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가족의 고통스러운 굴레, 간병비 문제 해결될까?
중환자 가족의 고통스러운 굴레, 간병비 문제 해결될까?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12.20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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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와 간병비 개인 부담 지원책 발표

중환자 보호자에게 가장 큰 부담은 간병비다. 윤석열 정부는 ‘간병 지옥’이라는 표현을 쓰며, 간병비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1일 발표 예정이다.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우리나라는 치매, 뇌출혈 등 뇌질환 환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낫지 않는 병이면서 오랜 간병 기간을 요하다가 점차 식물인간 상태로 악화돼 부주의한 간병으로 욕창에 걸리고 폐렴 동반으로 사망하는 케이스가 많다. 이런 가정재난의 현장에서는 누가 간병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비용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뇌출혈 가족이 모인 카페에 올라오는 가장 큰 고민이 간병 갑질이다. 간병인을 구하기도 어렵고 약속된 금액보다 웃돈을 주고도 수시로 팁을 요구한다. 게다가 간병인 대부분은 중국에서 온 미숙련 인력이 맡는다. 환자에 대한 사명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외국인 노동자가 간병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거동을 거의 못하고 기관절개 석션을 해야 하는 와상환자의 경우 간병비는 부르는 게 값인데다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식대를 별도로 청구하는 건 기본이고, 환자의 덩치가 크다며 웃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루 평균 일당은 13∼15만 원으로, 한 달이면 400만 원을 훌쩍 넘어 평균소득 중하위권 보호자는 감당하기 힘든 지출이다. 이렇다 보니 중환자 입원 병실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24시간 간병에만 매달리는 보호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오랜 기간 중환자를 간병하다가 ‘간병 자살’을 택하거나 ‘간병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뉴스에 빈번하게 나온다. 적극적인 존속 살인이 아닌, 환자 방치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 간병 부담 경감을 위해 보건복지부와 관계부처가 조속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또 “간병 문제는 단순히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 가능한 간병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시행 중이다. 보호자 없는 병원, 즉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한 팀이 되어 환자를 돌봐주는 서비스다. 간병인이나 가족 대신 간호사가 중심이 돼 간병과 간호서비스를 제공한다. 간호사가 입원 병상의 전문 간호서비스를 24시간 전담하고,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와 함께 보조 역할을 수행해 개인적으로 간병인을 두거나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지 않고도 입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다.

2013년 7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시행된 포괄간호서비스 시범사업에서는 하루 평균 7~8만 원의 간병비가 소요됐다. 그러나 2015년 1월부터 포괄간호서비스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이 시행되면서, 하루 간병료가 약 5,000원으로 줄어들었다. 포괄간호서비스의 명칭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로 바뀐 것이 2016년 4월 1일이다.

이러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시행되지 않는 병원이 많은데다, 그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고가의 개인 혹은 공동 간병인을 구해야 한다. 시행 병원이어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구분이 명확하지 않거나, 환자가 라면을 끓여달라는 등 규정에 없는 서비스를 원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보호자 또는 간병인 없이 간호사·간호조무사가 24시간 입원환자를 전담하려면 환자의 중증 정도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또한 보호자가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을 도리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판단해 이 서비스를 받지 않으려는 가족도 있다. 아직은 여러 이유로 대형병원 중심으로 시행하는데다 참여 중인 상급종합병원 등도 일부만을 통합서비스 병동으로 운영하고 있어 환자 수요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2021년 서울대 간호대 김진현 교수가 학술지 <보건경제와 정책연구>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유급 간병비와 가족 간병비를 합산한 사적 간병비는 2018년 기준 6조 9천억~8조 원 규모로 추정했다. 요양병원은 매년 입원환자의 72~84%가 사적으로 간병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상급종합병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김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 충분한 간호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참여기관 및 병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통합서비스병동의 입원환자 선정을 의료기관 자율에 맡겨 “치매나 섬망환자 등 많은 손길이 요구되는 환자는 일반병동에서 1:1 돌봄이 가능한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상대적으로 일상생활 의존도가 낮은 환자는 통합병원에 입원시키는 역선택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 4월 제2차 간호인력 종합지원대책 발표 당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개선 방안을 상반기에 내놓겠다고 했으나 지연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7월 총파업 당시 ‘간병비 해결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를 요구사항 중 하나로 내걸기도 했다.

 

언스플래쉬 제공
언스플래쉬 제공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실시되지 않는 일반 병동의 간병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간병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천 명 중 75.5%는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요양병원 간병비가 급여화할 경우, 연간 본인 부담금은 현행 1천800만∼2천300만 원에서 380만∼830만 원까지 낮아질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간병비 규모는 2014년 6조8천억 원에서 2018년 8조 원으로 늘어났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간병 수요 증가를 생각하면 간병비 지출은 연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간병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이 막대한 비용을 건보 재정이 감당해야 한다. 간병비 급여화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서도, 지속 가능한 제도를 위해서는 요양병원의 역할과 기능 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20일에 “정부가 전액 삭감한 요양병원 간병비 시범사업 예산을 복원시키도록 하고, 간병비의 건강보험 급여화 또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급증한 간병비 부담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며 “간병 파산, 간병 실직, 심지어 간병 살인 같은 비극적인 일까지 벌어진다. 이제 국가가 국민을 잡는 간병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는 윤 대통령 공약 사업이라며 국민을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하며, ‘총선 1호 공약’으로 공식화했다.

복지부도 지난 4월부터 요양병원 간병지원(급여화) 모델 개발 목적으로 전국 요양병원 실태조사를 진행해 왔다. 이르면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통한 지원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보 급여를 적용할 경우 연간 10조 원 이상의 재정이 소요된다며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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