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블랙수면방, 블랙박스, 블랙박스 경고
[곽용태 칼럼] 블랙수면방, 블랙박스, 블랙박스 경고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 승인 2020.05.18 09:4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최신 치매 논문 내 마음대로 읽어 보기(3)

- 블랙수면방, 블랙박스, 블랙박스 경고

제목: 치매를 가진 노인 환자에서 항정신병 약물 사용에 대한 미국 식품 의약국 박스 경고와 건강상태의 연관성(Association of the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Antipsychotic Drug Boxed Warning With Medication Use and Health Outcomes in Elderly Patients With Dementia)1)

저자: Rubino A, Sanon M, Ganz ML, Simpson A, Fenton MC, Verma S, Hartry A, Baker RA, Duffy RA, Gwin K, Fillit H.

결론: 2005년 미국 식품 의약국에서 나이든 치매 환자에게 항정신병 약물 사용에 대해서 박스 경고를 하였는데 이후 몇몇의 예기치 않았던 부정적인 결과가 있었다.

논문명; JAMA Netw Open. 2020 년 4월 1;3(4):e203630.

곽용태 효자병원 신경과장

서울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강남 소재 블랙수면방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져 강남구 방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10일 강남구청에 따르면 경기 안양시와 양평군 확진자는 지난 4일 오전 0시 30분부터 5일 오전 8시 30분까지 서울 신논현역 근처 사우나인 블랙수면방을 방문했다. 블랙수면방은 '찜방' 등으로 불리며 남성 동성애자들이 익명의 상대방과 성행위를 갖는 공간으로 알려졌다. 방문자들은 주로 현금을 사용하고 영업도 어두운 장소에서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에 대한 명단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19] 이태원클럽→'블랙수면방'…강남구 방역 초비상2020년5월 10일 뉴스핌 기사 중

좀 잠잠해진 것 같았던 코로나 감염 발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종교시설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클럽이나 성소수자의 특이한 행동 때문에 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뉴스에서 이들이 블랙수면방을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 듣는 아주 생소한 이름입니다. 블랙수면방이라는 이름은 실내가 엄청 어두워서 이렇게 지어졌다고 하며 남성 동성애자들의 전용 휴게텔이라고 합니다. 어둡다는 것은 그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점주는 입장료만 받을 뿐 안에서 무슨 일이 있든 방관한다고 합니다. 블랙방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를 제 3자가 추측 할 수 있는 것은 들어갈 때 동성애자의 표정과 나올 때 동성애자의 표정으로서 좋은 일이 있었는지 나쁜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학, 컴퓨터학, 공학 등에서는 블랙은 보통 블랙박스나 블랙시스템 등에 사용되어집니다. 이것은 입력값과 출력값만을 알지 왜 이렇게 되는지는 전혀 모르는(알려고도 하지 않는) 장치나 시스템을 이야기합니다. 인문과학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지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블랙박스라고 생각합니다. 인식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객관적이고 계량화가 가능한 자극(입력값)과 반응(출력값)만을 연구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과정은 생략된 채로 본질에 바로 다가서는 아주 실용적인 접근법입니다. 즉 블랙의 의미는 과정을 모른다(알 필요가 없다), 혹은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에도 블랙박스가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한마디 말이 덧붙습니다. 블랙박스 경고(black box warning)입니다. 이것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일반인이나 의료 종사자가 약이나 의료기계를 사용할 때 심각한 위험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에 써 놓은 경고문입니다. 원래는 제조사마다 각 약의 일반 설명서에 통상적으로 부작용을 써 왔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FDA가 부작용이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각 제약회사에게 약 봉투나 설명서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장 크게 검은색으로 박스를 치고 의무적으로 경고문을 쓰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블랙박스 경고라고 합니다. FDA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보내는 가장 큰 경고 조치이지요. 하지만 이 경고는 일반인만 보기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을 처방하는 의사, 조제하는 약사 역시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조심을 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실질적인 의료 현장에서는 엉뚱하게 의료진이 일반인보다도 다양한 이유로 이것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2)

치매 환자의 대부분은 병의 진행과정 중에 다양한 신경정신병 증상(neuropsychiatric symptoms)이 나타납니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망상이나, 공격성, 조증 등의 양성 증상입니다. 굉장히 심한 경우가 많아서 환자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줍니다. 증상이 심각해지면 항정신병 약물이라는 약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지만 이 약들은 다양한 부작용이 동반됩니다. 특히 상당수의 환자에서는 추체외로 증상이라는 손발이 떨리고 몸이 굳는 신경계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특히 뇌의 복합병변이 많은 노인 치매 환자에서는 젊은 정신과 환자보다도 부작용이 훨씬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던 중 1990년 대부터 약효는 좋아졌으나 획기적으로 신경계 부작용을 줄여줄 수 있다고 하는 비전형성 항정신병 약물이 개발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비전형성 항정신병 약물에 대해서 열광하였습니다. 저도 환자에게 매우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과거 전형적인 항정신병약에 비하여 효과가 더 좋고 부작용이 더 적은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비전형성 항정신병 약물을 사용하였던 환자에서 사망, 뇌졸중, 심혈관계 질환과 같이 치명적인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쏟아지게 됩니다. 급기야 미국 FDA 에서는 2005년부터 이들 약에 대해서 블랙박스 경고를 하게 됩니다. 저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잘 써왔는데, 이제 와서 다른 약으로 바꾸어서는 잘 조절 안될 것 같은데, 이렇게 위험한 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환자의 보호자에게는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등등…. 이후 어렵지만 환자에게 부작용이 덜 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여러 방법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최근 며칠전에 이 논문과 마주쳤습니다.

이 논문은 2005년 블랙박스 경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논문입니다. 이 연구는 population-level interrupted time-series analysis (ITSA) 라는 통계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ITSA 라는 어떤 특정 시점, 예를 들어 법률제정이나 획기적인 치료법 개발 등이 생긴 후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는 통계 기법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비전형성 항정신병 약물이 FDA 블랙박스 경고를 받은 2005년 시점 후 10년 정도 지나서 과연 환자들의 건강 지표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진짜 좋아졌는지)를 보려는 연구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결론은 뇌졸중과 낙상의 위험성은 감소된 반면, 마약 및 항전간제(항간질제), 심혈관 질환, 2년 사망 위험률은 증가하였습니다.

결론은 좋아진 것도 있고 나빠진 것도 있다 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전에 대부분 건강지표의 위험성을 보고한 연구가 맞는지 아니면 이 연구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실험실적인 조건(예를 들어 무작위 코호트 연구와 같은)과 실제 세상(real world)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집값을 잡겠다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규제를 만들면 풍선효과로 돈은 곳곳으로 돌아다니며 다른 집값을 교란합니다. 즉 돈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모든 거래를 허가제로 하지 않는 한 실제 세상은 실험실 조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동장애가 너무 고통스러운 환자나 가족에게 쉽게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약을 온갖 무서운 말로 경고하면 뚜렷한 대안이나 치료제가 없는 의사들은 이들 요구에 맞추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 논문에서 2005년 이후 노인 치매환자의 처방에서 항전간제나 마약 사용의 증가는 아마도 비전형성 항정신제의 대체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결과 항정신병 약물이 아닌 다른 약의 사용 증가가 전체적인 환자의 부작용이나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것이지요. 예를 한가지 더 들면 2003년부터 2004년 사이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어서 FDA 에서는 항우울제에 대해서 대대적인 블랙박스 경고를 시행하였습니다. 이후 항우울제 사용량이 급격히 감소하였습니다. 즉 꼭 항우울제 치료를 받아야 되는 우울증 환자조차도 항우울제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우울증에 의한 자살 시도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3)

지난 20년동안 제가 환자나 동료 의사 들에게 항정신병 약물 사용을 줄이거나, 바꾸라고 하였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논문입니다. 가장 잘 된 연구에 의해서 확실하다고 써 놓은 경고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모호해진 경우이지요. 결국 제가 이 논문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블랙박스 경고의 블랙의 의미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세상을 모른다는 의미의 블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블랙수면방, 블랙박스시스템, 블랙박스 경고 이 모든 것이 검기 때문에 바로 눈에 띄는 것 같지만 시커먼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20년 동안 속았다. 세상 믿을 놈 없다 입니다.

사족. 예전에 아주 나이 드신 노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매우 고루한 치료만 하는 것 같은데 명의라고 소문이 나서 환자가 항상 줄을 서고 대기하십니다. 반면 최신 교육을 받고 패기 만만한 저에게는 환자도 없고 치료 결과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때는 의약 분업 전이라서 이 선생님이 어떤 약을 사용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또 약국에서도 선생님의 엄명이 있어서 절대 선생님의 처방전이나 약을 공개하지 않아 무슨 약을 쓰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매우 궁금하였습니다. 밤에 당직 서면서 몰래 약국에 들어가 장부를 보고 비밀을 알았습니다. 저랑 똑같은, 아니 더 옛날 구닥다리 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임상 결과가 차이가 날까요? 저는 병을 치료하였고, 이 선생님은 환자를, 즉 좀 더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진짜 세상을 치료하여서 그랬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고 문헌
1. Association of the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Antipsychotic Drug Boxed Warning With Medication Use and Health Outcomes in Elderly Patients With Dementia.  Rubino A, Sanon M, Ganz ML, Simpson A, Fenton MC, Verma S, Hartry A, Baker RA, Duffy RA, Gwin K, Fillit H. AMA Netw Open. 2020 Apr 1;3(4):e203630
2. FDA drug prescribing warnings: is the black box half empty or half full?  Wagner AK, Chan KA, Dashevsky I, Raebel MA, Andrade SE, Lafata JE, Davis RL, Gurwitz JH, Soumerai SB, Platt R. Pharmacoepidemiol Drug Saf. 2006 Jun;15(6):369-86. doi: 10.1002/pds.1193.
3. Changes in antidepressant use by young people and suicidal behavior after FDA warnings and media coverage: quasi-experimental study. Lu CY, Zhang F, Lakoma MD, Madden JM, Rusinak D, Penfold RB, Simon G, Ahmedani BK, Clarke G, Hunkeler EM, Waitzfelder B, Owen-Smith A, Raebel MA, Rossom R, Coleman KJ, Copeland LA, Soumerai SB. BMJ. 2014 Jun 18;348:g359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용설 2020-05-19 11:28:24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