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관리사 투입 평가는 긍정, 제도는 미완...공공성 및 인권 보완 과제
돌봄 인력난 해소, 값싼 대안 아닌 ‘존중받는 구조’로 설계해야
지난해 8월 필리핀 국적의 가사관리사 100명이 순차적으로 입국하면서 서울시와 정부가 협력한 시범사업이 9월 공식 출범했다. 이 사업은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이나 임신·출산 예정인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가정 내 청소, 식사 준비 등 일상적인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서비스는 시간제(4·6시간) 또는 전일제(8시간) 중 선택할 수 있었으며, 이용 요금은 시간당 1만 3,940원(최저임금 + 4대 보험료 + 위탁수수료 등 포함)으로 책정됐다. 근무 시간은 주 52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 사업은 저출산 대응책의 하나로 외국인 베이비시터 도입을 검토하면서 시작됐다. 이와 함께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필리핀 인력을 활용해 조기 영어 노출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외국인 보모 수입’이라는 표현이 불러온 논란 이후, 정부는 사업명을 ‘가사관리사’로 바꾸고 업무 범위도 육아 보조보다는 가사 위주로 조정했다.
시범사업은 2024년 9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총 6개월간 한정해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정부는 사업 종료 후 성과가 긍정적이라는 평가에 따라 기존 인력의 고용 기간을 2026년 2월까지 1년 연장하기로 해 새로운 인력 충원 없이 기존 인원만으로 사업을 제한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외국인 돌봄 인력 수급 계획에서 노인 환자 돌봄은 제외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디멘시아뉴스>에 "해당 사업이 노인 돌봄을 포함하지 않으며, 향후 관련 확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특히 관리사 대부분은 강남 3구 고소득층 가정에 고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현실적으로 정부가 홍보한 ‘보편적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저렴한 외국인 인력’이라는 명분은 사실상 시장화된 사적 돌봄 외주화로 평가받았다. 게다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인권 문제에 대한 실질적 관리와 감독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긍정 평가였지만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서비스를 이용한 가정의 84%가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85%는 재이용 의사를 밝혔다. 필리핀 근로자 중 74%는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제도적 허점과 구조적 취약성이 동시에 드러났다.
참여자 간담회와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일부 종사자는 과도한 업무 배정, 감정노동, 공동숙소 내 통제, 성희롱 등의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 시간 외 집안일 요구, 가족 구성원의 무례한 대우,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도 제기됐다.
국무조정실이 공개한 시범사업 자료에 따르면, 1일 4시간, 주 5일 근무 기준 월급은 세전 약 83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4대 보험 및 세금이 공제되면, 실제 월 실수령액은 50만~70만 원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인권단체 BHRRC(Business & Human Rights Resource Centre)는 올해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일부 인력이 성희롱, 과도한 업무량, 불안정한 고용 구조 등 노동권 침해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서울시는 시범사업 운영 중 제기된 현장 문제를 반영해 다음과 같은 보완 대책을 시행해 가사관리사의 자율성과 처우를 개선하고, 장기 체류 기반을 마련해 가기로 했다.
▪ 숙소 자율 선택 허용: 2025년 3월부터 희망자에 한해 공동숙소 외 주거지 선택 가능
▪ 급여 지급 방식 유연화: 기존 월급제 외에 주급·격주급 선택 가능(2024년 10월 시행)
▪ 통금 규정 폐지: 밤 10시 통금제도 폐지, 주말 외박 시 자율 운영
▪ 근거리 배치 강화: 가사관리사 이동 부담 줄이기 위해 이용 가정 인근 우선 배치
▪ 숙소비 부담 완화: 자율 주거 전환 시 평균 4만 원 이상 비용 절감 효과
본사업 전환 보류....부족한 노인 돌봄 인력 수급에 대한 ‘우회로’ 열려
정부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전국 단위(1,200명)로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다른 지자체들의 수요 저조, 인권·공공성 논란, 예산 및 관리 책임 부담 등을 이유로 올해 2월 본사업 전환을 무기한 보류했다.
그 대신 외국인 유학생 및 해외 간병 자격 보유자를 중심으로 한 ‘E-7 요양보호사 제도’와 ‘전문연수생 프로그램’을 새롭게 도입했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는 2024년 하반기에 ‘특정활동(E-7) 요양보호사’ 직종을 신설하고,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D-2)이나 구직 비자(D-10) 소지자가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요양시설에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해당 비자는 2년간 체류가 가능하며 1회 연장 시 최대 3년까지 일할 수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지의 간병 자격 보유자를 대상으로 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전문연수 과정’도 2025년 하반기부터 시범 도입할 계획이다. 국내 일부 대학과 연계해 단기 연수와 실습을 거쳐 취업과 체류를 허용하는 방식이며, 2026년까지 연간 400명 이상의 인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 서정대, 동국대 글로벌캠퍼스 등 일부 대학에서는 해당 정책에 맞춰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요양보호사 교육과 비자 전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요양보호사 제도, 실효성에는 물음표
외국인 유학생이 요양보호사가 현장에 안착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언어·문화 장벽, 민원 우려 등으로 시설 운영자 다수가 외국인 고용에 소극적이다. 아울러 고강도 노동, 낮은 임금 등으로 실제 정착률이 저조할 수 있다. 최대 3년까지 체류가 가능하지만, 단기 계약 위주로 진행될 경우 고용 불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이외에 고령자 돌봄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 언어 소통 문제 등이 관계 형성이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외국인 돌봄 인력을 수급해 안착시킨 일본도 초기에는 언어 장벽, 자격시험 통과율 저조, 조기 이탈률 증가 등의 문제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으며,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한국 역시 단기적인 처방만으로는 인력난을 해결하기 어려우며, 제도 정비와 함께 사회적 수용 기반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제도화로 접근…‘사람’이 아니라 ‘직무’를 들여왔다
일본은 외국인 간병인을 제도화한 대표 국가다. 2008년 경제동반자협정(EPA) 체결을 시작으로, 2019년부터는 ‘특정기능 1호(Specified Skilled Worker, SSW)’ 제도를 통해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의 기준을 세워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 간병 시험 + 일본어 능력 시험 통과자만 채용,
▪ 최대 5년 체류 가능,
▪ 시설 내 통역, 노동권 교육, 문화 적응 지원 등 제도 마련
2023년 기준, 약 5만 명의 외국인 간병인이 일본 요양시설에서 근무 중이며, 외국인과 내국인 간 임금 차별 없이 채용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일본은 '값싸게 쓰기'보다 ‘공식 경로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구조’로 전환에 성공한 셈이다.
외국인 돌봄 인력 충원, 해법은 맞지만 방식은 바뀌어야
한국도 돌봄 인력의 공급 부족이 심화하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 유입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민간 중개 플랫폼을 통한 단기 위탁 구조와 단기 교육 → 낮은 급여 → 비공식 업무 확대로 이어지는 방식은 돌봄의 공공성과 품질, 지속 가능성 모두를 위협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공공 중심의 자격·교육·노동 기준을 수립하고,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은 값싼 일이 아니다’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돌봄은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계로 이루어진 상호작용이다. 외국인 인력 도입은 ‘사람을 수입하는 정책’이 아니라,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돌봄을 제공할 것인가’를 묻는 사회적 선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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