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대응과 달라야 하는 치매 노인 보호조치
신원 불명 치매 노인 보호 위한 맞춤형 매뉴얼 필요
경찰이 배회 중인 치매 노인을 구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신원 확인이 어렵다면 보호자에게 인계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 노숙인 보호 절차와 동일하게 처리될 수도 있다. 이에 경찰과 지자체의 신원 확인이 어려운 치매 노인 보호 대응 체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4일 밤 대구 동부경찰서는 초례봉 8부 능선 숲속에서 길을 잃고 탈진한 80대 치매 노인이 스마트태그(배회감지기)를 통해 위치를 확인해 구조할 수 있었다. 보호자가 아버지 신발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했다고 경찰에 진술함에 따라 CCTV 분석으로 실종자가 홀로 초례봉 등산로로 이동한 장면을 확인했고, 이후 실종·형사팀, 경찰기동대, 소방, 민간 드론 등 41명을 동원해 등산로 5곳에 인력을 배치, 야간 수색을 벌여 해발 420미터 숲속에서 실종자를 발견했다. 과거에도 실종된 적이 있어 경찰이 보호자에게 스마트태그 사용을 권유했고, 이를 신발에 부착해 사용 중이었기 때문에 큰 탈 없이 구조해 냈다.
이처럼 사전에 치매 노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예방 조치가 돼 있지 않으면 구조가 어렵고, 실종자를 구조해도 신원확인이 장시간 지연되면 가족에게 인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신원확인이 안 되는 치매 노인의 경우 경찰은 지자체와 협조해 치매안심센터, 일시 보호시설 등으로 인계하도록 하지만,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와 가족을 위한 상담, 조기 검진, 인지 재활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장기적인 보호시설 기능은 수행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센터에서는 경증 치매 환자를 위한 낮 시간대 보호 프로그램인 ‘치매단기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쉼터는 초기 안정화와 인지 기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24시간 보호를 위한 시설은 아니다.
치매안심센터 관계자 말에 따르면, 보통 지구대에서 일정 시간 임시 보호를 하는데 유치장에서 보호하기는 어려운데다 지구대 보호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A지구대에서 B지구대, C지구대를 전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치매 노인은 경찰과 지자체가 치매안심센터와 협력해 치매 환자의 초기 안정화와 보호를 위한 조처를 하되, 장기적인 보호가 필요한 경우 요양병원이나 장기요양기관 등 시설로의 연계를 고려해야 한다.
치매 노인 인권 보호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2017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치매 노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기초 지방자치단체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치매 환자의 증가와 실종, 학대 등 사회적 문제 심화에 따른 조치다.
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실종된 치매 노인의 단기 보호를 위한 주야간보호시설 및 단기보호시설 연계 체계 구축 ▲노인 의료복지시설 내 신체 억제대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 ▲치매 상담센터의 사례 관리 확대를 위한 인력 지원 ▲치매 관리 사업 심의 과정에서 보호자의 참여 보장을 요청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치매 상담센터 활성화를 위한 인력 확보 ▲경찰서 및 노인복지관 등 유관기관과 협력 체계 구축 ▲치매 예방 및 관련 서비스 홍보 강화를 권고했다.
이 권고는 헌법과 국제 인권 규약 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치매 관리의 체계적인 개선을 통해 치매 노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인권위원회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를 적극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실종 치매 노인, 보호시설 인계의 한계
국가인권위원회가 치매 노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제도 개선을 권고한 이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관련 논의는 계속 이루어졌다. 치매 노인을 보호자에게 인계하기 어려운 경우 경찰과 지자체가 보호시설로 인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2023년 3월 국회에서 발의돼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법은 치매 노인을 포함한 실종자의 보호자 확인 이후 복귀할 수 없거나, 보호자가 복귀를 거부·지연하는 경우에 경찰이 지자체와 협력해 보호시설에 인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과거 보호자 확인 후 별다른 보호조치 없이 현장에서 공백이 발생했던 문제를 개선한 조치다. 경찰서장 또는 지자체장은 실종자의 복귀를 시도하되, 보호자가 노인 학대 또는 가정폭력 행위자이면 복귀를 중단할 수 있다. 이 경우 지자체에 보호시설 인계를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받은 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치매 노인의 경우 ‘노인복지시설’이 인계 가능한 주된 보호처로 적용된다. 실종 치매 노인의 복귀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제도적 공백 없이 신속하게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인권 보호 및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에 실질적 효과를 내도록 한 법안이다.
그러나 이 개정법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치매 노인의 보호에 대해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조항은 보호자가 확인된 경우를 전제로 하며, 그중에서도 학대자이거나 복귀를 거부하거나 복귀가 현저히 지연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반면 보호자 자체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 즉 누구의 돌봄도 닿지 않는 치매 노인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치매 노인을 포함한 실종자 보호 체계에 있어 ‘보호자 확인 후 복귀 곤란’이라는 전제하에서만 보호시설 인계를 허용한 것이다. 이는 현장 경찰과 지자체의 보호가 미치지 못하는 법적 사각지대가 존재해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신원확인 불가한 치매 노인 보호 위한 맞춤형 대응 매뉴얼 필요
경찰은 신원확인이 불가능한 치매 노인은 일시 보호 후 지자체에 인계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만, 지자체도 24시간 보호시설 부재, 법적 근거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과 지자체는 자체적인 행정해석에 따라 임시 조처를 하거나,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응급입원을 추진하거나, 노숙인복지법을 준용해 임시 보호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는 치매 노인을 위한 맞춤형 법적 근거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조치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신원 미확인 치매 노인의 보호가 제도적으로 막혀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치매 환자의 실종 예방과 신속한 신원확인을 위한 지문 등 생체정보 사전등록과 배회감지기 보급 확대가 중요하다. 특히 치매 환자를 위한 24시간 보호시설 확충과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
2022년 5월경,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노숙인 응급조치 과정에서 치매 환자가 노숙인으로 분류돼 시설 입소를 의뢰받는 사례가 반복되는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행정 절차를 재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확인이 어려운 성인 남성이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지자체에 의해 노숙인 보호시설로 인계되는 사례가 발생해 왔다. 그러나 치매 노인은 노숙인과 보호의 목적과 방식에서 뚜렷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숙인은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활 및 자립 중심의 보호가 이뤄지며, 자발적 입소가 원칙이고 생활지도와 직업훈련이 병행된다. 반면 치매 노인은 ‘노인복지법’, ‘치매관리법’, ‘정신건강복지법’ 등에 따라 건강 보호와 의료·돌봄이 우선된다. 판단 능력이 저하된 경우에는 공공후견 제도 등을 통해 법적 보호체계가 작동하기도 한다.
입소 기준에서도 차이가 있다. 노숙인은 일정 요건을 갖춘 자활시설 등에 자발적으로 입소하지만, 치매 노인은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뒤 요양병원이나 전문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 특히 보호자가 없거나 가족이 보호를 거부하는 경우, 지자체가 공공후견인 선임 지원이나 복지서비스 연계 등 보호조치를 의뢰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 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보호시설과 지원체계를 확충해야 하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도 적절한 의료 및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역시 치매 환자의 신원 확인 절차를 개선하고, 보호자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적절한 보호시설로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원 불명 치매 노인의 인권 보호와 적절한 보호 환경 제공을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실종된 치매 환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하고, 경찰과 지자체 간 협력 체계 확대를 강조한다. 특히 신원 불명 치매 노인이 노숙인과 동일하게 분류되는 일이 없도록 ▲법령상 신원 미확인 치매 노인 보호 조항 신설 ▲전용 임시 보호시설 설립 ▲경찰·지자체 간 매뉴얼 정비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Sources
인권위, 늘어나는 치매 노인 인권보호 위한 제도 개선 필요. 국가인권위. 2017.03.10
https://www.humanrights.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menuid=001004002001&boardtypeid=24&boardid=7600755
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의안번호 20775, 대표발의 노웅래 의원. 2023.03.21, 시행 2025.01.01.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노숙인복지법). 시행 2021. 6. 30. 법률 제17775호, 2020. 12. 29., 일부개정.
노숙인 응급조치 관련 보건복지부 및 경찰청 공동 업무처리지침 안내. 보건복지부.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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