화투 맞추기 게임에는 뒷면에 색칠하기도 있어 어르신들의 손동작 운동에도 활용하면 좋겠다.
일정 기간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신 보호자로 나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나누고 싶다. 요양병원에는 1인 간병인과 공동 간병인이 있다. 환자의 보호자는 간병인과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보청기를 착용하는 어르신들은 답답해서 보청기를 통에 넣지 않고 빼둘 때가 많다. 식사 후 배식판을 갖다 놓을 때 혹시 그 작은 보청기가 빠져 있는지 확인할 것, 기저귀를 갈고 버릴 때도 한 번쯤 보청기가 떨어져 있지 않은지 점검할 것, 함께 생활하는 다른 환자와 칫솔이나 수건이 바뀌지 않는지 늘 점검할 것, 오래 침상에 누워 있으니 배변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드릴 것 등등. 이런 주의 사항을 나는 미리 간병인과 상세히 나누지 않았다. 그분들도 고생이 많은데 불필요한 잔소리 같았다.
다 알아서 전문적으로 해주시겠거니 생각했는데 문제가 일어났다. 엄마가 병원에서 보청기를 분실하고 만 것이다. 보청기에 다리가 달린 것도 아니고 찾으면 나오겠지 했지만 5일이 지나서도 찾지 못했다. 엄마는 매일 전화로 하나로 안 들려 답답하다고 말만 하시고 전화를 툭 끊는다. 보청기가 싼 것도 아니고 본인의 귀에 맞게 맞추려면 몇 번 보청기 판매점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엄마는 지금 이동 불가 상태다. 난감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병원 측과 간병인에게도 섭섭한 마음이 크다. 미리 서로 이런 부분은 체크해서 사고를 방지하기를 바란다. 또한 보청기 분실 방지 끈도 있으니 준비해 두는 것도 좋겠다.
엄마가 집으로 오실 것을 대비해 제일 먼저 화장실에 안전바를 설치했다. 변기 옆에 놓는 안전 손잡이도 구입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있으니 정말 도움이 된다. 안전바 네 개 설치에 비용이 3만 원도 안 들었다. 욕실 타일 깨질까 봐, 미관상 보기 싫어서, 설치를 미루는 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기를 바란다. 설치 기사의 솜씨가 좋아서 타일에 전혀 손상이 없었다. 엄마 집에 진작 이렇게 준비해 놓았다면 이런 고생과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병원비 많이 들고 몸고생하고 마음 속상하고 괴로운 나날이다.
요즘 내 또래 친구들의 삶이 다 그렇다. 연로하신 부모님 돌봄 걱정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먼저 돌봄 숙제를 끝낸 자유로운 고아들은 조언한다. “너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줄 알아! 나중에 얼마나 그립다고….” 미래의 그리움과 현재의 어려움 사이, 나는 여기서 산다.
유영미
전 SBS 아나운서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재학 중
현 사단법인 한국아나운서클럽 사무총장
SBS 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27년 진행
<SBS 뉴스와 생활경제> 최장기 앵커
《두 번째 청춘》(나이 들수록 더 행복하고 더 우아하게 사는 법) 지음
- [유영미 칼럼] 은퇴하고 싶은 여자들
- [유영미 칼럼] 누구를 위하여 스마트한 제품들이 있는가
- [유영미 칼럼] 내가 재미있게 사는 이유
- [유영미 칼럼] 여론조사 유감
- [유영미 칼럼] 나에게 쓰는 편지, 유쾌한 영미 씨에게
- [인터뷰] 아름답게 나이 드는 시니어, 유영미 전 SBS 아나운서
- 낙상사고 위험을 줄이는 9가지 방법
- [현장] 치매케어학회, ‘치매인을 위한 사례관리 실천의 이해와 적용’ 아카데미 열어
- 보청기가 인지 기능 저하 위험 낮춘다
- [인터뷰] 또 하나의 가정 ‘숨’과 ‘쉼’의 공간, 함춘너싱홈 최종녀 원장(下)
- [유영미 칼럼]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 [유영미 칼럼] 이제는 리-타이어(Re-tire) 시대
- [유영미 칼럼] 심각하고 지루한 건 재미없잖아요
- [유영미 칼럼] 쉿! 비밀이야
- [유영미 칼럼] 가을이다 홍시가 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