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미학이 밝히는 예술 감상의 비밀, 치매와 창조성의 역설

할머니가 우산을 갖고 나가라고 하시면 신통하게도 비가 온다. 왜 비가 오는지 할머니께 여쭤봐도 그냥 그렇다고 하신다. 경험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를 손주에게 알려주신 것뿐이다. 요즘은 검색하면 금세 궁금증이 해결된다. 장마철에 기압이 낮아지면 관절 외부 압력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내부 체액의 압력이 더 커지며 관절 통증이 유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궁금한 점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르네 마그리트, 〈골콘다(Golconda)>, 1953 / The Menil Collection, © C. Herscovici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르네 마그리트, 〈골콘다(Golconda)>, 1953 / The Menil Collection, © C. Herscovici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과학이 인문, 예술 등을 만나 학문 간의 융합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이 신비하다고 느끼는 영역도 설명해 준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가 하늘에서 중절모를 쓴 남성들이 비처럼 떨어지듯 배치된 초현실적 작품 <골콘다(Golconda)>(1953)를 보고 있으면, 어떤 이는 기괴하다고 느끼고 어떤 이는 창의적이라고 느낀다. 왜 이런 그림을 좋아할까? 정신의학과 미학의 적극적인 통섭으로 등장한 ‘신경미학(Neuroaesthetics)’은 이런 궁금증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뇌

전시회에서 모든 작품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지 않는다. 어떤 작품은 눈을 떼기 아까울 정도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지만, 그냥 쓱 보고 지나가는 작품도 있다. 뇌가 어떤 반응을 보이길래 그럴까? 뇌 속을 살펴볼 수 있는 기계의 등장으로 이제는 뇌가 웃는 모습도 찍어볼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신경미학 분야에 이바지한 영국의 신경과학자 세미르 제키(Semir Zeki, 1940~)의 연구팀은 미술 작품에 대한 미적 평가와 뇌 반응의 관계를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공명영상)로 분석했다. 실험 결과, 작품을 아름답다고 평가할 때 내측 안와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이는 쾌락적 경험과 관련된 보상계의 작용으로 해석된다. 반면, 추함을 느낄 때는 해당 영역의 활성이 저하됐다.

다양한 장르의 그림에서도 아름다움을 평가할 때 동일한 뇌 반응이 관찰됐고, 다른 연구에서도 미적 선호도에 따라 보상계 영역의 활성도가 변화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는 미적 경험에 있어 뇌의 보상계 활성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어떤 작품을 아름답다고 판단하거나 어떤 작품이 더 좋다는 느낌이 들 때는 뇌의 보상계 시스템 활성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작품이 마음에 들면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해서 즐거움과 감동이 샘솟는 것이다.

제키 박사는 뇌가 시각 자극 중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중요한 특성을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예술가가 세상과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술을 뇌의 잠재성과 현실적 능력을 탐구하는 행위로 정의하며, 이를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노력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작가들의 작품은 어떻게 관람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Lucio Fontana, Concetto spaziale, Attese, 1965. 단색 캔버스를 절개해 평면을 넘어선 공간성을 탐색한 폰타나의 대표작 시리즈. 이 작품은 노란 배경에 4개의 날카로운 절개를 가해, 행위의 흔적과 공간의 깊이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 Water-based paint on canvas with cuts, 81 × 65cm. Museum of Fine Arts, Houston
Lucio Fontana, Concetto spaziale, Attese, 1965. 단색 캔버스를 절개해 평면을 넘어선 공간성을 탐색한 폰타나의 대표작 시리즈. 이 작품은 노란 배경에 4개의 날카로운 절개를 가해, 행위의 흔적과 공간의 깊이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 Water-based paint on canvas with cuts, 81 × 65cm.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이탈리아 예술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의 아테세(Attese, 기다림들 또는 기대들) 시리즈는 캔버스를 예리하게 절개함으로써, 평면을 넘어서는 3차원 공간의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이다.

조용한 갤러리에서 81X65cm의 실제 작품을 감상하면 칼에 베일 것 같은 오싹한 느낌이 든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멋진 작품에 크게 감동하면 몸이 반응한다. 눈물이 나거나, 손에 땀이 쥐어지거나,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이처럼 예술은 감정을 몸으로 공감하게 만든다.

인지과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뇌-몸-환경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 본다. 몸과 분리된 마음은 존재할 수 없으며, 이런 체화(Embodiment) 개념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예술 감상은 단순한 시각적 인지가 아니라 감상자가 작품 속 인물의 감정이나 상태를 몸으로 느끼는 ‘체화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뇌

고차원적인 두뇌 활동을 하는 예술가라고 해도 치매를 피할 수는 없다. 치매에 걸려도 끝까지 자신의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이 있다. 치매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래서 치매 증상은 원인 질환에 따라 증상의 진행이 다를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전두측두엽치매(FTD)는 기억장애보다는 언어 기능, 실행 기능, 성격 변화 등이 초기 증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일부 환자에서는 병의 진행 초기 단계에서 갑작스럽게 예술적 창의성이 발현되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행동신경학자 브루스 L. 밀러(Bruce L. Miller, 1949~)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전에 예술 활동 경험이 없던 FTD 환자가 중년에 갑자기 그림 작업에 몰두하고, 이후 병이 진행되면서 인지기능 저하와 함께 예술적 몰입도도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는 사례들이 확인됐다.

예술적 능력을 보이는 전두측두엽치매 환자에서 전두엽과 우측 측두엽 기능의 보존이나 과 활성으로 인해 예술적 능력이 일시적으로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 이 부위가 손상되면 이러한 창의성도 소실된다. 전두측두엽치매 외의 다른 치매나 뇌 손상 환자에게서 예술 능력이 새롭게 나타난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추상화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은 치매를 앓던 노년기에도 작업을 이어갔으며, 후기 작품에서는 이전보다 간결한 형식과 밝은 색채, 리듬감 있는 붓 터치가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예술가의 형식적 진화로 보는 긍정적 평가와 인지적 퇴행의 결과라는 부정적 견해가 공존했다.

예술 심리학자 제럴드 컵칙(Gerald Cupchik)은 추상 예술 감상에서 ‘스타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아름다움 평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후기 드 쿠닝의 간결한 표현에서 여유로움을 느끼는 관람자들은 단순한 형태 너머에 작가의 삶과 예술 세계 전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함축적 메시지를 담은 진화된 미학으로 수용했다.

반면에 간결해진 스타일을 치매로 인한 집중력 상실과 창의력 상실의 시각으로 본 측면에서는, 그의 작품을 천재성이 사라졌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추상화가 간결해 보여도 작가는 엄청난 주의력과 집중력으로 담아내 창의적으로 표현하므로 인지기능의 퇴화는 작품의 창의성에 퇴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윌리엄 어터몰렌의 자화상 변화 / williamutermohlen.com/1991-2000-late-self-portraits
윌리엄 어터몰렌의 자화상 변화 / williamutermohlen.com/1991-2000-late-self-portraits

 

2001년 6월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윌리엄 어터몰렌(William Utermohlen, 1933~2007)의 자화상 변화를 분석한 Sebastian J. Crutch 등의 연구가 실렸다. 알츠하이머병이 예술 표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였다. 어터몰렌은 1995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뒤 자신의 인지기능 저하와 감정 변화를 자화상으로 남겼다. 그는 2000년부터 급격히 그림 그리는 능력을 잃어 갔고, 2002년 그림이 마지막 작품이다. 그의 자화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의 형태가 무너졌고, 색채와 구성이 단순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치매가 예술가의 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나이가 들수록 복잡한 리모컨보다 필요한 기능만 장착한 단순한 리모컨을 선호한다. 리모컨이 단순해도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하겠다는 메시지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복잡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작품의 간결화는 인지기능의 손상에 따른 표현 양식 변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동안 뇌는 열심히 활동한다. 뇌 건강을 위한 활동을 찾고 있다면 음악이든 미술이든 춤이든 뇌를 즐겁게 하는 예술 활동 수업이나 감상하는 모임에 참여해 보자. 아름다움은 뇌도 춤추게 한다.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디멘시아뉴스(dementia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