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은 “얼마나 자족하며 안정감을 느끼느냐”에...
장자 제17편 추수(莊子 第17篇 秋水)에 따르면 봉황(鳳凰)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非梧桐不止),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非竹實不食), 달디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非醴泉不飲)고 했다. 봉황의 먹이가 대나무 열매인데 대나무가 많은 담양에 가면 봉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된다.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번개처럼 휘리릭 약속을 잡아 대나무 숲을 보러 담양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깔깔댄다는 소녀들 부럽지 않게 신중년의 세 아줌마는 여행 내내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깔깔대며 사오십 년을 훌쩍 돌아가 낭랑(朗朗) 신중년이 되었다.
담양에 도착하자마자 대통밥으로 허기진 배를 맛있게 채우고, 서둘러 죽녹원에 갔다. 울창하고 빼곡히 늘어선 대나무 숲을 거닐며 그렇게도 깔깔대던 우리는 점차 말이 느려지고 자연스레 자연 속에 스며들었다. 대나무에 바람 스치는 소리에 몸과 마음을 맡기니 아무 생각도 없고 편안했다. 명상이 별거인가? 온전히 대나무 숲 한복판 바람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는 마음 챙김이 저절로 되었다.
비록 봉황은 아니더라도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동화 《파랑새》 속 남매가 찾아다니던 파랑새가 이 대나무 숲에 살 것 같았다. 대나무 숲속에 앉아 마음의 평온을 찾으니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밤이 되면 깜깜한 저수지 옆길을 운전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에 서둘러 숙소를 향했다. 숙박업소가 아니라 한옥을 살려 깔끔하게 개조한 지인의 별장이다 보니 멀리 집 한 채가 보일 뿐 한적했다. 라면과 새우깡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한바탕 낭랑 모드로 돌아가 수다를 떨다가 각자 잠이 들었다. 낮에는 자연의 소리로만 채워진 조용함이 마음을 치유하더니만, 어둠이 내리니 적막감이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역시 나는 시끌벅적한 도시가 편안한 도시 쥐인가 보다.
100세 시대, ‘시골 쥐와 도시 쥐’가 찾아낸 ‘파랑새’
어린 시절 많이 듣던 이솝우화 중에서 《시골 쥐와 도시 쥐》가 있다. 시골 쥐가 도시 쥐를 집으로 초대해 소박한 음식을 대접하지만, 도시 쥐는 불만스럽다. 도시 쥐는 시골 쥐를 도시에 초대해 화려한 음식을 보여주지만,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때문에 위험한 상황을 겪는다. 시골 쥐는 겁을 먹고 도망치며, 편안한 시골 생활이 더 좋다고 느낀다. 이 이야기를 읽어주는 어른들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고, 자신도 전원생활을 동경할지도 모른다. 그럼, 정신적인 풍요를 누리는 시골 쥐가 서울 쥐보다 오래 살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지역별 기대수명의 수치와 건강지표를 찾아보았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 도시 사람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까?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지역사회건강조사 2024년 결과 발표’ 보도자료에 의하면 고혈압과 당뇨병 진단 경험률은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하며 지역 간의 격차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건강지표가 있지만 노년의 건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고혈압과 당뇨에 대해 비교해 보자. 고혈압 진단 경험률의 경우 상위 3순위에 들어간 지역은 강원 삼척시(29.5%), 전남 신안군(28.7%), 강원 고성군과 경기 동두천시(28.5%)이고, 하위 3순위 지역은 경기 과천시(15.5%), 경기 성남시 분당구(15.7%), 서울 용산구(15.8%)다.
당뇨병 진단 경험률의 경우 상위 3순위 지역은 전북 순창군(15.0%), 충남 부여군(13.7%), 인천동구와 전남 신안군(13.6%)이고, 하위 3순위 지역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5%), 대구 수성구(5.7%), 서울 송파구(5.8%)다. 이 순위는 과밀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고혈압과 당뇨에 대한 건강지표가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사람들이 더 만성질환에 취약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기대수명도 비교해 보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별 기대수명지표(2023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전국 평균 81.59세로 나타났다. 대도시 수치를 살펴보면 서울 84.69세, 부산 83.79세, 대전 84.61세, 대구 84.37세, 인천 84.13세, 광주 84.33세, 울산 83.81세, 세종 85.38세 등 대도시는 대부분 84세를 훌쩍 넘는다. 반면에 군 단위 지역은 83세 전후의 수치를 보인다.
강원도만 따로 비교해 보면 강원도 기대수명의 전체 평균은 83.58세이고, 시 단위 지역을 보면 춘천시 84.3세, 강릉시 83.88세, 원주시 83.95세, 속초시 83.4세 등 84세에 가까운 수치를 보인다. 반면 군 단위 지역은 고성군 82.86세, 홍천군 82.87세, 횡성군 83.1세, 영월군 82.88세, 정선군 82.18세 등 82세에서 83세 초반을 보인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지방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에 대해 한국환경정책학회에서 발행한 논문 <건강도시 구성요인이 도시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도시는 의료 및 건강 관리 서비스 접근성이 좋고 운동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건강 유지에 유리하다. 하지만 공해와 소음이 많아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경제적 기회가 많지만, 경쟁과 높은 생활비로 인한 부담도 존재한다. 지방은 자연환경이 풍부하고 공동체 문화가 강해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낮은 단점이 있다. 결국, 건강은 거주 지역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 방식과 사회적 지원에 좌우된다.
《시골 쥐와 도시 쥐》는 시골 쥐는 시골로 내려가고 도시 쥐는 위험하지만 풍요로운 도시 생활을 계속 선택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둘은 각자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사람도 전원생활을 하며 행복한 이들도 있지만,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각자의 삶에는 장단점이 있으며,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건강한 행복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만족하고 안정감을 느끼느냐에 달린 것 아닐까?
한적한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입소문을 탄 유명 백반집을 찾아 나섰다. 때마침 그 근처에 시골 장터가 열려서 식사 후에 장터도 구경할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그 백반집이 사라졌다. 난감한 우리에게 노점상 할머니가 그 백반집이 큰 데로 이사 갔고 뒤에 있는 식당도 맛있다고 추천해서 맛있게 식사하고 나왔다. 장터를 다 둘러보고 나서 함께 간 지인이 식당을 알려준 친절에 보답하고자 쪽파 한 단을 사겠다며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소박한 시골 할머니와 세련된 도시 아줌마가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며 쪽파를 사고파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을 보았다. 그 행복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동화 《파랑새》에서 두 남매가 행복을 찾기 위해 모험을 하지만 결국 집에서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는다. 즉, 진정한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골 쥐와 도시 쥐》나 《파랑새》 이야기는 도시든 시골이든 각자 삶의 터전에서 만족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작은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건강하게 100세 인생을 살아가는 비법이라고 귀띔해 준다.
참고 문헌
최민경 외. 건강도시 구성요인이 도시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주관적 건강인식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환경정책, 제30권 제1호. 2022.03 231-253 (23page). https://doi.org/10.15301/jepa.2022.30.1.231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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