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서 건강한 삶을 선택하는 법
가난한 자의 벗으로 청빈한 삶을 살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으로 4월의 마지막 주말 내내 마음이 허전하고 무거웠다. 교황의 삶을 조명하는 뉴스와 관련 동영상을 보다가 부고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신중년이 되면 부고 문자를 받는 일이 잦아진다. 그래서 대부분 유사한 문구로 전해지는 부고 문자에 기계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문자는 처음 받아보는 낯선 문장으로 시작하여 꼼꼼히 읽어보게 되었다.
고인의 성함만으로 얼굴을 기억하는 데 한참 걸렸다. 한두 번 만나고 업무차 전화번호를 연락처에 저장했을 것이다. 문자를 보낸 분은 고인의 남편이다.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배우자와 친한 분인지 아닌지 몰라서 고인의 연락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부고를 전한다며 친분이 없는 분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교황의 선종 소식으로 마음이 무거웠고 경건해져서인지 그 문자 내용을 읽으며 남편분 마음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달됐다.
다른 때 같았으면 보이스피싱일지 모른다며 짜증 냈을 텐데, 문득 죽음과 관계 다이어트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부고 문자를 읽고 나서 스마트폰 연락처를 열었다. 세상에나! 연락처에 저장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가 씨부터 시작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다시 연락하지 않을 사람을 선별해 연락처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 씨를 미처 다 정리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아팠다. 틈틈이 이어서 해야겠다며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닫았다.
백세시대라고 모두 천수를 누릴 수 없다
사람은 모두 늙어가고, 누구도 예외 없이 죽는다. 이런 불변의 진리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전염병 앞에서 무기력한 많은 죽음의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접했고, 지금은 의료 대란을 겪으며 많은 안타까운 죽음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 못 한 이러한 시기를 경험하면서 전시가 아니라도 죽음은 갑자기 무차별적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평범한 일상에서 죽음 준비를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신중년은 아직 죽음을 대비할 정서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 신중년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25년 2월에 통계청에서 배포한 ‘2024년 인구동향조사 출생 사망통계(잠정)’ 보도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35만 8천4백 명으로 전년 대비 5천8백 명(1.7%)이 증가했고, 조(粗)사망률(인구 1천 명 당 사망자 수)는 7.0명으로 전년 대비 0.1명 증가했다.
연령대별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남녀 모두 80대에서 가장 많이 사망했다. 전년 대비 사망자 수는 20대 이하와 80대에서 감소했고 그 외 연령층에서는 증가했다. 전년 대비 90대 이상(3천8백 명), 60대(1천1백 명), 50대(6백 명) 순으로 증가했다. 90세 이상의 인구는 고령을 고려할 때 자연스러운 추세로 보이지만, 신중년에 해당하는 5060세대의 사망자 수 증가는 특히 주목된다. 기대수명이 83.5세인 백세시대에 신중년의 사망은 천수를 누리지 못한 안타까운 죽음이다.
위의 그래프가 보여주듯이 50대 이후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 80대에 정점을 찍는다. 이 연령대는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시대를 살아왔으니 혼자 남은 배우자 수가 많을 것이다. 부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동시에 사망하지 않는다. 80대 죽음에서 남은 배우자가 혼자 살아가는 시간과 비교할 때 신중년의 죽음에서 남은 배우자가 혼자 살아가는 시간은 너무 길고 삶의 짐은 너무 무겁다. 그래서 신중년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웰다잉 준비는 관계 다이어트부터
은퇴하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관계 정리가 시작된다. 노년부터는 인간관계가 더욱 좁아진다.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하나둘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자기 삶을 살기 바쁘다 보니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자식들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 혼자 남게 될까 두렵다.
노인의 사고(四苦)에는 병고(病苦), 빈고(貧苦), 무위고(無爲苦), 고독고(孤獨苦)가 있다. 노년은 고독하기 마련이다. 신학 박사이자 천주교 신부인 안셀름 그륀(Anselm Grün) 작가는 저서 《황혼의 미학》에서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 배우자를 선물로 여기고 아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배우자의 죽음을 깊이 생각해 보고 자기 삶을 발견하고 스스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또한 관계에 느긋해지라고 했고, 나이가 들수록 고독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는 고독을 통해 현명해질 수 있으며 인생에서 고독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려준다.
안개 속에서
헤르만 헤세 지음 / 이유선 옮김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숲과 돌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볼 수가 없다.
모두가 혼자이다.
내 인생에 모든 것은 나에게 익숙했으나
이제는 모두가 안개 속에 있다.
사람도 집도 나무도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다.
모든 것은 외롭다.
삶은 외로움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깊이 알지 못하고
모두가 혼자다.
참으로 살기 위해,
사람은 고독을 견뎌야 하리라.
삶의 길은 모두를 지나가지만
각자는 자기 길을 간다.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삶은 고독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다.
모두가 혼자이다.
신중년은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과 웰다잉을 준비하는 시기다. 그 시작은 관계 다이어트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 에너지뿐만 아니라 정신 에너지도 예전만 못하다. 사람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고독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관계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자. 굳이 불필요한 관계를 확장하거나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고독을 온전히 자기에게 시간을 쓰는 ‘혼자 있음’으로 승화시키자. 스마트폰을 열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결정하여 연락처에서 이름을 지워나가는 관계 다이어트를 시작해 보자.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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