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기반 바이오마커 기술 비약적 발전...접근성 좋아 대중화 전망
AA, 바이오마커만으로 진단 가능...조기 투여 시 레켐비·키선라 효과 극대화
IWG, 양성 판정 후 무증상자 대다수 치매 없어...심리적·사회적 부담만 커질 것

NIH, flickr
NIH, flickr

 

최근 학계와 산업계에서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알츠하이머병 조기 진단에 상용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되는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식별과 진행 예측이 혈액 검사만으로 가능할 수 있다는 것.

뇌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A-PET)과 같은 영상 진단은 병원을 오가는 불편함이나 신체적 부담이 따르는 동시에 비용도 비싼 편이어서 환자의 부담이 적지 않다. 반면에 혈액 진단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어 빠르게 대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알츠하이머병은 질병의 특성상 빨리 발견될수록 환자의 치료 기대 효과가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제대로 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질병 초기 단계에만 쓸 수 있는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 Lecanemab)’나 ‘키선라(Kisunla, 성분명 도나네맙 Donanemab)’ 등 아밀로이드 베타(Aβ) 항체 치료제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 기술이 수반돼야 한다. 향후 혈액 진단 솔루션의 잠재성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항아밀로이드 신약을 개발한 다국적 제약사들은 특정 바이오마커가 발견되는 전임상(preclinical) 알츠하이머병 단계에서도 치료제를 사용하기 위해 현재 임상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다.

반면에 알츠하이머병 관련 학계에서는 혈액 검사와 같이 접근성이 좋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무분별한 진단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알츠하이머협회(AA) 로고 / AA 홈페이지
미국 알츠하이머협회(AA) 로고 / AA 홈페이지

 

이달 초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국제실무그룹(International Working Group, IWG)은 새 진단 기준을 발표하면서 생물학적인 접근 방식인 바이오마커 양성 여부로 무증상인 이들을 질병이 있다고 분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링크)

IWG는 이들을 알츠하이머병 발병군으로 보지 않고 ‘무증상 알츠하이머병 위험군’으로 따로 정의했다. 바이오마커와 더불어 임상적 증상도 함께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염색체 우성 유전적 변이가 있거나 다운증후군 환자, APOE ε4 동형접합형 보인자 등 ‘진행 위험성이 거의 결정적이고 매우 높은 특정 바이오마커 패턴이 나타난 무증상자’의 경우만 ‘전(前) 증상 알츠하이머병’으로 분류했다.

이는 앞서 올해 초 알츠하이머협회(AA)가 발표한 새 진단 기준과 부딪힌다. AA는 이번 발표에서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정의를 임상적 증상에 기반하지 않고 ‘생물학적(Biological)’으로만 내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즉, 인지 기능이 정상으로 무증상인 이들도 아밀로이드 베타(Aβ42/Aβ40)나 인산화 타우(p-tau) 등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에서 비정상인 부분이 발견된다면 질병이 있다고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집단의 논쟁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개발 방향과 효과 분석에 큰 분기점을 만들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긍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면서 AA 입장인 아밀로이드 캐스케이드 가설을 근거로 한 생물학적 결정론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수십 년 동안 아밀로이드 캐스케이드 가설 연구에서 축적된 결과를 토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레켐비가 그 결실이다. AA의 입장은 곧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 제거를 통해 바이오마커 개선 효과를 내는 레켐비가 서 있는 지점이다.

또 알츠하이머병 조기 진단 기술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이와 함께 레켐비가 전임상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쓰인다면 효과가 더 극대화될 수 있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임상적 증상에 기반한 진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진도 치료를 늦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

 

이에 맞서 IWG는 여전히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기전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바이오마커만으로 임상적 증상과 관계없이 질병을 정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바이오마커가 발견된 무증상자의 대다수가 사망할 때까지 인지 장애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근거다.

나아가 인지 기능이 정상이면 일상적으로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 검사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인지 장애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로 분류돼 ‘낙인’이 찍힐 경우 개인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스트레스나 사회생활 속 어려움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달 알츠하이머병 인터내셔널(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 ADI)이 발표한 ‘세계 알츠하이머 보고서 2024: 치매에 대한 글로벌 태도 변화(World Alzheimer Report 2024: Global changes in attitudes to dementia)’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치매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5년간 일부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치매 환자에 대한 심각한 낙인(stigma)과 차별(discrimination)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관련 기사 링크)

이에 더해 혈액 바이오마커 검사가 대중화돼 의료진의 개입 없이 사용될 수 있다면 치매 증상이 없는 이들에게 앞으로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공포감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또 단지 바이오마커 양성이라는 이유로 알츠하이머병 예방을 위한 항아밀로이드·항타우 약물 등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사회적 부담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키스 보셀(Keith Vossel) UCLA 신경과 교수 / UCLA 헬스 홈페이지
키스 보셀(Keith Vossel) UCLA 신경과 교수 / UCLA 헬스 홈페이지

 

한편, 지난 10일(현지 시간) LA 타임스에는 IWG의 새 가이드라인을 뒷받침하는 키스 보셀(Keith Vossel) UCLA 신경과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다.

보셀 교수는 이번 기고문에서 “조기에 자주 검사하고 바이오마커만으로 1기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는 의사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이러한 분류는 환자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할 수 있고, 환자가 유지하고자 하는 삶의 질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불필요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상시험 후보자는 임상 현장에서의 혈액 검사 양성 반응이 아니라 적절한 상담과 공개 프로토콜이 있는 신중하게 수행된 연구 조사를 통해 확인돼야 한다”며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 검사를 받는 80세 이상 중 40% 넘게 양성 반응이 나타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최악의 시나리오에 집착하며 걱정과 두려움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짚었다.

또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 암을 진단하는 것과 같다”며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 절반이 일종의 우울증이 있으며, 자신이 걸렸다고 생각하거나 걸릴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혈액 바이오마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면 MRI, PET 스캔, 척수액 검사 등 불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절차를 거쳐 정신적, 재정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많은 경우 운동, 충분한 휴식, 건강한 식습관과 같은 간단한 생활 습관 변화만으로도 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인지 증상이 없는 경우 임상 관리에 아무 변화가 없다. 예방 시험과 알츠하이머병 예측 바이오마커가 개선되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그동안 의사들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Do no harm)’는 선서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을 과잉 진단하고 불필요한 불안을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기사 참고

https://www.latimes.com/opinion/story/2024-11-10/testing-alzheimers-bioma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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